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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May 26. 2024

우리 사업 그만두어야 할까? 조금 더 해봐야 할까?

어떤 결정도 쉽지 않아서

”우리는 한 달 정도 시간을 두고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지만, 우리는 공방을 책임지거나 책임질 필요가 없어지는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아직 완벽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동업을 꿈꾸던 이상은 깨졌고, 우리는 어떤 형태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 달의 시간 동안 더는 서로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게, 엄마와 나는 각자의 마음 깊은 곳까지 답을 구하러 다녀올 것이다.“ —— 엄마랑 사업하기 10화 <엄마는 스무 살 여자애처럼 펑펑 울었다>


일주일 동안 우리에게는 반자발적인 휴가가 주어졌다. 낱개로 디저트를 파는 매장 영업을 그만두고, 예약 주문 건이 있을 때만 공방에 출근하기로 했는데, 스승의 날이 지나자마자 주문 건이 뚝 끊겨버리고 말았다. 사업을 접으려는 사람에게 사업이 망하라는 뜻인가 싶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우리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일이 고되고 지쳐서 못 하겠다는 엄마에게는 일을 쉬어가는 순간이 필요했고, 나에게는 엄마와 떡 공방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할 기회였다.


공방을 쉬기로 한 다음 날 아침,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에 눈을 뜨기 싫었다. 하고 싶은 일을 겨우 찾았다고 믿었는데, 일할 곳이 없어졌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내 모습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며칠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화가 났다. 엄마의 얼굴을 보면 엄마가 힘들어하던 표정이 자꾸만 떠올라 집안에서도 엄마를 피해 다녔다.


날마다 엄마와 공방에서 나란히 앙금 꽃을 짜고, 서로 부족한 점을 감싸주면서 하루하루 가게를 꾸려가던 우리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지난 4개월 동안 엄마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봤기에 공방을 그만두겠다는 엄마의 결정을 너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가 밤낮으로 애를 써서 제법 자리를 잡아가는 공방을 포기하겠다는 엄마의 행동이 너무 밉고 마음이 아팠다.


사실 밉고 화가 나는 마음의 원인은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하지 않은 내가 실망스러웠던 것인데, 이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만든 엄마를 괜히 탓하며 미운 마음을 덮어씌우고 싶었다. 밉고 화가 나는 마음이 시작된 곳을 돌아보고 나서 남은 건 슬픔이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엄마의 꿈을 내 꿈인 것만큼 깊이 몰입해 버린 탓에 좋아서 시작한 일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이 가볍게 털어낼 수 없을 만큼 슬펐다. 50대가 되어서야 좋아하는 걸 직접 찾아 큰 도전을 한 엄마가 이대로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이 일을 계속 해야 할까? 하고 싶은가? 할 수 있을까?’


4개월 만에 우연한 기회로 이 일을 시작한 내 마음은 자신이 없었지만, 지난 1년 동안 떡을 배우고 공방을 준비하고, 케이크를 선물하며 행복해하고, 사업을 해야겠다며 눈을 반짝이던 엄마의 모습은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잠깐의 시련에 겁을 먹고 눈을 꼭 감아버려서, 바로 앞에 보지 못한 희망이 남아있을 것 같았다. 며칠의 고민 끝에 일단 엄마의 마음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서울에 들르면서 엄마랑 함께 인스타그램으로 구경하던 화과자 카페를 찾아갔다. 엄마가 처음 떡과 화과자를 만드는 세계에 빠졌던 마음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예쁜 화과자를 골라 선물 세트로 포장했다. 만약 엄마가 화과자를 받기 싫어하거나 왜 사 왔냐고 하면 엄마를 설득하는 길이 더 어려워지겠지만, 포기하겠다고 하면서도 아직 엄마의 카톡 프로필 배경 사진에 엄마가 만든 앙금 케이크가 남아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화과자 선물 세트를 건넸을 때 엄마는 다행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화과자가 너무 예쁘고 맛있다며 감탄했을 텐데 이번에는 조용히 화과자를 맛보았다. 부정이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날마다 한 개씩 포장 상자에 담긴 화과자가 사라진 것을 보며 엄마의 마음이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일을 쉰 지 5일 만에 주문이 들어와 공방에 출근했다. 엄마 혼자서 준비할 수 있는 주문 건이었지만, 어떤 종류든 확신을 얻기 위해 엄마를 따라 공방에 가고 싶었다. 지난 몇 주간 슬프고 무서운 기억으로 가득했던 공방이 다시 찾았을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는 여전히 최소한의 말만 주고받으며 엄마는 화과자를 만들고, 나는 옆에서 새로운 앙금 꽃을 연습했다. 잔뜩 눈물을 쏟으며 그만두기로 해놓고서 우리는 관성적으로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은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피어나는데, 다시 화과자를 만들고 있는 엄마는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졌다. 얼마 전까지는 점점 어두워지는 엄마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주문 건을 포장하고 나서 또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에 홍보할 사진을 찍는데, 엄마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나도 좀 찍어보자. 이렇게 찍는 건가?”


사진을 못 찍겠다며 포기해 버렸던 엄마가 먼저 사진을 연습하겠다고 했다. 놀란 표정을 감추고 엄마에게 사진 찍는 각도를 알려줬다. 홍보도 못 하겠고, 주문도 무섭고, 일이 싫다던 엄마는 사진을 몇 장 찍어보더니 여전히 사진이 어렵다며 설거지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공방 문을 닫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여전히 어떤 말도 더 건넬 수 없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우리의 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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