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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맞춰가야

_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by 벨리따

1. 새로운 선생님, 코치님

2. 네 명 중 두 명 참석. 초등 고학년부의 여학생 두 명이 함께 수업. 총 네 명 수업

3. 워밍업 10분

- 사이드 스텝, 뒤로 사이드 스텝, 한 발만 벌집 모양 안에 넣으며 스텝, 벌집 모양 안과 바깥으로 한 발씩 스텝

- 설명 충분, 동작 천천히

4. 기본기 훈련 70분

- 볼 감각 훈련 50분

: 앞으로 가면서 공 밀기, 뒤로 가면서 공 당겨오기, 축구 용어로는 인사이드 스텝, 드래그, 드래그 후 시저스, 인사이드 & 드리블

- 콘 세워놓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훈련 20분

: 앞에서 배웠던 내용을 연습. 앞으로 나아가면서 연습을 했지만 이번에는 콘이 있음.

5. 미니 경기 10분

: 2 대 3으로 경기(초등생 대 성인반&코치)

: 2 대 4로 승

: 겁나 힘들다. 오늘도 폐가 허연 거 같다.





수업 나흘 전에 연락이 왔다. 선생님이 바뀐다고 했다. 센터 감독님이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코치님이 우리 수업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야외 훈련할 때 지나가면서 본 적 있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던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대답하면 바로 다음 질문을 했다. 나는 질문을 받으면 어떨까? 이런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아, 또는 몰라서 초반에는 대답도 빨리 나오지 않겠지만 집중하면 못할 일도 아니디. 틀린 답이면 어때! 그러면서 또 배우는 거지. 어떤 선생님일까, 스타일일까, 내가 그때 본 그런 모습으로 수업을 할까. 궁금한 상태로 수업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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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반 네 명 중 두 명이 결석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앞 수업에 있던 초등 고학년부 중에서 여학생 두 명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 반은 야외 훈련이 있는 날이었는데, 소녀들은 거기 가지 않고 좀 더 늦은 시간에 우리와 함께 하기로 했나 보다. 지난주에 센터에서 하는 걸 봤다. 우리와 실력 차이가 난다. 그래도 오늘 휴강이 될 뻔한 수업인데 와줘서 고맙다.




몸풀기 시간부터 다르다. 달리기 없이 스텝부터 바로 연습한다. 동작 하나하나씩 설명했다. 나는 사이드 스텝을 연습할 때 중심을 낮추고 빠르게 움직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코치님은 몸이 같이 따라가 줘야 한다고 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게 몸에 익으면, 보디 페인팅을 할 때 중심이 확 가겠다고. 신경을 써서 하지만 처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알려주는 대로 동작이 나오지는 않는다.

스텝 훈련할 때는 한 명씩 진행했다. 한 명이 끝까지 다 하는 걸 보고 다음 사람이 출발했다는 말이다. 코치님은 지금 하는 사람의 동작에 집중할 수 있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의 동작은 정확하다. 모범 자세를 보고 따라 하면 도움이 되겠지만, 글쎄 뭐랄까. 벽이 좀 높다. 나와 비슷한 수준, 나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의 동작을 보고 따라 하는 게 쉬울 때가 있다. 똑같이 설명을 들었어도 사람마다 하는 모습이 다른데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기본기 훈련 시간. 오늘은 공 감각 훈련이다. 시환이만 데리고 둘이서 연습하러 간 적이 있다. 나는 아직 기본기 훈련을 많이 해야 하는 단계인데 혼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검색했었다. 볼 감각이 그중에 하나였다. 영상에서 본 동작도 있고 처음 보는 훈련 방법도 있었다. 어떤 영상은 설명 없이, 하는 모습만 보여주기도 했다. 한 동작당 30초씩, 이어서 열 개 넘게 보여주기도 했는데 배속을 천천히 설정해서 봐도 설명이 없으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명까지 해주는 영상을 찾아 따라 했던 기억이 난다.


