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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Nov 24. 2019

적응한다는 것의 무게

강약약강의 세계에서 스스로 택한 적응의 무게가 아직은 버겁다

 "00아, 울어도 돼. 울고 싶으면 울어. 엄마 앞에서는 괜찮아."
 "엄마. 으어어엉.. 허어엉.. 마음이.. 마음이 너무 안 좋아.. 너무.. 하.. 흐어어엉.."

  나는 아직도, 그날 밤의 엄마와의 통화가, 그 당시의 마음이 떠오를 때면 눈물이 맺힌다.


 입사 6개월 차, 고참들도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입찰공사를 입사 6개월 만에 맡았었다. 수의계약 서류도 꾸려본 적 없는 내게 계장은 "이거 00 씨 담당이지? 이제 시보도 끝났으니까 해 봐."라는 말 한마디만 던질 뿐이었다. 선배라고 하는 다른 주무관들은 '나도 해본 적 없어서. 자료 찾아봐.'로 일관했다.

 예전 자료를 찾아 내역을 만들고 도면을 그렸다. 예전 자료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그 자료를 만든 주무관에게 물어보면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네. 내가 왜 이렇게 했지? 뭐 기준이 있었을 거야."라고 말할 뿐이었다.


 겨우 발주서류를 만들어 입찰을 내보내고 업체가 선정되었고 나는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시작이었다. 도면의 치수가 실제보다 더 크게 책정되었고 계장은 경기장 규격을 줄여서 공사를 진행하라고 했다. 이때를 회상하며 아빠는 "00가 어릴 때 아빠가 이런저런 경기들을 좀 다양하게 알려줄 걸 그랬어. 그랬다면 00가 그 명령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을 텐데..."라며 본인을 자책했었다.

 결국 일은 터졌다. 민원을 받은 과장은 계장과 나를 불러 설명을 하라고 했다. 계장은 "아니 그 뭐 경기장 사이 간격 줄이는 거로 그러는지 참, 다른 데 가면 더 좁은 데도 있어요." 하며 사실을 왜곡해서 전달했다." 과장은 "그건 문제없는 거잖아. 그대로 진행 해."라고 했다. 다음날 더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된 과장은 다시 계장과 나를 불렀다. 과장이 나에게 "왜 보고도 안 하고 멋대로 경기장 규격을 줄여! 그런 건 계장이랑 상의를 했어야지!"라고 소리를 지를 때 계장은 옆에서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화장실로 달려가 흐르는 눈물을 겨우 닦았다. 공사 일정이 급해 더 이상 분노할 시간도, 서운해할 시간도 없었다. 계장의 명대로 자재를 준비해 둔 터라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업체는 물량을 변경해야 한다며 일정을 계속 펑크 냈고,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과장에게는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멋대로 일을 진행한 주무관이었고, 업체에게는 발주를 잘못 내놓고 억지를 부리는 주무관이었다. 어떻게든 책임을 지겠다고 폭염 속에서 종일 서있던 날에는 퇴근을 하고 싶어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1시간 이상을 앉아있다 겨우 기어가듯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입사 1년 차, 남들에겐 좀처럼 생기지 않는 입찰공사가 왜 나에겐 분기별로 찾아오는지 의아해하며 나는 대규모 도배공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낙찰업체는 1인 기업이었다. 주소지는 사장의 집이었고, 직원은 다른 직업이 있는 본인의 아들이었다. 착공서류도, 준공서류도 할 줄 모른다며 '주무관님이 좀 만들어주세요.'라며 나에게 떠넘겨도 그 정도는 내가 서류 양식을 하나씩 가르쳐주며 진행하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고 공사 진행력과는 별개의 일이라 믿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이 간 바가지에 풀칠을 한들 물은 결국 샐 수밖에 없음을 몰랐었다.


 공사가 4분의 3 이상 진행되었을 때였다. 동시에 "사장님, 방염필증 다 제출해주셔야 준공처리 해드릴 거예요."라고 말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사장은 "주무관님 어떡하죠. 일이 좀 생겼는데, 이게 벽지가 방염이 아니네요."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발주서류도, 샘플 선택도, 방염으로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자 도배 사장이 잘못 주문한 것 같다고 했다.


 사장은 계속 도배 사장 탓을 하며 불평을 쏟아냈다. 그런 사장에게 "지금 누구 탓이냐를 가리는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사장님만 믿고 자재검수 따로 안 한 제 탓도 있고, 스스로 확인 안 하신 사장님 탓도 있고, 잘못 주문한 도배 사장님 탓도 있는 거죠.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어쨌든 공기 안에 해결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일단 잘못된 벽지 다시 뜯고 제대로 된 방염 벽지 구해서 진행하세요."라 지시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사장의 대답은 '이제 와서 다시 주문한다 한들 공기 안에 그 만한 물량을 구할 수 없고 구한다고 해도 인원이 부족해서 못한다.'였다. 설상가상으로 도배 사장은 공사가 끝날 것으로 생각하고 해외여행을 잡아놨고 취소할 수 없다며 이 사태에 대한 수습은 뒤로한 채 정말 비행기를 타버렸다.


