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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May 19. 2024

엄마는 스무 살 여자애처럼 펑펑 울었다

우리가 꿈꿨던 동업의 이상이 무너져 내린 날

“내가 정말 참아보려고 했는데, 나 못 하겠어….”

엄마는 떡을 만들다 말고 주방 구석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쏟아내는 엄마는 처음 사회의 쓴맛을 경험하고 우는 젊은 여자애 같아 보였다. 등을 돌리고 우는 엄마의 뒷모습이 작년에 길을 잃고 울던 내 모습과 순간적으로 겹쳐 보여 눈물이 고여버렸다. 엄마 곁에 주저앉아 엄마의 좁은 등을 쓸어내렸다. 엄마는 얼마나 참았는지 모를 눈물을 서럽게 쏟아냈다.


엄마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 건 엄마를 곤혹스럽게 하는 주문 때문이었다. 엄마가 떡을 만드는 일을 정말 힘들어하고 있다는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우리의 대화는 더 줄었다. 스승의날 예약 주문을 마칠 때까지 쉴 수 없었고, 각자 말을 아낀 채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벌면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만들 때마다 타거나 찌그러져서 실패하는 개성주악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엄마는 손님에게 이른 아침부터 개성주악 주문을 받고 싶지 않은 티를 냈고, 손님은 그럼에도 꿋꿋이 주문을 원했다. 손님이 떠나고 엄마에게 장사를 하는 사람이 주문하겠다는 손님에게 어떻게 그런 태도로 답할 수 있는지 꼬집었다. 엄마는 그 순간 무너졌다. 참았던 진심을 쏟아냈다.


“나 정말 스승의날 끝날 때까지 참으려고 했는데, 주문 들어오는 게 너무 무섭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하는 것도 정말 팔다리가 다 아프고, 진짜 너무 힘들어…. 무슨 떼돈을 버는 일도 아닌데, 너까지 고생하는 거 보면 네 발목 잡은 것 같아 너한테 너무 미안해….”


“엄마, 아니야…. 내가 선택한 거야. 내가 미안해, 내가 괜히 나서서 엄마가 원한 것보다 일을 키워서 엄마를 더 힘들게 해 버렸어.”


며칠간 짐작만 해보았던 엄마의 괴로운 마음이 터져 나오는데, 마음이 찢어질 것 같으면서도 후련했다. 사소한 문제는 툴툴거리다가도 다음날이면 앙금 없이 풀어져서 우리는 같이 일하기 좋은 동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동료가 되기 전에 엄마랑 딸이라는 관계가 더 오래돼서 서로를 아끼는 감정이 아주 깊은 곳에 단단한 뿌리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지난 4개월 동안 보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작은 공방에 남아 엄마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몸은 점점 지치고, 일이 즐겁지 않고 후회되는데, 갑자기 공방 운영으로 직업을 바꿔버린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채감까지 커지고 있었다. 떡 공방이 2명의 인건비를 낼 만큼 수입을 내기 어려운 사업이라는 판단은 엄마를 더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일을 벌였을까, 너무 후회돼…. 주변에 다 사업한다고 말하고 다녀서 진짜 너무 부끄럽고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될 것 같은데, 그런데도 너무 무섭고 힘들어, 못 하겠어.”


펑펑 울며 진심을 쏟아내는 엄마를 보면서 우리의 동업을 처음부터 더 현실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던 내 무지함은 부채감이 되었다. 엄마가 앙금 꽃을 배우면서 창업을 준비한 건 맞지만, 제대로 된 사업 전략이 없었고, 엄마가 원하던 방향은 지속 가능하지 못한 방법이었다는 걸 이번 가정의달 이벤트를 겪으며 알게 되었다. 처음 동업을 결심할 때 분명 엄마가 모르는 부분을 내가 알고 있으니 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런데 나 역시 사업에 무지한 초보 사장이었고, 엄마를 이끌고 설득할 만큼 아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났다. 사업을 진지하게 같이하겠다고 한 순간부터 나는 초보 사장인 엄마에게 의존해 기술을 배울 게 아니라 다른 전문가를 찾아가 떡 공방 창업을 배웠어야 했다. 


날마다 같이 출근하고, 같이 떡을 만들면서 제대로 동업하는 줄 알았지만, 엄마의 눈치를 보고, 엄마가 배워 온 레시피 안에서 가게를 꾸려보려 했던 행동 하나하나가 어쩌면 엄마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의 행동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 가게라고 생각하며 책임을 전가할 여지를 남기고 있었던 이기적인 마음 한 조각이 위기 속에서 뾰족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날 우리는 공방 작업대에 앉아 솔직하게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독이 되어버린 이 결과가 너무 미안하다는 이야기, 떡공방은 동업이 불가능하다는 데 동의하면서 한 사람이 이 공방을 이어가야 하는데 지금은 서로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 그럼 우리는 사업을 접는 게 맞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주문 문의가 들어왔다. 엄마는 그만둬야 하는데 문의가 들어온다며 다시 두려워했고, 나는 주문이 반가워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제는 가정의달을 겪으며 몸도 멘탈도 무너진 엄마의 카톡 배경이 손을 덜덜 떨며 만든 케이크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한 달 정도 시간을 두고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지만, 우리는 공방을 책임지거나 책임질 필요가 없어지는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아직 완벽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동업을 꿈꾸던 이상은 깨졌고, 우리는 어떤 형태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 달의 시간 동안 더는 서로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게, 엄마와 나는 각자의 마음 깊은 곳까지 답을 구하러 다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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