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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도일 <찬란한 존재들>을 읽고

by 윤슬log


브라이언 도일의 <찬란한 존재들>은 개인적으로 다소 난해한 번역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다소 난해한 어투와 문장들에 집중이 어려웠지만 다행히도 뒤로 갈수록 익숙해졌고,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에서 자세한 설명을 통해 이것이 브라이언 도일이라는 작가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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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눠 볼 부분은 <힘든 일이니까요>라는 제목으로 브라이언 도일이 만난 한 수사님과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작가가 수도원에 방문했을 때 마주친 수사님께 ‘어쩌다 수사가 되었는지, 외로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삶에 자진하여 뛰어든 이유가 무엇인지, 그 누구도 증명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관념에 헌신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수사님의 답은 한 마디로 간결하고 명료했는데 바로 “그것이 힘든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잘 해내기에 버겁고, 평생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한 주에 한 번씩 ‘괜찮은 수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수도 생활을 하고 있다고 수사님은 덧붙였다. 또한 수사가 되어야 제대로 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며, 도구가 되고 싶었다고 하셨다. 수사가 되면 거대한 음악을 이루는 ‘음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무엇보다 가장 잘 쓰이기 위해서는 하기 힘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수요일마다 부엌을 반짝반짝하게 닦는 일, 설거지와 풀베기와 남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일, 성전에서 성가 부르기 같은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는 일단 이 부분에서 미국과 한국의 문화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신부님이나 수사님께 어떻게 ‘성소’가 왔고, 왜 성직자의 길을 가기로 했는지 이렇게 구체적이고 자연스럽게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신선했다. 또한 지극히 사적인 물음에 스스럼없이 답하고, 자세히 부연 설명을 곁들이는 것 역시 신기했다. 성서모임을 하면서 신학교를 다니다 나온 그룹원분께 어떻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가 “그건 개인적인 이야기라 말해 줄 수 없다.”라고 딱 잘라 거절당한 경험이 있기에 스스로 물으면 실례가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왔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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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가톨릭출판사 북클럽의 <찬란한 존재들>이라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는 분이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을 따르기로 했는지, 수도 생활을 하며 무엇을 느꼈는지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특히 거대한 음악을 이루는 하나의 ‘음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와 수도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본인에게 주어진 가사 노동에서도 큰 가치를 발견하는 시각이 인상 깊었다.


어렵고 힘든 일임을 잘 알고도 내가 선택한 길. 평생을 가야 하는 소명과 사명의 길. 때로는 주님의 은총 말고 주께서 허락하신 십자가도 묵묵히 지고 가야하는 길.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길 끝엔 반드시 행복한 주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으며 오늘도 나는 묵묵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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