코치님이 알려주는 동작을 하는 동안 정신이 없었다. 처음 배우는 동작이 많았기 때문이다. 글에 쓸 때, 훈련한 내용을 다 적으려 하지만 위에 적은 건 일부다. 한두 개는 빠진 거 같다. 떠올려봐도 모르겠다. 아직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코치님. 일단, 설명이 구체적이다. 축구 동작 알려주는 유튜버를 보면 올바른 동작은 어떻게 하는 건지, 어느 상황에서 하는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코치님도 자세하게 알려준다. 설명이 긴 점이 있는데 그렇다고 오 분을 넘기지 않는다. 오히려 동작 설명을 제대로 해주니까 도움이 된다. 몸에 익어서 동작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이 있다. 또는 축구는 이론보다 몸에 배어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론보다 직접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몸으로 나오려면 머리로 이해를 해야 한다. 이 말은, 머릿속에서 동작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동작 설명이 기본이고 이 동작을 왜 하는지, 수비수나 같은 팀 선수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건지 알고 있으면 상황을 그리기가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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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할 때 정량화된 레시피를 제시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따라 한다. 물의 양까지 말이다. 양념, 주 재료는 다 그람, 스푼을 알려주는데 물을 잠길 만큼이라고 한 영상을 보고 따라 하면 맛있지가 않았다. 물과 불의 세기까지 알려주는 사람의 영상을 좋아한다.


코치님은 올바른 자세뿐만 아니라 조심해야 할 점도 짚어준다. 여기에 천천히 보여주기까지. 일단 머리에는 입력했다. 문제는, 중심을 낮추고, 팔은 90도로 접어 겨드랑이 옆까지 올리고,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공이 맞는 위치, 발에 맞는 위치, 발의 방향, 공 차는 세기 등 한 동작 안에서도 신경 써야 할 게 많다는 점이다. 중심을 낮추면 좀 더 힘 있게 공이 갔고, 발과 공의 위치를 좀 더 신경 쓰면 다음 발이 안 따라왔다. 머리로는 다 아는데, 할 때마다 다 다르게 찬다. 입력 값 대로 나오지 않는다. 축구 선수들, 조기 축구회에서 연습하는 사람들은 언제 이렇게 많은 걸 매번 신경 쓰면서 할까 생각하면, 그들이 대단해 보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열 살인 시환이가 이걸 한다고 생각하니 기특하면서도 내가 축구에 대해서 뭐라 얘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드래그, 시저스, 한 발로 인사이드와 드리블을 번갈아가며 연습할 때는 아무래도 발목에 무리가 간다. 한 발로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발목이 내 체중을 견딘다 생각하면, 난 발목에 감사하고 발목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특히 왼발은 더 힘들다. 도저히 안 되면 얘기해야겠다 싶었는데 그때쯤 1차 볼 감각 훈련이 끝났다.


이제 콘을 세워 놓고 앞에 배웠던 동작을 다시 연습했다. 앞에서는 동작을 배운다는 생각 때문에 천천히 했다. 이렇게 한 게 발목에는 좋지 않았다. 콘 사이사이를 드래그하면서, 팬텀 하면서, 인사이드 & 드리블 연습하면서 나아가니 오히려 발목이 괜찮았다.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 주에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다음 주에는 미리 내 상태에 대해 말하기는 해야겠다. 오래 하기 위해서다.




축구 수업의 꽃, 미니 경기. 오늘은 10분만 한다. 이번 주에 유산소 운동은 오늘, 이 축구 시간이 처음이다. 초등학생 두 명과 우리의 대결. 다행히도 코치님이 우리 팀의 골키퍼를 해줬다. 사람 수로는 2 대 3인데 실력으로 따지면 네 명 이상을 상대하는 기분이다. 상대팀은 공격할 때는 두 명이 다 나와서 패스를 주고받으며 기회를 만들어 갔다. 수비할 때는 한 명은 재빨리 골대로 달려가고 다른 한 명은 수비도 하지만 중간에 공을 가로채기도 한다.


