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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도 괜찮아

_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에게

by 벨리따

1. 15분 러닝 앤 스텝

- 여섯 바퀴 뛰기

- 피치, 사이드 스텝, 크로스 스텝, 사이드&크로스 스텝, 뒤로 사이드 스텝, 뒤로 크로스 스텝

2. 55분 기본기 훈련

- 인사이드 터치 두 번 & 같은 발로 드래그, 발 바꿔서 반복

- 아웃사이드 터치 두 번 & 팬텀, 팬텀 할 때는 공이 가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 왼발 인사이드 터치, 오른발 아웃사이드 터치, 왼발로 V 모양 그리며 당겨오기. 오른발 인사이드 터치, 왼발 아웃사이드 터치, 오른발로 V 모양 그리며 당겨오기를 반복

- 오른발 아웃사이드 터치, 왼발 인사이드 터치, 왼발 V 모양 그리며 당겨오기. 위에 와 순서 같은데 인사이드로 시작하느냐 아웃사이드로 시작하느냐의 차이. 글 쓰면서 알게 됨.

- 인 앤 아웃을 같은 발로. 한쪽 다리로는 콩콩해야 함.

- 아웃 앤 인 같은 발로. 역시 반대 다리로 콩콩

- 이 모든 건 한쪽 골대에서 반대 골대까지 연습.

- 마지막 5분은 수비수 세워 놓고 배운 거 연습. 전부 다 하지는 않고, 인 앤 아웃 위주로 연습. 인 앤 아웃 버거가 생각이 났다.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3. 미니 경기

- 4 대 1로 붙음

- 3 대 0으로 승





11월에 일정 때문에 쉬었던 수강생이 12월에 왔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쉬면 가지 말까라는 생각도 들 텐데, 한 달 만에 복귀했다. 내가 발목 부상으로 쉬어봐서 안다. 만약 시환이가 이 센터를 다니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다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회복하는 동안 복싱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복싱 먼저 하면서 살 좀 빼고 축구를 배우러 갈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시환이가 다니고 있어서 다른 곳으로 새지 않았다. 돌아온 사람이 있으니 쉬는 사람도 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한 명이 다시 돌아왔어도 수업은 네 명이서 한다. 여기서 어떤 이유로 한 명이 빠지면, 세 명. 우와, 생각만 해도 힘드네.





오늘 기본기 연습, 전반적으로 어려웠다. 하나씩 뜯어보면 모르는 거 없다. 인사이드 터치, 드래그, 아웃사이드 터치, 팬텀, 인 앤 아웃, V 모양 그리기. 이 중에서 내가 배우지 않은 건 인 앤 아웃 하나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늘지를 않는 건지. 보통 하나의 동작을 최소 열 번 정도 반복한다. 서너 번 하면 내 몸이 아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자꾸 고개를 갸우뚱했다. 집중을 했는데도 말이다. V 모양을 그리며 공을 당겨올 때는 앞에 배운 동작에서 발이 바뀌었는데 이걸 외우려고 하니까 안 된다. 외우지 않고 몸에 맡기면 어떤 경우는 반대 발로 공을 당겨오고 있었다. 다행인 건, V 모양을 그리거나 다음 동작을 하면서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쉬운 건, 같은 실수가 연습할 때마다 되풀이된다는 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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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앤 아웃을 연습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른발 잡이여서 왼발로 지탱하고 몸을 버티고 있으니 발목이 아프다. 발을 바꿔 연습했다. 보기에는 그렇게 어려운 동작이 아닌데 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공 없이 몸의 중심을 옮기니 설명대로 하는 듯했는데 공만 두면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 중심이 덜 움직였거나, 공을 힘없이 맞히거나. 어쩔 수 없이 다시 발을 바꿨다. 오른발이 그나마 되고 난 다음에는 왼발로 연습했다. 조금 나아졌다. 처음에는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던데 오늘은 한 계단 점프도 하지 못하고 처음과 비슷한 실력에서 끝났다.


