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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May 12. 2024

엄마랑 사업, 더는 같이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 미안한 마음

엄마랑 사업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사업을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날마다 자잘한 불안과 실수를 이기며 지난 4개월을 버텨왔지만, 정말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에 직면했다. 낡은 상가 건물도, 고된 새벽 작업도, 진상 손님도, 두 명의 몫을 챙길 수 없을 만큼 부진한 매출 문제도 아니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번진 건 하루 종일 떡을 만들다가 결국 힘에 부쳐 작업대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엄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많은 떡 공방이 그렇듯 우리도 카네이션 앙금 떡 케이크를 많이 팔 수 있는 어버이날, 스승의날이라는 대목을 보내고 있다. 이제 4개월 차 떡 공방이라 몇 년째 운영하는 떡 공방처럼 대목이라는 표현에 맞는 주문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주문이 훨씬 많아졌다. 하루에 케이크와 상품 주문 건이 10건을 넘은 건 처음이라 우리는 어린이날 연휴가 시작되는 주말을 앞두고 전날 11시간을 가까이 일했다. 엄마는 떡케이크를 찌기 위해 쌀가루를 내리고, 나는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카네이션 앙금 꽃을 만들었다. 며칠 전부터 이른 아침에 픽업하는 답례떡 대량 주문을 소화하느라 새벽 출근을 해야 했던 엄마는 이미 핼쑥해 보였다. 체력을 회복할 기간을 갖지 못하고 어버이날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하루 종일 끼니를 대충 떡으로 때우거나, 배달 음식으로 허기만 겨우 달랜 채 제대로 앉아 쉬지도 못하고 밤까지 작업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서로 파이팅도 하고, 힘들다고 하소연도 했지만 점점 엄마도 나도 예민해져서 서로 말도 걸지 않고 각자 할 일에만 집중했다.


오랜 침묵 속에서 밀린 설거지를 마치고 엄마를 돌아보았을 때 갑자기 엄마는 작업대를 붙잡고 주저앉아 있었다. 등을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탓에 언제부터 엄마가 무너졌는지 알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엄마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한 게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양쪽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며 쌀가루를 내리는 엄마의 모습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어 하루종일 3평도 안 되는 주방에 같이 있는 엄마를 최대한 외면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엄마가 창백한 얼굴로 지쳐 쓰러져 있었다. “엄마! 괜찮아?” 엄마를 일으켜 세우고, 서둘러 박카스를 한 병 건넸다. “조금 쉬었다가 해.” 내가 건넬 수 있는 최선의 말이 너무 한심해서 화가 났다. ‘내가 할게, 이제 쉬어.’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일 주문을 소화하려면 나는 내 할 일을 2시간은 더 해야 했고, 아직 엄마한테 배우지 못한 레시피가 있어 내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 남아있었다. 엄마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 일을 마저 끝냈고, 나는 지친 엄마를 볼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앙금 꽃을 만들다가도 한 번씩 고개를 들어 엄마를 살폈다. 엄마가 정말 정신을 잃고 쓰러질까 봐 불안한 시선을 엄마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묵묵히 빠르게 내 일을 끝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앞으로 5일은 더 예약 주문을 감당해야 했는데, 첫날부터 엄마는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앙금 꽃 케이크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노동집약적인 일이었다. 젊은 나도 꽃을 100송이쯤 만들고 나니 다섯 손가락 관절이 다 아파서 파스를 붙이는데, 쌀을 5kg 넘게 손으로 비벼서 떡을 만들고 있는 엄마는 지금 어떤 힘으로 버티고 있는 걸까 짐작하기 어려웠다. 다음날도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엄마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엄마 정말로 이 일 하기 싫어?” “응, 정말 하기 싫어. 너무 힘들다, 진짜.”


나는 정말 이런 변수를 예상하지 못했다. 엄마랑 사업을 결심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많이 상상했다. 매출이 없어서 그만두고 싶어질 수 있고, 엄마랑 의견이 안 맞아 엄청나게 싸울 수도 있고, 내가 다시 다른 일이 하고 싶어지는 변덕을 부릴 수도 있고, 요식업은 진짜 몸이 힘들다는 표현을 넘어 고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번 떠올리며 엄마랑 같이 사업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했다. 그런데 그중에 엄마의 체력이 한계에 부딪혀 먼저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은 없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너무너무 아파서 모든 의지가 무너져 내리고 마는 모습은 더욱 없었다. 떡 공방을 운영하는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짜증도 나고 조바심도 났지만, 다음날이면 그래도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엄마가 무너지고 나서는 어떤 대안도, 긍정적인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업을 잘 키우고 싶은 욕심에 엄마를 살피지 못하고 일을 밀어붙이기만한 내 모습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회사에서 만난 동료가 일이 많아 힘들어했을 때는 같이 마음 아파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사에게 업무량을 조절해달라고 말하는 과정을 어떻게든 돕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 내 유일한 동료, 엄마에게는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었다. 사업을 그만두고 싶다는 엄마에게 지금 이 고비를 넘기면 된다는 위로를 건네기에는 우리는 앞으로 더 바빠져야지만 두 명의 급여를 만들 수 있고, 일은 지금보다도 더 고될 것이 분명했다. 공방을 내가 혼자 운영하겠다고 하는 것도 엄마의 짐을 덜 수 있는 답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제2의 직업, 꿈이었던 공방이 사라지면 엄마는 일을 내게 넘기고, 자신의 도전을 포기한 이 순간을 인생에서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또 앞으로 어떻게 지내게 될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나는 하루가 끝날 때 짧게 ‘고생했어’라고 건네는 말 외에는 아직 엄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자식에게는 언제나 힘든 모습을 감추고, 씩씩하고 강직한 모습만 보여준 엄마라서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온몸에 파스를 붙인 채 기절하듯이 잠드는 엄마의 모습은 너무 낯설다. 혼자서 세상을 해쳐 나아갈 수 없어 엄마에게 돌봄을 받던 입장에서 이제 연약하고 취약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엄마를 돌봐야 하는 순간이 어느덧 찾아왔는데, 나는 아직 엄마에게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어른인 것 같아 속상하고 복잡하다.


우리는 오늘도 말수를 줄이고, 아픈 손목을 감춘 채로 예약 주문을 꾸역꾸역 해냈다.

엄마의 속이 얼마나 복잡할지 다 헤아릴 수 없어서, 엄마는 내 마음을 짐작할 수 없어서.

우리는 어떻게 이 순간을 지나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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