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엄마들이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몇 번씩 생각하는 최대의 고민은 무엇일까. 엄마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침 밥상을 생각하고, 아침 상을 준비하며 점심메뉴를 생각한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퇴근 무렵이 되면 오늘 저녁에는 또 뭘 해서 먹어야 하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일주일에 한 번 마트 장을 보는 날은 일주일 메뉴를 생각해야 한다. 외식메뉴를 고르려고 하면 눈에 들어오는 것, 먹고 싶은 메뉴가 천지인데 집 밥상을 차리려면 왜 이렇게 생각나는 메뉴가 없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 자체도 에너지 소비가 크다.
대한민국에서 '밥'이라는 것은 유독 한국 특유의 정서문화와 어울려서 자식에 대한 사랑, 남편에 대한 존중, 부모에 대한 공경, 손님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고 측정하는데 쓰인다. 다양한 간편식이 출시되고 아파트 상가에만 가도 반찬가게가 많이 생겨 좀 더 편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여건이 되었지만 시리얼이나 빵, 우유, 그리고 사다 먹는 반찬들은 모락모락 하얀 김이 올라오고 윤기 나는 방금 막 지은 쌀밥에는 대우를 못 받는 게 우리나라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고생하다 돌아와 엄마가 지어 준 따뜻한 밥상에 눈물 흘리는 중년의 남성, 가족 없이 고아로 외롭게 자라 온 한 청년이 우연히 함께하게 된 평범한 가족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밥 한 숟가락 뜨며 무언가 울컥한 감정을 느끼는 것, 다 자란 딸이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다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어렸을 적 자주 해준 반찬들을 떠올리며 눈물짓는 일 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렇듯 대한민국에서 밥, 특히 쌀밥이 갖는 의미가 조금 특별한 것은 밥이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음식 이상의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시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첫 자리에서 '다른 건 몰라도 남편 아침밥은 꼭 챙겨주라' 당부하시는 어른들, 한 끼쯤 라면이나 간편식으로 때우려는 자식을 보고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며 주방으로 달려와 쌀을 씻고 찌개를 끓여 뚝딱 한상 차려내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느껴지는 따뜻한 풍경이다.
그러나 워킹맘인 나에게 이 나라에서 유독 특별한 의미를 갖는 '쌀밥'의 존재는 매우 불편하다. 3끼 밥상을 차려내는 것이 엄마 몫이라는 이 사회의 가부장적 관습 자체도 충분히 거슬리지만 그것도 모자라 쌀밥이어야 한다니.
결혼 8년째,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외치며 능력 껏 밥상을 차려내고 있지만 몇 가지 찬, 빠지면 왠지 구색이 안 맞는 것 같은 찌개와 함께 차려진 쌀밥 한상이 아니면 이상하게 죄의식 아닌 죄의식 비슷한 감정이 올라온다. 반조리식품을 준비하거나 반찬가게에서 사 온 메뉴로 한상을 차리면 맛있게 먹으면서도 어딘지 떳떳하지 못한 것 같은 불편한 감정도 올라온다. 그 순간 남편이 밥상을 맘에 안 들어하는 낌새라도 보이면 여지없이 날카로운 한마디가 날아간다.
" 왜 맛이 없어? 그게 최선이야 "
(= " 왜 맛이 없니? 그럼 네가 하지 그러니? 맨날 엄마가 차려 준 몇 첩 반상을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나도 일해. 그냥 주는 대로 먹자 ")
정성 가득 담긴 한 끼 밥상 뒤에는 항상 손에 물마를 날 없이 주방에서 음식을 해 나르는 우리 엄마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 세대는 맛이 없어도 그냥 먹으라며 신랑에게 핀잔이라도 줄 수 있지만, 우리 엄마들은 남편 입맛에 맞는 밥상을 다시 차려내야 했다. 가족들 입맛에 맞는 밥상 차리는 일이 무슨 골든 미션이라도 되는 듯, 너무 짜다느니, 또 이 반찬이냐는 둥 밥상을 맘에 안 들어하거나 식사 준비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죄인처럼 식구들에게 미안해했던 우리 엄마들의 인생은 생각보다 더 고달팠을 것이다.
