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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Aug 04. 2021

엄마를 홀대하는 것도 습관이다


  



고작 500원, 1000원이다. 라벨에 붙은 가격표를 몇 번이고 다시 보다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결국 돌아서길 반복한다. 엄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고작 500원, 1000원 차이 앞에서 또 계산하고 또 고민하고 또 망설인다. 인터넷 최저가 검색은 기본, 1+1이나 핫딜, 공동구매가 뜨면 기회를 놓칠세라 알람까지 맞춰두며 생필품을 구매한다.


여자가 엄마가 되는 순간, 모든 일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계절과 유행에 따라 예쁜 옷을 사기 위해 즐겨 찾던 쇼핑몰에 가면 이제는 제일 먼저 키즈 코너로 향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들을 큰 고민 없이 사용하다가도 아이들이 사용하는 제품을 고를 땐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졌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하고 좋은 제품을 고르게 된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도 먼저 아이들 입에 넣어주기 바쁘며 식사 내내 모자라지는 않을까 가늠하느라 맘껏 먹지도 못한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교육비와 생활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자연스럽게 엄마 자신에게 쓸 수 있는 비용은 줄어들게 된다. 나 혼자 먹고, 자고, 입으며 살다가 아이들과 남편까지 먹이고 입히며 살려니, 여간 빡빡한 게 아니다. 특히 전업주부의 주머니 사정은 커피 한잔조차 맘대로 사먹지 못할 정도로 여의치 않다. 맞벌이라면 조금 나을 수도 있지만 회사에 나가는 동안 육아도우미를 고용하거나 기관에 보내는 등 아이를 돌보는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 그게 그거라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맞벌이라고 크게 다른 건 아닌 것 같다.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은 바뀌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어머니’란 존재는 유독 자식을 위한 아낌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상징화되었고 한국 특유의 정서와 맞물려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찡하고 울컥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 어머니들은 실제로도 한 남자의 아내로, 어머니로 온몸과 마음을 바쳐 가족들을 뒷바라지 해왔다. 본인 먹을 거, 입을 거는 다 제쳐두고 없는 살림에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고 입혀 왔고, 결혼과 동시에 남자 집안에 종속되어 남편 쪽 집안일까지 도맡아 혹독한 육체노동을 당연하게 감당해 냈다. 어쩌다 남편의 사업이 번창하고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그게 바로 엄마의 성공이고 행복이었다.


엄마인 나의 인생이 아닌, 남편과 자식들의 삶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찾았던 우리 어머니들은 평생 그렇게, 그런 삶이 어머니가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삶인 것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런 어머니의 딸들로 그런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먹고 자랐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그런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배웠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우리는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이 공부했으며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꿈이 있었고,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12년의 정규 교육을 마쳤다. 4년제 대학에 들어갔고 그 어렵다는 취업전쟁에서 살아남아 직장인이 되었지만 엄마가 됨과 동시에 그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심각한 역할 갈등상태에 놓이게 된다.


2017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경력단절 여성은 기혼여성의 20%를 차지하는 181만 2천여 명이고, 이중 30대가 50프로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경력단절의 원인으로는 결혼 34.5% 육아 32.1% 임신 출산 34% 자녀 돌봄 4.4%, 자녀교육 4.1%로 나타났다.


82년생 김지영은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닥쳐온 역할 갈등 앞에서 남편보다 우선적으로 직장을 포기했고 이후 경단녀의 험난한 재취업 과정을 겪다 결국 정신이상 증세까지 오게 된다. 50~60년대생 엄마들의 전형적인 삶이 80년대생에겐 정신질환을 가져올 만큼 견디기 어렵고 자존감이 무녀 져내리는 내적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의 모성애만이 진짜 자녀를 사랑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엄마들이 바뀌었다. 우리 엄마들은 딸들이 본인과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악착같이 대학교를 보냈고, 꿈을 이루도록 지원했다. 시대가 변하며 가치도 변했다. 그리고 엄마들이 변했다.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 김미경 강사님의 말씀대로 100명의 엄마가 있다면 100개의 이상적인 엄마가 있는 것이다.





엄마의 가장 쓸데없는 감정, 죄책감 리스트를 버리자.


내 어머니에게 배운 한국 어머니들의 전통적인 역할은 지금 엄마들을 ‘학습된 모성애’라는 틀에 가두어 버렸고,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첫날, 많은 엄마들이 떼어놓고 나온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과연 아이를 두고 회사를 가는 내가 잘하는 것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어쩌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이 모든 것이 엄마 탓인 것 같아 그 죄책감은 배가 된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내 아이에게 주는 첫 음식이니 아무리 힘들어도 이유식만큼은 엄마인 내 손으로 직접 해주고 싶은 맘에,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12시가 넘도록 소고기를 다지고, 쌀을 불리고, 야채를 썰어서 이유식을 만든다. 직장에서 퇴근 후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워킹맘 일상을 소화하다 너무 힘에 부쳐 이유식을 배달시켜 먹일까 하면 정성이 부족한 엄마,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가 되는 것 같아 또다시 죄책감이 올라온다.


