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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Jun 28. 2020

죽은 참새 이야기

창가 자리가 좋아서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이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으면 늘 보게 되는 풍경은 모래가 푹신하게 깔린 놀이터의 모습과 거주자 우선 

주차장을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자동차들의 모습이다. 

이 카페에 다닌 일수가 꽤 되다 보니 기억하게 되는 자동차와 차주들이 있게 되었다. 

오늘 그 기억에 있는 차주가 보였다. 70대 정도로 보이는 노부부다. 차랑은 국산 해치백.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어느 면으로 보나 형편없는 디자인의 차량이다. 

차주는 어쩐지 그런 차량을 닮아있는 분위기이다. 

부부가 입고 있는 옷이라면 멋이라고는 한 톨도 건지기 힘들 정도의 등산복 세트. 

상의는 기분 나쁜 완두콩 색(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하의는 걸레짝 마냥 엉덩이 부위만 집요하게 헤져있는 칠부바지. 

어떤 이유에서 일까 부부는 똑같이 입은 옷을 넘어서 주머니가 어려 달린 매쉬 조끼도 똑같이 입고 있었다. 

그것도 대파의 윗부분과 같이 짙은 초록이다. 

대단한 조합의 옷을 부부가 똑같이 입고 다니니 시선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 

아, 매쉬 조끼의 밀도가 다시 눈에 띄는데 밀도가 촘촘한 것이 아니라 그 밀도가 매우 느슨하여 파리 정도는 

쉽사리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메쉬다. 

흡사 어획 망을 몸에 나란히 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 또는 발끝에서 완성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 노부부의 패션은 느슨한 밀도의 매쉬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차를 빼고 있다. 

여자는 내가 있는 카페 쪽에 붙어서 차가 빠지길 기다리고 있다. 

여자의 발치에 어떤 이유로든 죽어서 땅바닥과 마주하고 있는 참새가 있다. 

여자는 참새의 사체를 보고는 신고 있던 앞이 막힌 검은색 슬리퍼 발로 사체를 꾸욱 밟아 눌렀다. 

마치 호떡을 굽기 위해 누름대로 펴 누르듯. 

참새의 사체는 조금 눌리긴 했지만 어딘가가 터져 속을 내놓지는 않았다. 

여자는 그렇게 자신의 슬리퍼 발에 눌린 참새 사체를 보고는 화풀이라도 하듯 매정하게 마찬가지 

슬리퍼 발로 걷어냈다. 시원찮게 걷어낸 탓에 참새의 사체는 10cm 정도 움직였다. 

여자는 개운치 않다는 몸짓으로 남자가 차를 빼낸 빈 주차 자리에 주차금지 원뿔을 가져다 놓았다. 

남자는 여자를 태우기 위해 차를 돌리고 있었고, 여자는 원뿔을 놓은 자리에 서서 이 쪽에서 보기에도 

눈에 띄는 큰 개미들을 밟아 죽이기 시작했다. 

대략 7마리의 개미를 순식간에 밟아 죽였다. 마지막 남은 개미는 동료들이 여자의 슬리퍼 발에 순식간에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잽싸게 다리를 움직였지만 헛수고. 

이때만큼은 한때 최고라 불렸지만 지금은 세상 모든 욕을 다 먹고 있는 브라질의 한 축구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발놀림을 보이는 여자였다. 그렇게 개미를 밟아 죽이는 일에 정신을 홀딱 빼앗긴 여자. 

그다지 인내심이 강하지 못한 남자는 끝내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고만하고 빨리 쳐 타!” 여자는 개미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개미를 모조리 밟더니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며 앞이 막힌 검은색 슬리퍼를 바닥에 탁탁 털어내고는 차에 올라탔다. 

남자는 여자가 차 문을 닫자마자 잠시의 틈도 없이 액셀을 밟아 목적지로 향했다.

 나는 다시 여자의 슬리퍼 발에 눌린 참새로 눈을 돌렸다. 

죽어서 까지 인간의 발에 수모를 당한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하며 저 자리에 계속 있다간 더 큰 수모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때 마침 어디선가 날아든 커다란 까치가 참새의 사체를 입에 물고 모래가 깔린 

놀이터 주변을 감싸고 있는 나무 어딘가로 사려졌다. 

까치가 스며든 나무 아래 놀이터 밴치에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내 시선이 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2020년 6월 26일에 방영한 ‘나 혼자 산다’에서 출연자 유아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인생은 앞으로 가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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