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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by 에운 Eun

그림을 이야기하면 르누아르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르누아르 그림을 안 좋아할 이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같이 일상을 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림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르누아르의 그림이다.

그래서 르누아르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일 것이다.

Auguste Renoir 르누아르 (1841 – 1919)


프랑스 대표 인상주의 화가이다.

인상파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 화려한 멋을 보인다는 평을 듣는 르누아르이다.

여성을 따뜻하고 우아하고 부드럽고 다채롭게 표현하여서 그림을 대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 또한 그림 속의 아름다운 여인, 아가씨, 소녀가 되는 것 같다.


그런 르누아르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바로 루마티스 관절염이 그를 괴롭혔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르누아르는 손에 붓을 붕대로 감고 계속해서 그렸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기 때문이네.”


멋지다.

고통은 지나갔지만 르누아르의 그림은 지금까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르누아르가 1877년 몽마르트에서 걸작을 완성하였다.

19세기 말, 노동자 계급의 파리 사람들은 옷을 차려입고 저녁까지 춤추고, 마시고, 갈레트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후원가 카유보트가 작품을 구매하여서 이 그림은 1879년부터 1894년까지는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가 소장하고 있었으며 1896년부터 1929년까지 파리의 뤽상부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1929년부터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가 1986년에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1870년대 르누아르가 추구한 양식의 특징, 즉 부드럽고 화사한 붓 터치, 화사한 그림자, 검은색 미사용, 질감의 효과, 빛의 유희 등을 현저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Auguste_Renoir_-_Dance_at_Le_Moulin_de_la_Galette_(ex_Whitney_collection).jpg?type=w773

후원자였던 카유보트가 누구냐면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부잣집 도련님이 화가가 되려고 화가들과 친하게 지냈고

그들의 그림을 사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왔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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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회하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 - 1899) 가 빠질 수가 없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 - 1899)


오스트리아 작곡가,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왈츠의 왕으로 불리며 왈츠, 폴카, 갤럽 등 즐거운 빈의 파티 음악을 작곡했다.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며 당시 빈 음악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다.

빈 신년음악회의 주요 작곡가이며,

슈트라우스 일가의 곡들로 이루어진다.

Johann_Strauss_II.jpg?type=w773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슈트라우스 일가라고 하면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 (Vater)

첫째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Sohn)

둘째 아들 요제프 슈트라우스

셋째 아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이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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