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womanB Jul 19. 2019

그저 웃자고 하는 농담

농담의 내용과 대상은 왜 늘 여직원일까

 과장은 파티션 너머의 직원들 자리를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자리로 들어와 모니터를 보려고 한다. 그런 과장을 쳐다보면서 ‘왜요?’ 하고 물으면 ‘뭐해?, '이건 누가 준 거야?' 등의 질문을 쏟아낸다. 


 장에겐 자신이 추구하는 여직원상이 있다. 예쁘고 목소리도 높고 가늘고 나긋나긋하고 본인이 하는 농담에 무조건 좋아하고 웃어주는, 그리고 본인이 저녁을 먹자고 하거나 술을 마시자고 할 때 너무나 즐거운 표정으로 '그럼요 좋죠.'라고 대답하고 따라가 주는.

 하지만 나는 그런 여직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외형적인 것도 그렇지만 과장이 하는 농담의 대상으로 나를 두고 싶지 않아 싫은 티를 냈다. 또한 나는 과장이 저녁에 나를 붙잡고 저녁을 먹자 술을 마시자 할 때마다 거절했다.

 과장은 이런 나를 늘 못마땅해한다. 어리고 직급도 낮은 여직원이 감히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공무원의 과장은 사기업과 달라서 꽤 높은 직급이다.) 자신의 말에 싫은 티를 내고 웃어주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 같다.


 한 번은 과장의 부름에 낮은 목소리 톤으로 '네'라고 대답했더니, 여성스럽게 높은 톤으로 대답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고선 손님이 올 때마다 내 목소리톤을 따라 하면서 놀려댔다. 내가 저 사람 때문에 타고난 목소리도 바꿔야 하나 싶었다.


 과장은 끊임없이 나를 자신이 원하는 여직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까지 누구도 과장이 하는 행동과 농담이 얼미나 기분 나쁜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남직원들이야 뭐 함께 즐거워했고 여직원들은 그러려니 해 왔다.



 입사 초, 과장의 언행에 대해 기분 나쁜 티를 냈다가 다른 직원들로부터 질타를 들었다. 왜 그걸 좋게 넘기지 못하느냐고.

 그 사건은 이랬다.

 나는 입사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는 신입이었다.

 여름에 부산으로 연찬회를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평소에 본인이 분위기 메이커라고 믿는 과장이 ‘웃자고’ 농담을 던지더라.


"00 씨, 비키니 준비해, 몸 만들어서 해변에서 비키니 입고 뽐내야지."


 그 말에 웃으며 부추기는 직원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어린 여직원의 몸매를 상상하며 농담거리로 만드는 분위기. 


 대꾸하지 않았다. 표정으로 말했다.

 왜 그러냐고 묻는 직원들도 싫었고, 다음날 왜 그랬냐고 묻는 직원들도 싫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하는 남직원도 황당했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하는 여직원도 어이가 없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적응할 줄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몰아가는 직원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웃자고' 던진 농담에 '죽자고' 덤비는 나의 부족한 사회성은 또 다른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 후 3년이 지났다. 과장과 남직원들은 아직도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우리는 매년 직원들 중 몇몇을 뽑아서 해외출장을 보낸다. 올해 가게 된 여직원이 자신 혼자 여자인 것이 불편하다고 가지 않겠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다른 여직원을 한 명 더 붙여주었다. 과장은 또 이때다 싶었는지 나에게 물었다.

“00 씨는 혼자여도 다녀올 수 있지?”

“아뇨 저도 혼자면 불편하죠.”

그다음 나오는 과장과 옆자리 남직원의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왜? 남자랑 같은 방 쓸 거도 아닌데 왜?”라고 과장이 말하자 “같이 잘 수도 있죠.”라고 받아치며 낄낄대는 저 둘을 보며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저런 말들을 들어야 하나 싶었다. 


 과장의 농담을 재치 있게 받아친다는 자부심을 가진 이 남직원은 과장의 농담에 대해 내가 부정적으로 반응할 때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하여간 여자들은 감정적인 게 문제야.



  과장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방에서 나와 사무실을 둘러본다. 이때 눈이 마주치면 또 농담이 시작되고 마무리는 나의 불쾌함이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나는 과장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할 때까지 일부러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세상에서 자신의 딸이 가장 에쁘다는 50대 후반의 과장은 내가 딸 같아서 그러는 걸까. 딸 같은 나에게 올바른 사회생활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


 나에게 그냥 좋게 넘기면 되지 뭘 그러냐고 하는 직원들은 만약 자신의 부인이, 여자친구가, 딸이 이런 일을 겪는다고 해도 잘 참고 웃으며 맞춰드리라고 할까?


 과장과 함께 농담을 하는 그 남직원은 항상 딸을 낳고 싶다고 하는데 만약 자신의 딸을 대상으로 누군가 "호텔에서 같이 잘 수도 있죠." 등의 농담을 한다면 그때도 "그 사람 재치 있네."라고 하려나.

이전 02화 적응한다는 것의 무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