시환이가 인 앤 아웃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제법 한다. 영상 보고도 따라 한다. 설명도 필요 없다. 인 앤 아웃뿐만이 아니다. 굳이 왼발로 인사이드 터치, 오른발은 아웃사이드, 왼발로 V 그리며 가지고 오기 이렇게 알려주지 않아도 동작을 보면 두세 번 만에 따라 했다. 나도 머리로 이해를 못 한 건 아니다. 두세 번이냐, 예닐곱 번 만에 하냐 그 차이는 있다. 그런데 오늘은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한 발로 공을 터치한 후에 점프를 해야 하는데 공을 약하게 차서 다음 동작하기가 어려웠다. 또는 공을 세게 차서 공만 옆으로 훌쩍 갔다. 왼발로 공 터치할 때는 더 문제다. 확실히 발목 부상 후, 공차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무의식에서는 터치가 아니라 비껴갔으면 하는 모양이다. 발이 공에 닿지 않았다. 선수들도 많이 하는 동작이던데,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 동작은 가족끼리 공 차러 갔을 때 반드시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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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기 훈련 시간에 헤맸다. 유독 심한 날이었다. 낮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면 불안했다. 내가 부족하고, 못나 보이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지금은 아니다. 달라진 계기가 있냐고 묻는다면, 세 가지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 '글쓰기'이다. 오늘처럼 축구하는데 잘되지 않는 경험을 적는다.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는 큰일이었지만 적고 눈으로 보면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못한다고 해서 글에 '너는 이것도 못하냐!'라고 비난하는 글을 담지 않는다. '좀 더 연습해 보자.' '처음이잖아.' '하면 늘어!'라며 나를 토닥인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위로할 때와 상황을 제대로 봐야 할 때는 구분해야 한다. 똑같은 동작을 50일 했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면 그때는 괜찮다고 말하기보다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글에 나를 다독이기도 하고, 문제와 해결 방법을 찾으면서 부족한 점을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둘, '독서'이다. 책을 읽으면 먼저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떤 이유로 독서를 시작했고 어떤 방법으로 책을 읽었는지, 기록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지, 육아할 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임하는지 등등. 뭔가 잘 안되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갈 때면 읽는 책이 있다. 일본 경영자인 이나모리 가즈오의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 이은대 작가의 <작가의 인생 공부>이다. 이 세 사람의 책은 공통적으로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담고 있다. 읽으면 쉽고 빠른 길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마음처럼 잘 안되더라도 좌절하는 게 아니라 이것 또한 내가 겪고 지나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삶의 중심을 잡아간다.


셋, '자신감'이다. 나는 꾸준하게 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자신감을 쌓아갔다. 예전에는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이었지만 매일 책 한쪽이라도 읽고, 매일 글 한 줄이라도 쓰는 건 2년째, 다이어리에 기록 남기는 건 3년째 하고 있다. 과거의 나는 책 읽기 붐이 일어나면 책을 샀다. 블로그 해야 한다고 하면 계정 만들어서 글을 썼다. 대세가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갔다고 하면 블로그는 방치하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 한 마 다리로 누군가의 말에 따라 조종당하는 삶이었다. 생각도 없었고 어디 가서 의견도 내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다. 습관, 더군다나 읽고 쓰는 걸 매일 하는 사람이다. 내 가치관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내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쌓인 하루하루는 내가 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생기게 했다. 이런 자신감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는 헤매도 괜찮게 여기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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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덕분에 올바른 동작의 축구 동작이 나오지 않는 수업에서도, 경상도식 소고깃국을 끓였는데 맛이 시원하게 나지 않을 때도, 아플 날에도, 차가 막히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말로 상처를 받았을 때에도,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은 하루에도 생각을 바꿀 수 있었고 마음을 좀 더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





살면서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시기를 보낼 수도 있다. 다만 좋지 않은 일을 겪을 때는 이런 상황만 계속 바라보고 떠올리기보다 벗어나려는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난, 시련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 가지에 대한 한 줄 일기를 꾸준히 써보면 좋겠다. 세 가지는 바로 배움, 새로운 경험, 달라진 내 모습이다. 지금 이 일이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이 실패와 헤맴 덕분에 새로운 걸 경험하는 건 무엇인지,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인지를 한 줄로 적는 것이다. 쓸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한 거라고는 술 퍼마시고, 한탄한 게 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세 가지를 적어보자고 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적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 어려움을 실패라 여기지 않고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문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적극적인 자세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줄 일기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이전보다 더 성장한 당신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아는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헤매고, 어렵고, 안 풀리면서 뭔가를 획득한 사람은 없다. 나는 오늘 지독하게 감도 못 잡으면서 헤매도 괜찮다는 점뿐만 아니라, 무엇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는지에 대한 강력한 무기 세 가지를 확인했다. 헤매면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자신감을 쌓은 건 아니지만 그 시기가 있은 덕분에 지금 행복하다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직진의 인생만 살았더라면 몰랐을 삶이다. 축구를 통해 둘러 가는 삶에 대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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