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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와 차이콥스키

모네 양귀비 들판, 차이콥스키 꽃의 왈츠

by 에운 Eun

<<모네와 차이콥스키>>


{{모네 양귀비 꽃밭}}

끌로드 모네 (1840 - 1926)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이다.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상파의 창시자이면서 개척자라고 불린다.


모네의 그림 중에서 <<양귀비 꽃밭>>을 나는 선택했다.

그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름다운 꽃밭.

1873년에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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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하면 어떤 음악이 떠오를까?

꽃이 흐드러져 있는 곳에서 왈츠를 춘다면?


<<차이콥스키 발레 호두까기 인형 중 꽃의 왈츠>>


차이콥스키 (1840 - 1893)


러시아의 작곡가이며 지휘자였다.

국제적으로 영향을 미친 최초의 러시아 작곡가로 평가를 받는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도핑 문제로 러시아는 러시아라는 국가 이름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러시아 올림픽위원회 선수단'으로 출전했다.

당연히 금메달을 따도 러시아 국가가 울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이 울렸을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을까?


바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1악장 앞부분이 울렸다.

그 말은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 바로 차이콥스키라는 것이다.

와우.


그런 차이콥스키는 대단한 작곡가, 지휘자였다.

그러나 그는 법대를 나와서 법무부 서기관으로 지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고,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머니는 음악으로 돈 벌고 살 수 없다고 반대하셨다.


안톤 루빈스타인은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음악원을 설립했다.

차이콥스키는 음악원 야간반에 입학하여 일과 음악 공부를 병행했다.

그러나 그는 일보다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 커지면서 공무원을 그만두고 음악에만 몰두하여 음악 학도가 되었다.


1865년 말 루빈스타인 형제의 추천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에 화성법 교수가 되었다.


이후 철도 미망인인 폰 메크 부인을 알게 되어서 후원을 받게 되었다.

모든 일을 그만두고 오직 음악에만 전념하며 창작 활동을 하게 되었다.


서유럽을 순회하며 연주와 여행을 하였고,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가들에게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서유럽 음악스럽다고 비난을 받곤 했다.

폰 메크 부인이 사업이 안 좋아져서 후원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후원이야 후원하는 사람 마음인데 후원을 끊었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는 말이 있다.

받는 사람에게는 화날 수도 있긴 하지. 그렇지만 조금 웃긴다.


차이콥스키는 동성애자였다.

그 당시는 동성애자라고 밝히지 못하는 시대 상황이었다.

차이콥스키는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콜레라가 아닐 거라고 하는 이야기가 확실하다고 한다.

왜냐면 콜레라는 전염병이라서 장례식을 하지도 않고, 시체에 손을 대서도 안된다.

그러나 차이콥스키 장례식에서는 사람이 엄청 많이 왔고,

시체에 손을 잡고, 키스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콜레라는 아닐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썰에 의하면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라서 법대 동문들이 그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자살하라고 종용했다는 썰이 있다.


진실은 차이콥스키만 알겠지만,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봐도 답이 없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크리스마스만 되면 늘 공연되는 스테디 발레이다.

그중에서 '꽃의 왈츠'를 들어보자.

양귀비 꽃밭에서 왈츠를 추는 상상을 하며 발레를 보고 음악을 듣자.

발레는 볼쇼이 발레단의 발레를 보고 싶었지만, 동화 같은 배경 때문에 뉴욕시티발레단으로 추천한다.

동화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https://youtu.be/LKcZL8q1eBw?si=LG5pDADz2kUVZG5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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