엄마들의 죄책감 리스트는 끝이 없다.


어쩌다 저녁 약속이 생겨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온다면 제대로 된 저녁밥상을 먹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맘이 생기기도 한다.


첫째를 낳고 약 10개월간의 육아휴직 기간을 갖었다. 어린이집은 두 돌은 지나고 보내야겠다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고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까지 시댁에서 맡아주기로 하셨다. 마침 직장에서도 승진 시기가 되어 더 이상 복직을 미루기 어려웠다. 같은 직장 내 다른 엄마들에 비하면 비교적 짧은 휴직이었지만 당시 복직 후 직장 상사분이 하신 말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건 영아기 때만이 아니다.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생이 되어도 자식은 엄마의 보살핌이 끝까지 필요하다. 혼자서 아이를 다 키우려고 하지 마라. 엄마 인생이 먼저다"


그래도 돌은 지나야지 않을까, 4살은 되어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던데, 지금 이 시기에 엄마가 곁에 없다면 아이에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데..라는 엄마의 죄책감을 부추기는 다양한 이유들은 또다시 엄마의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직장상사의 말씀대로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시기는 영아기 때만이 아니다. 아이가 자라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생이 되고, 중고등학생이 돼도 시기별로 아이에게 엄마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항상 필요하다.


아이들의 인생이 엄마의 인생 전부인 것처럼 엄마 자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엄마인 나를 홀대해서도 안된다. 엄마인 내가 나를 잘 돌보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 자녀를 잘 돌볼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인생은 엄마인 인생 중 일부분일 뿐이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들도 건강하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엄마가 자라는 만큼 아이도 자란다.


또래 엄마들과 3년째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모임 주기는 2주에 한 번으로 한 달에 2권의 책을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독서모임 대부분의 엄마들이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하거나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경우 중고서점에서 구매하고 있었다. 책 한 권 값은 평균 12,000원 정도이고 2권을 모두 구입한다면 한 달에 24,000원 정도 지출하게 될 것이다. 매번 독서모임 카톡방에 ‘도서관에서 대여했다, 아직 몇 권이 남아있다’는 내용의 글을 보면서 나를 위해 책 한 권 조차 맘껏 사지 못하는 엄마들의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내 책이 아니라면 책에 밑줄도 긋지 못하고 메모도 하지 못한다. 더구나 책은 한번 읽는다고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좋은 내용, 공감되는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아무런 표시도 못하고 메모도 하지 못한 채 정해진 반납기간에 맞추어 겨우 1 회독을 한 후 다시 반납해야만 한다.


맞벌이인 나에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점심식사 후 라테 한잔 마시는 시간이다. 가끔은 직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별다방 커피를 마시기 위해 굳이 차를 타고 다녀오기도 한다. 하루 중 점심시간 1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해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돈과 시간을 쓰며 나를 챙긴다. 하루 중 내가 리프레시되는 시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엄마들에게 프랜차이즈 커피 한잔은 거리낌 없이 마실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 아니다. 거의 식사 한 끼 가격과 비슷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데 한 달에 정해진 생활비 내에서 커피 한잔 값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책 한 권, 커피 1-2잔 정도는 오로지 엄마인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어떨까.


엄마들이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는 모두 다 비슷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지금보다 조금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가정을 유지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하는 나를 꿈꾸며 책을 읽는다.

엄마인 나를 위해 굳이 시간을 내고 돈을 써야 한다.


굳이 시간을 내서 책 한 권을 들고 카페에 가는 것. 엄마 공부를 위해 나를 성장시키는 공간으로 가서 나부터 챙기고 나를 바로 세우는 그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책 한 권의 가격은 표지에 쓰여 있는 12,000원이 다가 아니다. 책 한 권이 엄마에게 주는 선물은 상상 그 이상이다. 한 과목에 몇십만 원 하는 아이들 학원비를 내고, 시기에 맞춰 사들이는 문제집에 비하면 엄마가 한 달에 1권 정도 책을 사는 12,000원은 그렇게 큰돈이 아니다.


나를 위한 책 한 권, 커피 한잔의 가치를 후순위로 미루지 말자.

엄마인 나를 위해 굳이 책을 사고 카페에 가자.


엄마가 바로 서야 아이도 바로 선다. 엄마가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 시간을 통해 엄마가 자라고 그만큼 아이도 자란다.



엄마는 나부터 찾아야 한다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말고 내 방식으로, 꾸준히, 
나에게 물을 주고 거름을 줘야 한다. 

내가 천천히 맺은 열매가 육아의 목표가 되며 가정의 문화가 된다. 
아이는 배고플 때마다 알아서 그 열매를 갖다 먹는다.

백개의 문센, 학원보다
흔들림 없이 열매 맺으며 살아가는 
엄마의 존재가 더 근본적인 가르침을 준다

- 엄마의 20년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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