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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Apr 21. 2024

엄마가 동료일 때 대화법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야 하는 말의 태도

엄마와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보다 서로 다정하고 애틋한 말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짧고 냉정한 말투로 대화를 나눈다. 서로를 위로할 줄도 알지만 서로의 실수나 부족한 점을 비난하고 질책할 때가 더 많다. 한 사람의 멘탈이 무너질 때도 우리는 마냥 다정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잘못을 잘못이 맞다고 짚어주면서 나름의 차가운 공감을 남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너무 닮은 가족이다.


혈연관계만을 가족으로 생각하다가 가족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린 건 성인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접하면서 혈연관계를 떠나 같은 생활 환경에서 긴 시간 함께 밥을 먹고, 싸우고, 웃고, 울면 그게 바로 가족이라고 생각이 변했다. 가족은 시간 속에서 크고 작은 사건을 함께 겪으며 단순히 외형을 닮아가는 모습을 넘어 생활 습관, 언어, 위기를 대하는 태도를 닮아간다.

 

엄마, 아빠와 7년을 넘게 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한집에 살게 되면서 어릴 때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하나둘씩 발견할 때가 있다. 최근에는 하루종일 엄마, 아빠와 짧고 긴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의 말투가 닮아있는 부분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평소에 대체로 감정 표현을 절제하고, 약간은 냉소적인 말투로 서로에게 반응했다. “누굴 닮아 이렇게 똑똑해, 최고야, 우와, 정말 잘한다.“살갑거나 과장된 표현 대신”그래, 응, 잘했네.“정도의 시크함이 묻은 감탄사로 우리는 마음을 주고받는다.


한번은 엄마가 아빠한테 공방에서 판매할 메뉴를 배워왔다고 수업 후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보고 우리 가족의 대화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앙금 꽃이 올라간 예쁜 쿠키가 스무 개쯤 있었는데, 아빠는 쿠키를 보자마자 이렇게 반응했다.


“자, 내가 (앙금 꽃 쿠키를 가르쳐 준)쌤이 만든 거랑 네가 만든 거 골라볼게. 이건 (잘 만들었으니까) 쌤꺼, 이건 네꺼.”


어떻게 칭찬 한마디 없이 실력을 대놓고 비교하지, 싶어서 충격이었는데, 이어진 엄마 반응이 더 충격이었다.


“맞아. 이건 쌤 꺼. 못 생긴 건 내 꺼.”


서로를 꼬집는 말에 전혀 타격감 없는 부부라니. 저 사람들 사이에서 20년을 자라서 나도 비슷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되었을까 싶어 내 말투를 돌아보았다.


설기를 만들다가 망치거나 재료 주문을 빠트리거나 대체로 별거 아닐 수 있는 실수에

“에휴, 죽어야지. 미쳤나 봐.” 자책하는 엄마에게 “그러게, 잘못했네.”라고 반응하는 내 모습.


“진짜 나 왜 그러니, 미쳤어.”라고 내가 말하면

엄마는 “그러게, 왜 그랬어.” 서로에게 질책을 핑퐁했다.


이상적인 대화라면 “그럴 수 있지, 아냐 잘했어, 사람은 누구나 실수해.” 정도의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내가 회사에 다녔을 때 동료가 엄마처럼 말했다면 이상적인 반응으로 상대를 위로했을 것이다. 내가 엄마를 동료라기보다 엄마라고 생각해서 반응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했다. 엄마에게도 동료를 대하 듯 좀 더 말을 골라야 하지 않을까 고민스러웠다.


엄마, 아빠의 대화로 거울 치료가 되면서 당장 고칠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그래도 서로에게 이런 질책 섞인 공감이 쉽게 오가는 게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해 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지나치게 날카롭게 비난하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 반응은 적당히 부정적인 감정을 소화할 시간을 남길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회사에 다닐 때는 내 실수를 들킬까 봐 늘 불안했다. 가벼운 실수도 고백하는 일이 어려웠고,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실수를 삼켜냈다. 상대의 실수를 발견해도 쉽게 서로를 나무랄 수 없어 그저 좋게 돌려 말하며, 분명히 짚고 넘어가면 더 좋을 것 같은 부분도 어설프게 덮어버렸다. 동료와 쌓은 시간이 얕기 때문에 우리의 얇은 신뢰 관계가 작은 반응에도 깨질까봐, 차가운 말투가 남길 오해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나치게 걱정하며 조심스러웠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나치게 원만한 동료가 되고 싶어 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엄마와 일하며 돌아보았다.


엄마는 직장 동료인 동시에 20년을 넘게 같이 살아온 가족이니까, 말은 조금 날카로운 모양을 하고 있어도 우리는 서로를 진짜 미워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는 관계다. 그래서 조금은 쉽게 말을 뱉을 수도 있다.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쌓이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때로는 서로가 선명한 이유 없이 예민한 날 하필 질책성 공감을 했다가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서로의 화를 돋우는 날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좋은 말도 싫은 말도 상대를 잘 살피는 애정이 어린 시선을 기본으로 건네야 한다. 소중한 사람과 더 오래 우리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엄마랑 일하며 가족이 되는 일도 동료가 되는 일도 날마다 다시 새롭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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