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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재 Aug 09. 2023

언덕 하나, 골짜기 하나에 하루,

사금파리 한 조각

 얼마 전 가까운 사람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고 희망, 소망과 함께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한자어 ‘절망’은 말 그대로 바라는 것이 끊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철학자 키에르케고어는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모든 소망과 희망이 단절된 사람은 죽음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가올 날들은 항상 보기 좋게 예상을 비껴간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예상 밖의 일보다 예상했던 일이 더 많이 벌어졌다면 세상은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사람은 소박한 바람이나 커다란 대망을 가슴에 간직한 채 어떻게든 삶을 버텨낸다. 작든 크든 꿈은 삶의 동력이 된다.


 재미교포 2세인 린다 수 박 작가가 쓴 작품 ‘사금파리 한 조각’에는 다리 밑에서 절름발이 아저씨와 함께 사는 고아 ‘목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목이가 사는 마을은 고려의 도공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청자를 만들어내는 도자기 생산지다. 목이는 후에 스승이자 양아버지가 되는 도공 ‘민 영감’이 작업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며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 마침내 완벽한 무늬를 새기겠다는 마음을 키워간다. 민 영감 밑에서 묵묵하게 잡일을 하던 목이는 스승의 꿈을 위해, 또 자신의 꿈을 위해 민 영감의 작품을 싸들고 먼 길을 나선다. 하지만 낙화암에서 그만 강도를 만나게 되고, 민 영감의 도자기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여정의 목적은 왕실의 도자기를 관리하는 감도관에게 민 영감의 작품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목이는 절망했지만 이내 일어섰다.


‘목이는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바로 서서 어깨를 넓게 폈다.’


 마음을 굳게 먹은 목이는 주운 사금파리를 챙겨 목적지인 송도에 도착했고 깨진 도자기 조각을 감도관에게 보여줬다. 반신반의했지만 감도관은 깨진 조각을 보고서 민 영감의 솜씨를 재차 확인한다. 제목으로 쓰인 ‘사금파리’라는 단어는 사기그릇의 깨진 조각을 뜻하는 말이다. 결국 민 영감은 왕실의 주문을 받게 되고 목이는 형필이라는 이름, 스승의 집에서 자식처럼 살게 되는 행운, 무엇보다 자신의 물레도 생기고 도공이 될 기회까지 얻는다. 그러나 목이에게 세상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준 두루미 아저씨는 목이가 떠난 사이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네 마음은 네가 송도까지 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하지만 네 몸한테는 그 사실을 일러주면 안 돼. 언덕 하나, 골짜기 하나에, 하루, 이처럼 한 번에 하나만을 생각하게 만들어야 돼. 그러면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마음이 지치는 일이 없을 거야.”


 소설은 목이가 수레를 끌며 산길을 올라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리고 두루미 아저씨의 가르침은 언젠가 완벽한 무늬를 새기게 될 거라는 목이의 꿈이 된다. 비록 지금은 보잘것없고 볼품없어도 두루미 아저씨의 말처럼 언덕 하나, 골짜기 하나에 하루, 한 번에 하나만을 생각하며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 사금파리 한 조각이 푸른 청자가 될 거라는 믿음, 정처 없는 삶이 그린 궤적조차 언젠가 아름다운 무늬로 완성될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오늘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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