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드레스덴을 떠나 1시간 10분쯤 기차로 달리면 라이프치히라는 도시에 도착해. Leipzig, 라이프치히 짧게 발음하면 랖찍 이라고 소리 나는 도시야.
나는 왜 이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를 독일 음악 도시, 바흐 도시라고 했을까?
나는 라이프치히에서 4-5년을 살았어. 라이프치히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 박사 Konzertexamen을 하고 옆 동네 할레 안 데어 잘레 (헨델이 태어난 도시)에서 피아노 교수법을 공부하며 지냈던 도시야. 늘 그리운 도시 라이프치히, 추억이 있는 도시 라이프치히, 늘 가고 싶은 도시 라이프치히.
나는 유학 첫 도시를 쾰른으로 갔어. 부모님께서 아시는 분들의 딸인 언니가 있어서 본 적도 없지만, 그것도 연고라고 붙잡고 쾰른으로 갔지. 이런저런 생각은 나지만, 독일이라는 나라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는지, 기억이 그렇게 뚜렷하진 않아.
독일 쾰른대성당
굉장히 불안한 시간이었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지, 입학한다면 또 아무도 모르는 도시로 이사를 가야 하고, 입학 못 하면 어떡하지? 등등 살면서 가장 불안한 시기였어. 이 시기에 하나님을 붙드는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정말 힘든 시기였어.
에센폴크방국립음대에 입학을 하게 되어서 쾰른에서 뒤셀도르프라는 도시로 이사를 갔지. 뒤셀도르프에는 내가 다니던 한인 교회가 있어서 언니들도 있고, 학교도 다니고 하면서 조금 안정된 시기이면서, 또 다른 시련이 있던 시기였어.
피아노 연습을 해도 된다고 해서 들어간 집이었는데, 아래 아래 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끼 들고 찾아온다고 하고, 경찰에 신고한다고 하면서 피아노를 못 치게 했어. 매일 울면서 지내던 1년이라는 시간. 그래서인지 그립지는 않아.
그러다가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안정을 찾게 되고, 그 에센 집은 정말로 그리워.
독일 에센 우리 집
박사과정을 하기 위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라이프치히로 이사를 했어. 아는 사람은 우리 교수님 뿐인 도시. 그래서 혼자 음악회며, 라이프치히 관광을 열심히 다녔던 시기이기도 하지. 그래서인지 라이프치히는 참 좋고, 그립고, 나를 성숙시켜 준 도시야.
아픈 기억은 늘 어디든 있는 것이고, 그래도 라이프치히는 늘 가고 싶고, 그립고, 시내 거리가 늘 눈에 그려지는 도시야. 라이프치히는 어떤 도시일까?
독일 작센 주의 가장 큰 도시이고 통일 이후 BMW와 포르셰 공장이 있는 도시이고 라이프치히는 음악의 도시야.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마지막 27년을 일하며 살았던 도시, 바그너가 태어난 도시, 슈만이 살았던 도시, 멘델스존이 살았던 도시......
이렇게만 나열해도 대단한 도시라는 생각이 드는데, 라이프치히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가 독일 통일의 도화선이 되었던 곳이라는 사실까지 더하면 역사와 전통과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멋진 도시임에는 틀림없지.
1980년부터 시작된 이 니콜라이교회의 월요기도회가 독일 통일의 도화선이 되어 쭉쭉 이어져서 독일 통일까지 이루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