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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Jul 19. 2019

양 날의 검

발을 빼려고 하는 순간 이미 늦었다

 나는 공무원이다. 행정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기술직이다. 그게 아쉬운 이유는 기술직이 갈 수 있는 과는 한정되어 있어서 퇴직할 때까지 같은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다시 그게 아쉽다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결코 긴 시간을 함께할 만큼 좋은 사람들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 하는 일은 건물 유지보수, 관리 업무이다. 시험 봐서 들어간 공무원이 진짜 그런 일을 한다고? 용역업체인데 공무원 신분인 거 아니고?라는 이야기를 할 법도 한 업무명. 실제로 몇몇 행정직들은 그렇게 생각하는지 우리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사다리, 망치, 드라이버 같은 것들이 있냐고 묻기도 한다.

 기술직 공무원들이 여기서 하는 일은 작게는 보수가 필요한 부분들부터 크게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들에 대한 계획, 발주, 감독, 검사, 각 건물에 대한 진단, 그리고 실제로 따로 존재하는 용역업체 관리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굳이 할 필요는 없음에도 윗분들이 원하는 공사들이다.

 내가 공무원이 된 이유는, 내가 하는 업무가 대한민국의 도시들이 발전하는 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곳의 공무원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 보다 그 부수적인 것들(진급, 위치, 복지 같은)을 더 우선순위로 두고 사람들만 좋다면 무슨 일이든 비슷하겠지 라고 생각했던 내 탓이 크긴 하지만 이 정도로 아무 보람도 없을 줄은 몰랐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내가 1급 공무원 집무실의 환경을 개선한들(도배를 하거나 등을 바꾸거나 에어컨을 교체하는 등) 그게 국민과 무슨 상관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과는 과장-계장-주무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나는 수년째 막내로 지내고 있다.

 내 바로 위에는 양한 선배들이 있는데 이들은 각 기수마다 과 내에 입사동기가 있어 서로 상당히 돈독하게 지내고 있는 듯하다. 나는 내가 이들과 가까운 사이인지 먼 사이인지 판단하는 것을 포기했다.

 과장은 여자를 좋아한다. 술자리에 어린 여직원을 꼭 데려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금은 나를 포기했지만 초반 몇 달간은 퇴근을 하기 위해 몇 분간의 실랑이가 필요했었다. 그리고 과장은 여직원을 대상으로 한 농담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에 대해 싫은 티를 내면 오히려 더 언짢아한다. 다른 계장들에게 본인의 행동은 빼놓고 과장하여 험담을 해서 역으로 한 소리를 듣게 만들기도 한다. 나 역시 그 과정 속에 있었다. 지금도 가끔은..


 처음엔 이 조직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회경험이 없어서, 내가 적응을 못해서, 내가 예민해서, 내가 잘못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기들과 이야기하면서 우리 과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고, 1년, 2년이 지나고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내 뒤에 들어온 후배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여러 가지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 결론은 '공무원이라서 웬만해서는 잘리지 않고, 게다가 높은 직급일수록 인맥이 많아 안전하고, 그래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터졌을 때 피해를 보는 것은 잘못한 직급이 아닌 낮은 직급인 것을 경험해 온 사람들이니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였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사람들이 좋거나, 사람들이 이상하면 일이 적성에 맞거나 해야 하는데 이곳은 둘 다 아니다. 일보단 사람이라 생각했고 입사 전 만난 선배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해 들어왔으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으로 지내다가도 정년보장과, 진급과 사기업에선 누리기 힘들다는 부수적인 복지들을 생각하면 내가 너무 나약한 소리를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부모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하고. 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항상 고민한다. 나의 정신건강과 바꿀 만큼 정년이 그렇게 좋은 것인지. 정말 버티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그만둬야 할 때 나이가 들고 경력이 없어(공무원의 단점은 이 경력을 다른 곳에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발목이 묶이는 것이, 그 뒤로 복지만을 보고 근무시간을 어영부영 때우다가 퇴근하는 삶이(실제로 그런 직원들이 꽤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인지.


 그리고 두렵다.

 시간이 흘러 결국 나도 잘리지 않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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