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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Sep 01. 2022

내가 이기적인 엄마라고?

엄마의 해방 일지




나의 닉네임은 세젤이 맘이다.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엄마'라면 좋겠지만 세젤이 맘은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엄마'의 약자다.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을 착실히 밟아 학교를 졸업했다. 평생 밥 벌어먹고 살 안정된 직장을 갖기 위해 5년간의 지독한 수험생활을 거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직장이 생겼으니 그다음은 결혼이었다. 결혼 적령기는 이미 지났고 더 늦어지면 값만 떨어진다는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 척하다 결혼을 했다. 결혼을 했으니 아이도 낳아야 한다. 하나를 낳았는데 '그래도 둘은 있어야 외롭지 않다, 낳을 수 있을 때 더 낳아야 한다'는 육아 선배들의 말을 흘려듣는 척하다 둘째를 낳았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끝나지 않는 평생 노동 워킹맘 생활이 시작됐다.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처음 나에게 던진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와 결혼생활을 하면서 적잖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자기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엄마, 아내와는 참 다른 사람이니, 그럴 만도 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온 두 남녀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된 순간, 여자인 내가 어딘가 불리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자이기 때문에 불편한 적은 화장실 가는 것 빼고는 없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아내', '엄마'라는 프레임 속 역할을 해나가는 동안 불편한 점, 부당한 점들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한국사회에서 가사노동은 여성의 임금 노동 여부에 상관없이 여성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로 간주되었고, 가사노동과 비슷한 성격의 일을 남성이 하는 것은 남자들 사이에서는 수치스러운 일이 돼버리기도 한다.


집안일과 육아가 여자에게 우선적으로, 당연하게 주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주변에서는 크게 인심 쓴 듯 '요즘은 여자도 돈을 버니까 남편이 많이 도와줘야 한다'라고 했다. 여전히 육아와 집안일의 주체는 여성이라는 인식에는 크게 변함이 없는 듯했다.


돈을 벌어 오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도, 친정과 시댁을 대하는 모든 것을 동등하게 해야 한다 주장했다. 남편이 집에 있는 날에는 당당하게 나만의 자유시간을 가져왔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당신 참 이기적이다
모성애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아무리 전통, 관습이라고 해도 비합리적인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겠고, 공동육아자인 당신과 내가 똑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마다 나는 이기적인 여자, 모성애가 없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비단 우리 신랑뿐이 아니다. 친정엄마는 도대체 누구 편인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나를 다그치셨다.


나는 아이 둘을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자연분만을 고집하지도 않았지만 의사가 내 몸상태와 아기 크기를 고려해 수술을 권했고 큰 고민 없이 제왕절개로 출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제왕절개는 군대로 치자면 현역이 아닌 공익과 같다는 얘기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란 사람은 자연분만 출산이 아닌데도 산후조리를 자연분만 산모들과 똑같이 해야 하냐고 했다. 출산과 여성의 건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까? 한국사회 '위대한 모성'의 모습을 학습한 결과일까?


예전에 티브이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첫째를 제왕절개로 출산한 며느리에게 둘째를 자연분만으로 출산할 것을 고집하는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제왕절개 산모가 자연분만을 시도하면 산모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자연분만이 태어날 손자에게 더 좋다며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똑같이 아이를 낳았는데도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로 출산 한 엄마를 다르게 바라보는 이 불편한 시선은 무엇일까? 한 생명이 탄생하는 숭고한 행위에 온 몸의 뼈가 늘어나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 정도는 견뎌내야는 듯 한 이 모성신화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남성 중심의 가부장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배울만큼 배우고 직장도 있고, 목소리도 낼 줄 아는 요즘 여성인 내가, 가부장제의 결정판인 '결혼'이라는 제도에 던져지니 삶이 제대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회식을 가면 사회생활의 연속이 되고 아내가 집을 비우면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 정신 나간 엄마가 되는 이 모순적인 인식들을 뚫고 이 나라에서 엄마로 살아가려니 여간 빡빡한 게 아니었다.


결혼 후 남편과 부딪히면서 전통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고정된 성역할은 잘못된 것이며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힘이 되고 권력이 되는 불합리한 가정 내 역할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내 얘기가 맞다며 이해해주는 듯했지만 크게 변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행동으로 이어지는 내면의 변화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빠의 가사참여, 육아휴직 문화가 빠르게 퍼지고 있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전통 관습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많이 형성돼 있지만, 자연분만 출산을 시도하지 않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집안일과 육아에서 공동육아자와 공평한 분담을 주장하며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나는, 아직은 이 사회에서 이기적인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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