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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쓰기, 고독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by 해나책장


'당신의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 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_멀고도 가까운 | 리베카 솔닛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라는 리베카 솔닛.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에 마음이 떨리나요?

저는 언제나 [사랑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역경을 지켜가기 위해

내면의 힘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굳건한 마음에 용기를 얻습니다.

오늘 소개 할 책은 사랑과 연대, 고독과 뚝심이 짙게 배어있는

성숙한 에세이집입니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나는 늘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다음 위기를 기다렸다." p.18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녀 앞에 45킬로그램의 살구더미가 도착하고

그것은 그녀에게 이야기더미처럼 보인다.

말해야 할 이야기, 풀어야 할 수수께끼,

그리고 계속되어야 할 추수처럼.



"불안한 상태의 그 살구 더미는 내게 떨어진 임무인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내게는 거의 아무것도 주지 않았던

어머니가 남긴 나의 상속권, 동화 속의 유산처럼 보였다.

살구는 내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

거의 모든 일이 잘못 풀려나가던 이후의 열두 달 동안

내가 그 의미를 찾아야 할 이야기였다." p.27



그리고 그 살구더미에 대한 사색으로 글을 풀어내며

그녀의 이야기는 시작 된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돌보게 되며 돌아보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

딸을 오랫동안 질투하고 배제했던 어머니의 이야기,

그런 어머니의 어릴 적 이야기,

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리베카 솔닛의 의식의 흐름을 타고

그녀의 이야기로 길을 찾고 그녀의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그리고 공감과 이해, 용서가 그녀의 마음을 덮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이유는,

내가 한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건 나의 어떤 행동이 아니라,

그냥 나라는 존재, 나의 성별과 외모,

그리고 내가 어머니를 완성시켜 줄 기적이 되지 못하고,

그녀를 분열시키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p.39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외모와 존재에 질투를 느꼈고

모든 사람에겐 친절하지만 그 친절에서 딸은 배제시킨다.

그녀는 어머니가 고통스럽게 자신을 대하는 내내

부모의 인정과 사랑이 아니라

그저 전쟁이 끝나길 기다리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나는 이 고통을 나누려는 자질이

사람됨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믿는다." p.160



살구더미를 풀어내듯 그녀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메리 셀리가

자녀를 잃는 과정에서 겪은다양한 상실들을 서술하며

그녀의 고독과 슬픔을 동일시한다.

의사로서 유복하게 살았던 체게바라가

나병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만나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던 이야기를 하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만큼 경계는 없어지며

그들은 홀로 있지 않고 외롭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나침반과 건축이 되어

또 다른 이야기로 확장되고

그녀가 고통스럽게 쓴 책을 발견한 누군가로 인해

그 책이 징검다리가 되어 아이슬란드로 날아간다.

책과 우연, 선택과 인연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히고

나의 모험과 용기는 세상 저쪽 누군가의 현실이 되고

그들은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리베카 솔닛은 이 책에서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목적과 의미,

반드시 나아가야 하는 길로 이어준다'고 말한다.

고통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리베카 솔닛은 질병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이야기처럼 서술한다.

그녀의 성숙한 사고와 아름다운 문장은

내내 내 마음을 울렸다.

삶의 여정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서술한 그녀의 아름다운 통찰은

질병과 고통,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고통을 공감하는 연대로 마주하게 한다.



살구더미로 시작 된 그녀의 이야기는

다시 살구 더미에서 매듭을 짓는다.

나비의 몸통과 날개를 따르는 대칭점처럼

이 책의 목차는 같은 제목들이 겹쳐진다.

몸통을 이루는 가운데 부분에 매듭을 기준으로

감다와 풀다라는 챕터가 이어진다.

펼쳐보면 대칭을 이루는 제목 속에

그녀의 이야기가 풍부하게 펼쳐진다.

책은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계속해서 집중하여 따라가지 않는다면

이내 길을 잃고 돌아가 다시 읽어야 하지만

그녀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이며 따라간다면

그녀의 폭넓은 세계관과 마주하게 된다.



가족의 치매를 겪고 있는 사람,

부모와의 관계 속에 봉합되지 않은 상처가 많아 깊은 우물을 가진 사람,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단단한 자아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걸어가고 싶은 사람들과 이 글을 읽고 싶다.

읽는 내내 경이로운 감동으로 저를 붙잡고 왔던 책.

제가 가장 닮고 싶은 글을 쓰는 분이

정갈한 문체로 번역하고 길을 잡아준 책.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한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203x_7mO6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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