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산책을 했다. 길거리에서 곤충을 팔고 있었다. 과장은 갑자기 사슴벌레를 사서 사무실에서 키우자고 했다. 나와 함께 있던 여자 직원은 싫다고 대답했지만 과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래도 장난이겠거니 했는데 정말 그 가게에 가서 넓적사슴벌레 암, 수 한쌍과 함께 그것들을 키울 수 있는 기반시설들(집, 톱밥, 나무토막, 먹이)을 샀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잘 키워봐" 라며 나에게 들려주었다.
암넓적이와 수넓적이는 그렇게 우리 사무실 식구가 되었다. 나는 벌레를 정말 싫어한다. 여름만 되면 나보단 벌레가 빨리 죽으니 괜찮다는 신념으로 방 안에 각종 살충제를 뿌려놓는다. 그런 나에게 매주 먹이를 갈아주고 알을 낳으면 부화시켜서 성충으로 만들라고 하다니. 다른 직원들은 당연히 모른 척, 아 나도 모른척하고 싶다..
싫다 싫다 하면서도 어쩔 수 없으니 인터넷으로 넓적사슴벌레 키우는 방법을 공부했다. 알을 낳으면 각각의 독립된 통에 톱밥을 넣고 부화시키고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면 다시 집으로 옮기면 된다고. 흠 생각보다 간단하네! 그래 키워보지 뭐..
일주일에 한 번씩 먹이통에 젤리를 넣어주고, 톱밥이 말랐다 싶으면 물을 뿌려주었다. 문제는 이들이 야행성이라는 것. 그래서 사람이 없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거나 어두울 때나 밖에 나오는데 과장은 여기서 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니, 보려고 산 건데, 야행성이면, 못 봐? 이거 사기당한 거 아니야?!"
넓적사슴벌레들은 이런 과장의 성격을 눈치챘는지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과장은 즐거워했다. 넓적사슴벌레를 키워본 적이 있다는 다른 사무실 계장이 와서 넓적사슴벌레 키우기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벌레 앞에서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하지만 신기한 건 잠깐이고, 과장은 이제 넓적이들의 2세를 보고 싶어했고, 나는 알을 찾아야 했다.
넓적사슴벌레의 알은 흰 쌀 같다. 사슴벌레 집을 돌려보면 톱밥 사이에 좁쌀 같은 것이 박혀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게 부화해서 애벌레가 된다. 알 상태로 분리하여 개별적인 통들에 넣어도 되고, 작은 애벌레일 때 넣어도 된다. 애벌레를 집는 것보다 알을 집는 것이 나으니 알이 2개 정도 보이기 시작할 때쯤 신문지를 깔고 집 안에 있는 톱밥들을 쏟았다.
하아..
이미 부화한 애벌레가 있었고, 꽤 컸다. 등장하는 순간 비명을 질렀으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알로 추정되는 것들과 이미 부화한 애벌레 1마리를 각각의 통에 넣어주었다.
그 후 갑자기 양 팔이 가려웠고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조퇴를 하여 병원에 갔다. 약을 먹으니 두드러기는 가라앉았다. 과장에게 그 이야기를 하며 톱밥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하자 과장은 나에게 앞으로 톱밥이 있는 집과 통에 손을 대지 말라고 했다. 그 뒤로 아무도 넓적이들을 돌봐주지 않았다. 다행히 먹이는 과장이 담당했다. 집 안에서 알이 생기고 그대로 애벌레가 되어 커갔지만, 다들 지켜만 볼 뿐 아무도 다른 통에 옮겨 담아주지 않았다. 나도 또 두드러기가 날까 무서워 나서지 않았다. 결국 2~3마리 정도의 애벌레가 한 집 안에서 꿈틀대게 되었고 그중 한 마리만이 끝까지 살아남아 암넓적이가 되었다.
분리된 통들 안에서도 2마리의 애벌레가 각각 크고 있었다.(나머지는 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통을 봤는데 갑자기 하나의 통에 암넓적이가 있었다. 나는 과장을 불렀고 과장은 신이 나서 이 암넓적이를 집으로 옮겨주었다. 그리고 이후 다른 한 마리의 애벌레도 암넓적이가 되어 집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과장과 나는 총 3마리의 넓적사슴벌레 암컷을 키워냈다.
넓적사슴벌레의 2세들이 크는 동안 넓적사슴벌레 1세들은 조금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암넓적이 1세는 어느 순간 죽었다. 수넓적이 1세는 집에 새로 들어온 3마리의 암넓적이 2세들과 살면서 탈출을 2번 시도했으나 2번째 탈출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뒤로 사슴벌레 집에는 암넓적이 2세들만 살게 되었다. 그러나 과장의 관심은 줄어들었고 새로 들어온 기간제 직원의 자리를 마련해주느라 이들의 집은 회의실 구석으로 밀려났다.
언젠가부터 암넓적이가 2마리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한 마리는 먼 길을 떠난 것 같다.
과장은 종종 나에게 넓적사슴벌레 먹이주기, 집 청소, 톱밥 갈기 등을 시키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두드러기를 상기시켜주고 있다. 나 외엔 부탁할 사람이 없는지 과장님은 바싹 마른 톱밥 위에 새 톱밥을 부어주고(기존의 톱밥을 버리고 새 톱밥으로 완전히 갈아야 하는데 과장은 거기까지는 내키지 않았던 듯하다.) , 가끔 물도 뿌려주고, 먹이도 갈아준다. 암컷만 남아있기에 이들의 멸종은 얼마 남지 않았다.
너무나 미안하지만 나는 넓적이들의 죽음이 기다려진다. 그래도 남은 기간 과장의 보살핌 아래 배고프진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