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과 결혼을 생각할 만큼 내 삶이 싫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때, 초라함의 끝에서 그녀의 글은 시작되었다
"이 사람 따라서 독일 가서 살 수 있겠어?"
29, 지독한 아홉수를 겪고 있었다. 일도, 사람도, 사랑도 모든 것이 나를 힘들게만 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제안한 선자리는 그때의 나에겐 하늘이 내려준 기회 같았다.
그 남자는 UN에 근무한다고 했다. 하버드 대학원을 나왔고 현재 근무지는 독일이라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너 독일로 유학 가고 싶어 했잖아. 결혼하면 동반휴직 내고 가서 공부하고, 그러다가 한국 들어오게 되면 다시 복직을 하든 아님 받은 학위 가지고 다른 일을 찾든 그러면 되지 않겠어? 그쪽 부모는 찬성이라니까 너만 결정하면 되는 상황인 것 같아." 라며 그 남자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고 대화도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남자를 따라 내가 이제까지 쌓아 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조건 그 사람이 다니는 지역으로 가서 사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 나는 고민할 게 아닌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이 이야기를 하자 친한 동생은 대뜸 화를 냈다.
"그 남자 쪽 집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아니 지들 아들이 UN을 다니든, 하버드를 나왔든, 그게 뭐 대수라고 언니한테 다 포기하고 따라오라는 조건을 걸어? 그건 너무 일방적인 거잖아."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동생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당연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하면 더 그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싫었다. 성희롱이 일상인 회사 분위기가 싫었고, 욕설을 내뱉는 상사가 싫었다. 3년 내내 잡일은 줄어들지 않고 큰 일은 큰 일대로 많아지는 업무분장에 지쳤고 입사동기들끼리 짜고 치는 판에 동기 없이 들어온 내가 늘 약자인 구도에 지쳤다. 스킨십만을 목적으로 연락해오는 전 남자 친구, 자기들 힘들 때는 활발하다가 정작 내 힘든 얘기엔 반응하지 않는 친구들끼리의 단톡방, 의사인 언니에게만 집중되던 집안 분위기까지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그 어떤 것에서도 우선이 아니었던 생활에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스스로 떠날 길을 찾을 용기는 없었다.
'일단 결혼만 하면, 나는 책임져주는 사람이 생기는 거고 그럼 나는 마음 편히 어학 공부하고 예술학이랑 도시계획 등 공부하고 싶던 분야 대학원 가서 학위도 따고... 내가 꿈꿨던, 언니 뒷바라지만으로 벅찼던 집안 상황 때문에 포기했던 그 미래를 이 결혼으로 이룰 수 있는 거 아닌가.'
그의 부모는 전화로 본인들은 우리 부모님을 오래 봐 왔고, 그런 부모의 교육 아래서 자란 딸이라면 자기 아들을 꼭 만나게 하고 싶으며 아들 역시 부모님이 좋다면 본인도 좋다고 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내 기대는 갈수록 커졌고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저녁 7시에 카페에서 보자고 했고 대화가 어느 정도 흘러가자 이런 말을 꺼냈다.
"제가 아직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못해서요. 제 생각과 부모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말하기가 아직도 힘드네요."
마음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만나자마자 "그냥 무슨 얘기라도 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왔어요."라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애써 외면하려 했던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부모는 나에게 지금의 삶을 포기하고 자신의 아들을 따라갈 각오가 되어 있는지까지 확인하고서 이 자리를 만들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대충 한번 만나고 말 생각으로 나온 것이었다.
"배고프시죠. 저는 집에 가는 길에 만두 사 먹으려고요."라며 돌아서는 그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어야 했다는 후회를 안고 밤 10시에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허탈감에 멍하니 식탁에 앉아있는 딸에게 한숨 섞인 저녁밥을 차려주었고 나는 그제야 이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를 깨달았다.
'34살이 되도록 본인 의견 하나 제대로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는 남자를 따라 어딜 간다고? 아니 그전에 사람도 안 만나보고 그 사람의 배경과 조건과 그 결혼생활에서 내가 누릴 것들만 생각하고 결혼을 하려고 했다고?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었던 거야 그게?'
자존감 문제였다. 나 자신에 대한 애착 문제였다. 일에 지치고 사람에 실망하고, 관계 속에서 상처 받고 그래서 삶이 싫어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찌질한 판단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생각 없는 한 남자로 인해 나와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까지 초라해지게 둬서는 안 되는 거였다.
다음날, 그 남자의 부모는 우리 부모님에게 전화해 사과를 했다. 본인들이 아들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그렇게 우스워지고 나니, 다시 현실이었다.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일상은 밀려들었다. 어떻게 하면, 무엇을 하면 나는 지금의 내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미친 듯이 사랑하진 못해도 그렇게 비참해지지는 않을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그 생각 없는 남자가 내뱉었던 말이 생각났다.
"글 쓰는 거 좋아하시면 요새 브런치? 그런 거 있다던데요. 글 쓰는 플랫폼 같은 건데 거기에 글 쓰려면 먼저 심사를 받아야 한대요. 저도 몇 편 써서 심사받을까 하고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던 나는 그토록 싫어했던 내 삶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힘들었던 사건들과 내 삶에 대한 고민들을 글에 담아 브런치 작가 신청을 눌렀다. 며칠 뒤 작가로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고 그 뒤로 내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졌다. 좋아하는 글쓰기로 싫어하는 삶을 기록하니 미치도록 싫던 내 상황들이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 직장 상사의 조롱과 폭언, '너랑 자고 싶어.'를 주기적으로 보내 속을 뒤집어놓던 전 남자 친구, 모든 것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쓸만한 글감이었다.
내 삶은 지금도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다. 내가 처한 환경은 여전하고 주변 사람들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주변이 나를 흔들 때 그 흔들림을 한 편의 글에 담아 바람처럼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뒤통수를 한대 치고 싶었던 그 남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