엄마의 희생과 헌신을 바닥에 깔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흐뭇하게 식구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가족들은, 쌈짓돈까지 털어가며 가장 저렴하고 품질 좋은 재료를 구해 차려내는 따뜻한 밥상을 당연한 듯 받아왔다. 역할 고정에 대한 선택의 기회도 사유의 기회도 박탈당한 채 우리 엄마들은 진짜로 먹지 않고도 배불러야 하는 부엌데기 인생을 강요받았는지도 모른다.
밥상 차리는 것은 오로지 엄마 몫이라는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8년째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아침상을 준비하고 퇴근과 동시에 주방으로 향한다. 아이들 반찬까지 챙기며 밥상을 차려내고 이제 좀 먹어볼까 식탁의자에 앉으면 수저도 들기 전에 다시 일어나기 일쑤다. 물, 숟가락, 개인접시 아이들이 어리니 챙길 것도 많다. 나 한번, 아이 한번 숟가락을 번갈아 입에 넣어가며 밥을 먹는다. '빨리 먹어라'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애를 채근 대고, 여기저기 흘리는 둘째 주변을 물티슈로 닦아가며 식사를 마무리하면 밥을 어디로 먹었는지 무슨 맛이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와중에 본인 위장에만 밥을 집어넣고 있는 남의 편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냥 애써 참아 넘긴다.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그릇들을 설거지통에 집어넣고 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안일을 끝내고 쉬고 싶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파에 앉아 꼼짝 않고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남의 편을 보고 있으면 옆 사람 힘든 게 왜 안보일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집안일을 왜 안 하는 거지? 일방적인 속 대화가 시작된다. 결혼 초반에는 이 불공평한 상황을 너무 당연하게 누리는 남편에게 전투적으로 맞섰고, 기필코 내 권리를 찾겠다는 결의로 하나부터 열까지 동등해야 함을 주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 남편, 남자들,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당연하지 않아 보였다.
상식이 통하는 나라, 정의가 바로 선 나라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구호로 내세우는 말들이다. 한 가정을 이루어 돈을 벌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은 공동 양육자인 아빠와 엄마가 공평하게 부담해야 하는 것,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권력이 되고 힘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엄마에게 상식이고 정의다.
8년이 지난 지금, 남편은 생각했던 엄마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배우자를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나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지만 '밥=엄마'라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는 것 같다. 8년이 지나도록 요리라는 것은 계란 프라이와 라면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을 보면. 당신 말이 맞지만 그래도 밥은 엄마가 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발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들은 여자들의 주방 일상을, 태어나 엄마 아빠를 인지하고 말을 배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와 익숙해진 세상의 모습이었다. 이 남자들은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애초부터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없었고, 그렇게 살아왔어도 큰 불편함이 없었으니 말이다. 가끔은 무심함이 무뚝뚝함으로 남자다움으로 미화되기도 하는 이 사회 이상기류에 힘입어 더 의기양양 뒷짐 지기도 한다.
혼자 새벽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미취학 아이 둘을 챙겨 같이 출근하는 엄마가 좀 더 일찍 일어나 아침상을 차려주지 않는다고 대놓고 불평할 수는 없는 시대지만, 아침밥을 얻어먹고 사느냐 안 사느냐가 남자의 능력치를 가늠하는 잣대라도 되는 듯 술자리 얘깃거리로는 충분한 시대다.
도대체 밥이 뭐길래, 가끔 남자들은 밥상 앞에서 민망할 정도로 예민해진다. 한 번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다 같이 밥을 먹자고 둘러앉았는데 남편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또 자기 숟가락을 챙기지 않았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또? 한 번씩 남편 숟가락, 젓가락을 챙기지 않았던 게 생각이 났다. 한 번은 자기 밥을 미리 퍼놓지 않았다고도 서운해했다. 내 입장에서는 언제 식탁에 앉을지 몰라 그랬던 것인데 조금.. 이상했다. 평소에 소심하거나 잘 삐지거나 하는 성격이 아닌데 이렇게 식사자리에서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보이다니,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챙길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옆에 와서 거들지는 못할 망정 본인 숟가락을 챙기지 않았다고 화를 낸다고? 오히려 할 말은 내가 많은데, 도대체 밥이 뭐길래 유독 밥상 앞에서 저리 예민해지는 걸까?
