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끝이 아닌 시작
1층 카페의 내부수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미정은 미국에 가기 전 카페를 그만하겠다고 그녀의 엄마에게 통보했다.
건물주인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 대신 부동산에 카페를 내놓았다.
그리고 맏사위인 창규에게 말했다.
"병원을 이전하게. 매일 얼굴 보는 일이 서로 괴로운 일일테니 말일세."
창규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수용할 뜻을 표했다.
그에게 이 건물을 떠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의 장모도 미정도 잘 알고 있었다.
미정은 카페운영을 그만 둠과 동시에 창규에게 이별을 통보하였으나 병원이전에 대한 개입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입장이 달랐다.
딸의 마음고생이야 지 타고난 성정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속을 잘 알 수 없는 딸이라 엄마라도 다 알 수는 없지만 미정이 웬만해선 이런 결정을 하지 않으리란 것은 알았다. 처음 이혼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윽박 해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결정에 대해 미정의 한 번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딸의 결정에 대해 그녀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남편이 죽은 뒤로 그녀는 외롭고 힘든 삶의 여정에서 큰 딸 미정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큰 딸 미정은 엄마의 곁에서 엄마의 손을 잡아 주고 엄마의 어깨를 감싸주는 딸이었다.
도매유통사업은 운이 따라주어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녀는 무서웠다. 남편이 사라진 것처럼 돈도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
집을 사거나 부동산을 살 때마다 아직 고등학생인 미정이를 데리고 다녔다.
미정에게 소리 내어 계약서를 읽게 하면 그녀의 가슴이 한결 안정되었다.
딸과 함께라면 어디든 무섭지 않았다.
그녀에게 미정은 그러한 존재였다.
"엄마, 나와 그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 않아요. 그래서 미움도 없어요. 미안할 뿐이죠."
딸의 이 한마디로 이혼결정에 동의할 수는 있으나 병원을 이전하라는 말은 사위에게 모질게 구는 것 같아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살갑게 굴면서 정이 들대로 든 사위였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다.
"그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야 더 행복할 거예요.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요."
미정의 눈은 확고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어이 말을 해야만 했다.
"병원이전에 드는 비용은 내가 감수하겠네."
"아닙니다. 그동안 장모님이 해주신 게 얼만데, 제가 염치가 없습니다. 장모님과 미정에게 받은 사랑은 언제고 꼭 갚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정선은 미정이 미국에 간지 3개월 만에 메시지를 받았다.
'선생님, 오랜만에 연락드려요. 잘 지내시죠? 저는 당분간 예진이와 미국에 더 머물 예정이에요. 뉴욕에 있는 요리학교에 입학했어요. 프랑스요리를 배우고 있고요. 2년 후 예진이와 한국에 들어갈 것 같아요. 예솔이도 올 연말에 이곳 학교로 입학할 예정이고요. 바이올린 전공을 하겠다고 해서 학업과 음악을 함께 수학할 학교를 알아보고 있어요. 곧 한국으로 예솔이를 데리러 한번 나갈 겁니다. 서울에 가면 선생님과 제일 먼저 와인 마시고 싶어요. 와인 소믈리에 과정도 공부하고 있는데요. 와인이 왜 제게 잘 맞죠? ㅎㅎ 그리고 선생님의 즉흥노래를 듣고 싶어요. 많이 그립네요. 건강하시길 빌어요.
*ps: 지우선생님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제가 없는 동안 예솔이 바이올린 지도 열정적으로 해주신 거 정말 감사하다는 말도요. 두 분 제법 어울리는 한 쌍의 바퀴벌레예요. ㅎㅎ"
정선은 미정의 메시지를 몇 번이고 읽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스러움과 재능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깊은 내면의 여행을 하면 할수록 정선도 함께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상담자가 내담자와 교감을 하며 둘이 아닌 하나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상담자로서는 행운이었다.
상담자들 사이에서는 '내담자 복이 있다.'라고 말한다.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미정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이제부터 저의 그림자예요. 저를 지켜주는 그림자. 그림자 괴물이 저를 지켜주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 바라볼수록 친근하고 따뜻했어요. 힘들 때 바라볼 거예요. 나의 그림자를요."
그리 말하고 해맑게 웃었다.
미정이 차분하고 맑은 눈을 하고 정선을 마주 보고 있었다.
정선의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그녀가 보였다.
정선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자신이 눈에 비치고 있었다.
지난한 그 시간을 보냈던 것은 자신을 보기 위함이었다.
잡히지 않는 그림자를 잡으려는 그림자놀이였다.
미정과의 그림자놀이는 끝이 났지만 끝이 난 자리에서 다시 삶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정선의 그림자였고 정선은 미정의 그림자였다.
이제 시작이다.
- The End
그동안 모자란 저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신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큰 틀이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수정을 해 나갈 예정입니다.
언젠가 출간할 각오로 이제부터 더 각고의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제 자신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임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용기와 힘을 실어 준 친구, 작가님들 덕분에 완주할 수 있어서 더욱 감개무량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특히 브런치 작가로 신청하도록 용기를 준 해솔은정님! 무한정 감사드립니다.
올릴때마다 바로 그날 빠짐없이 읽어주신 로사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구독해주시고 응원해주신 Sonya님과 다른 구독자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면서 새내기 작가의 부족한 글을 꼬박꼬박 읽어주시는 선배작가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추분이 지나면 밤의 길이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백일몽이 끝나고 진짜 밤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이 가을,
내면여행이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가을은 시작하기 딱 좋은 계절이니까요.
감사합니다.
- 운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