 도배지를 가까스로 구하고, 못 구하는 것은 가장 비슷한 것으로 대체했다. 인원은 도저히 구하지 못하겠다길래 인력 수급이 가능한 업체를 직접 찾아주기까지 했다. 화내고, 싸우고, 윽박지르고, 겁박하며 겨우 공사를 끝냈다. 그날 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저렇게 공사를 마쳤다고 이야기하면서 목이 메어왔다. 엄마의 '울어도 돼.' 한 마디에 나는 정말 서럽게 펑펑 울었다.


 일이 힘들었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쁜 말들을 쏟아냈다는 것이, 그 나쁜 말들이 다시 내 가슴에 와서 박혀서 빠져나가지 않는 느낌이 너무 괴로웠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전화기를 붙들고 나는 한참을 울었고 엄마는 내 울음을 가만히 듣고 계셨다.


 그래, 괜찮아. 잘했어. 이제 다 끝났어. 괜찮아. 장하다, 우리 딸.



 이제 겨우 3년 차, 과에서 자타공인 일복러로 통할 정도로 내 찰은 정말 분기별로 있었고, 낙찰업체는 늘 이런 식이었다. 발주 서류를 무시하고, 돈을 더 요구하고, 일정을 펑크 내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지시를 할 때 계장이나 남자 주무관이 같이 있으면 고분고분하다가 다시 나와 둘이 남게 되면 돌변했다. 그 안에서 나는 더 독해지고 더 대담해져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공사현장은 철저히 강약약강의 세계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은 남자 주무관의 윽박지름에는 수그리고 따랐지만 여자 주무관의 윽박지름에는 조롱으로 답했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강하게 말을 한들 경력으로도 무력으로도 '약'에 속하는 '어린 여자 주무관'은 그들을 움직일 수 없었고 어울리지 않게 내뱉은 나쁜 말들에 내 마음만 더 상할 뿐이었다. 나만의 방법, 나만의 화법을 배워야 했다.


 가장 최근에 끝낸 입찰 공사는 짧은 3년 직장 인생 중 최악이었다. 우리 기관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 진행한 설계를 받아 발주를 냈는데 공사를 진행하면서 보니 설계가 정말 엉터리였다. 인테리어 마감에 필요한 모든 하부 자재들이 다 빠져 있었고 도면은 현장 치수와 맞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는 데다가 디테일도 다 빠져 있었다. 대학생들 설계수업 결과물도 그보다는 더 현실적일 것 같았다. 다른 주무관들이 내게 도대체 어떻게 그 공사를 끝냈냐고 물을 때 나는 늘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사장님한테 무릎 빼고 다 꿇었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한 동시에 씁쓸했다. 나는 어느 순간 상대방을 그저 이익을 취하려고 온 사람들이기에 이 안에 인간성이라는 것은 없다는 전제로 상대하고 있었다. 공사기간 내내 '감사하다.', '죄송하다.'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저 해야 할 말을 하고, 해야 할 감사와 해야 할 위로를 건넬 뿐이었다. 그렇다고 부딪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똑같이 싸웠고, 똑같이 화를 냈고 똑같이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그 순간을 받아내는 것은 내 겉모습일 뿐이었다. 함께 웃을 때도 있었지만 그저 웃을 뿐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한 진지함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공사는 끝이 났다. 아무렇지 않았다. 아프지도,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순간, 업무 속에서 더 이상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무섭다는 나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만큼 네가 단단해졌다는 거야. 다 그렇게 무뎌지면서 어른이 되는 거야.


 아마도 이건 내 무의식이 터득한 적응의 길이었을 것이다. 업체들은 이전의 내가 속까지 투명하게 뱉어내던 말들보다 지금의 내가 겉으로만 뱉어내는 말들에 더 잘 움직인다. 예전에는 나쁜 말을 쏟아냈던 내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면 이제는 이런 감정 없는 내 모습에 심장이 아리다. 내가 택한 적응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워서 가끔은 그 무게에 짓눌려 숨쉬기조차 힘이 들 때도 있지만, 결국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정도 무게는 넉넉히 견딜 정도로 더 무뎌져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겉과 속을 분리한 채로 살아낸다는 것, 그렇게 이 안의 관계들을 견뎌낸다는 것은 고작 3년차에게는 사실 좀 버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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