어른(아빠)부터 수저를 들어야 아랫사람(그 외)이 수저를 들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밥상을 구별해 차린다, 크고 도톰한 조기 같은 좋은 반찬들은 아빠 앞에 먼저 놓이고, 밥을 먹는 동안 아빠의 훈수가 이어지기도 했던 옛날 그 시절 밥상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집안의 가장으로써 밥상 앞에서 만큼은 존중받고 싶고 대접받고 싶은 욕심이 더 생기는 걸까?
아침 08시, 회사 구내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평소 구내식당에서 밥을 잘 먹지 않던 여직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여직원을 보고 한 남자 직원이 말을 건넸다.
" 아니 남편 밥은 어떻게 하고 여기서 밥을 먹어?"
" 남편이요? 다 큰 어른 밥을 왜 차려주나요? 그리고 남편도 저 밥 안차려 줘요"
평소 허물없이 친하게 지낸 사이라 편하게 대화가 오갔지만 질문하신 분은 조금 멋쩍게 웃으며 나가셨다.
여전히 너무 당연하게 남편 밥상은 아내가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과 밥은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요즘 여성들이 공존하는 시대다. 지금 엄마들, 70-80년대생 엄마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고학력의 스펙을 갖고 있는 엄마들이라고 한다. 이 70-80 딸들의 엄마들은 본인들과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딸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떳떳한 직장인으로 만들었다. 역할 고정에 대한 사유와 선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요즘 엄마들은 옛날 엄마들처럼 고분고분하게 밥상을 차려내지는 않는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를 기억할 것이다.
'싸울때마다 투명해진다'에서 은유 작가는 이 대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잘된다는 시어머니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남자 보살피는 것도 부족해서 집안 부흥의 책무, 일명 효도 대행까지 여자에게 부과하는 게 일반적인 가부장제 관습이고 정서다 ]
"너희들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는 종족들이에요"
"남자들은 앞으로 살면서 무조건 여자 말을 듣는다 생각하면 중간은 가요"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 좀 잘 보살펴줘요"
방송인 김제동이 '연애할 때 싸우지 않는 법'이란 강연에서 한 말이다. 은유 작가는 [김제동의 말은 여성을 치켜세우고 남자를 비하하는 듯 하지만 아니다. 왜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한쪽이 도맡아야 하는지, 왜 스스로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고 관계의 무임승차를 권유할까]라고 한다.
요즘 70-80 엄마들의 남편들은 대다수가 집안일에 참여하고 육아에도 동참하면서 가부장 지수가 낮아지고 있는 것은 맞다. 아빠의 가사참여를 독려하는 사회문화가 형성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도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남자들은 이제 밖에 나가 떳떳하게 말한다. '나만큼 도와주는 남편이 없다' 고. 도.와.주.는. 남편... 남자들은 여전히 집안일과 육아에 있어서 주 역할이 아닌 보조 역할에서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사람은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 그래서 밥이라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예민한 것일 수 있다. '밥먹을때는 개도 안건드린다'는 옛말이 괜히 생긴게 아닐 것이다. 엄마들은 하루 3번 가족들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 1년에 1095번, 30년 동안 32,850번 밥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냥 적당히 넘기고, 하기 싫다고 생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어머니가 차려준 한 끼 밥상은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 손맛까지 더해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미화돼 오기까지 했다. 요즘 엄마인 나, 부담이 상당하다.
사람들에게 가장 맛있는 밥은 무엇일까?
'엄마가 차려 준 밥상이다 '
엄마들에게 가장 맛있는 밥은 무엇일까?
'남이 차려 준 밥상이다'
평생 밥상 노동에 시달리는 엄마들에게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밥상은 맛이 있든 없든, 내 취향이든 아니든 그냥 최고의 음식이 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말했다
'전통적으로 성과 사랑의 주체는 남성이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은 여성이 담당한다. 여성이 노동을 그만두는 순간 대부분의 관계도 끝난다'
한쪽의 수고로 한쪽이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다. 내가 편하면 상대방이 불편하다는 것, 지금껏 누려온 편리함과 안락함 너머 엄마들의 고단한 밥상 노동과 희생을 주목하고 나눠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