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다시 Apr 05. 2023

오랜 것들의 소중함

엄마 집의 케케묵은 살림살이를 볼 때마다 미운 소리를 했다. 

-이렇게 낡은 것이 뭐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냐, 내가 준 돈으로 새것으로 좀 사라, 이것 때문에 집안 분위기도 어둡다, 손님들 보기에 부끄럽다. 

엄마는 아무 소리도 없이 듣기만 했다.     


뚜껑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무거운 냄비, 혼수로 가져온 식기 세트 그리고 무딘 칼까지 낡디낡은 주방 살림은 바로 내 물건들이다. 저녁에 떡을 찔 때 삼발이를 꺼내며 십 년은 넘게 썼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것들을 새것으로 바꾸지 않는 건 엄마와 인연 때문이다. 엄마의 돈과 손길 그리고 말과 정이 깃들어 있는 물건들이다.     


내 옷장엔 88 사이즈에 노년층 브랜드 옷이 여러 벌 있다. 연로하신 엄마가 물건을 정리하며 버리기 아까운 것을 나에게 주었고 난 그 옷을 덥석 받아왔다. 내겐 어울리지 않으나 원단이 좋아 옷수선소에 맡겨 리폼해서 입을 욕심이었다. 하지만 막상 집에 가져오니 수선하려던 마음이 주춤했다. 엄마의 넓은 가슴과 풍만한 엉덩이, 두꺼운 허벅지와 푹신한 어깨가 들락날락했던 옷인데 일부분을 잘라내서 꿰매고 바꿔서 입을 생각을 하니 엄마의 사랑을 훼손시키는 것만 같았다.      


장성한 아이들이 떠났다. 아이들 방엔 그들의 냄새가 묻어있는 물건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함께 살 땐 부모 자식 사이를 화목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정리좀 해라, 다 버려, 엄마가 다 버릴거야. 

-엄마가 버렸지?, 엄마 때문에 망했어, 이젠 내 방에 들어오지 마! 

함께 살 땐 청소하고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지금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아이들의 물건을 보관하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아들이 벗어놓고 간 빵꾸난 양말과 딸의 촌스러운 검정 바지까지도, 욕조에 붙어있는 짧은 머리카락과 긴 머리카락마저도 아쉽다.     


방학 때 딸이 왔다. 

-벽지가 너무 촌스러워, 커튼도 좀 바꾸자, 아직도 이 옷 입고 다녀?, 다 버리고 바꿔!     


3개월 만에 엄마 집에 갔다. 화장실 세면대엔 내가 쓰다만 일회용 폼클렌저와 버릴 요량으로 가지고 갔던 낡은 칫솔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오늘도 주방의 몇십 년은 더 된 식기가, 이불장의 오래된 솜이불이, TV장 아래의 주인 잃은 빛바랜 책 몇 권이 눈에 띄었다. 엄마가 내 눈치를 흘끔 봤다.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다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