10분 뛰었다. 뛴 지 3분부터 숨이 차다. 허리를 숙이면 더 힘들다고 해서 선 채로 호흡한다. 우리끼리 패스를 주고받을 때 숨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오래 가지고 있거나, 계속 패스를 주고받다가는 공을 뺏길 거 같아 패스받고 슛을 찼다. 막히고, 상대가 골을 잡으면 또 뛰어야 한다. 숨을 고를 시간이 충분하지가 않았다. 악순환의 느낌이다. 새벽에 일어난다고 알람을 맞춰놓지만 다 끄고 잔다. 새벽에 일어난다 생각하고 오늘 할 일을 계획했는데, 두 시간이 사라지니, 밤늦게까지 하게 된다. 다음 날 또 못 일어나고, 피곤한 상태에서 계속할 일을 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집에 와서는 한동안 자리에 앉아 일어나지를 못했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운동이 힘들 때면 바로 씻기보다는 쉬는데 오늘은 15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10분이 힘들었던 걸까. 두 명이 뛰어서 숨이 찼던 걸까. 유산소 운동을 하지 않아서 뛰는 게 벅찼던 걸까. 십 대와 뛰어서 폐가 허연 느낌이 들 정도라 여겼던 걸까.

선생님이 바뀌니 수업 방식이 달라졌다. 예상은 했다. 1년 반 전부터 수업해 온 회원도 있다. 코치님은 이전 방식을 물어보고 진행할 수도 있고, 그의 방식으로 가르칠 수도 있다. 첫 수업, 만족한다. 무엇보다도 설명을 구체적으로 해줘서 도움이 되었다. 동작만 보고 따라 할 수도 없는 나이이다. 올바른 자세만 듣기보다 주의해야 할 점도 미리 들으니 동작을 할 때 자세나 공 위치, 발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된다. 그렇다고 설명이 길지는 않다. 이론이 길면 실제 연습하는 시간이 줄어드는데, 시간은 적당했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을 해줬다.


이제 우리는 서로 맞춰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목표부터 얘기를 나눠봐야 할 거 같다. 취미로 배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설렁설렁하고 싶지는 않다. 기회가 되면 풋살이나 축구 대회도 나가고 싶다.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의 발목 상태도 말해야 한다. 발목이 아프다고 해서 내용 일부를 빠뜨리고 하는 건 싫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기본기 배우는 시간을 많이만 하지 않으면 발목에는 무리가 없을 거 같다. 그리고 그때 내가 조금 쉬더라도 농땡이 피우는 거라 여기지만 않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목이 꺾여서 반깁스를 한 적이 있다고 말해야겠다.


배우는 사람은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한다. 가르치는 사람도 같은 방향일 거라 생각한다. 이때까지는 이렇게 했어요, 이렇게 배웠어요라고 말하기보다 바뀐 코치님의 방식에 맞게 적응하려 한다.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때까지는’이라는 단어가 싸움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한들 달라질 일은, 딱히 없다. 듣는 사람은 무시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말한 사람은 이전 방식이 나오지 않으면 불만이 생긴다. 서로 감정이 상한다. 이런 일 만들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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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도 그렇게 지내왔다. 학기 초가 되면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하는 선생님도 있었고, 지각 1분도 허용하지 않는 선생님도 만났다. 처음엔 눈치도 보지만, 적응이 끝나면 어느새 어떤 선생님인지 다 파악하고 알아서 행동한다. 회사 다닐 때는 상사가 바뀌었다. 회사에서 정치하는 상사도 있었고, 실력이 있어 무시하지 못하는 사람도 만났다. 회의 때마다 불려 가서 자리에 없는 사람도 만나봤다. 어느 라인에 서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었고, 상사의 기대에 맞춰 공부를 하기도 했다. 자리에 없으니 서류가 밀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급한 일은 서류 더미에 쌓아두지 않고 책상의 정중앙에 두어 빨리 결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면 급훈과 학교 원칙, 선생님의 기준에 따라 한 해를 보낸다. 성격, 성향, 가치관이 다른 팀장을 만났지만 요구하는 걸 맞춰가며 일 처리했다. 새로운 코치님을 만났다. 처음이라 알아가고 맞춰가야 하는 부분, 분명히 있다. 금요일마다 운동을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그렇게 결국, 공통된 목표의 수준까지 도달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마흔이 넘어 축구를 배우면서 나이와 실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이가 어리다고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지도자를 하는 사람은, 적어도 축구를 십 년은 한 사람이다. 나보다 더 많이, 제대로 알고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실력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 가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견을 내더라도 일단 따라 한 후에 하려 한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가르치는지 알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는 건, 변화의 시작이다. 좀 더 나아지고 좋은 방향으로, 그게 한 방향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축구를 배우며 나는 새로운 변화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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