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정 Jan 04. 2024

물고기삼촌 없어서 속상해

27개월 아이 이야기

오늘도 하은이와 집 근처 대형마트에 갔다. 카트에 아이를 태운 후 지하 1층으로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카트를 실었다.

"물고기 보러 가고 싶어"

"물고기 보러 갈까? 그러자."

에스컬레이터가 끝난 지점에서 방향을 틀어 물고기들이 진열돼 있는 쪽으로 향했다.

"물고기삼촌 @@@@@@@"

하은이가 뭐라고 했지만 여러 잡음이 섞인 소리에 묻혀버렸다.

"물고기삼촌 뭐라고?"

나는 얼굴을 아이 쪽으로 쑥 내밀었다. 아이는 나를 손으로 밀치며

"엄마, 물어보지 마" 그런다.

"알았어."

머쓱하게 다시 허리를 세웠다.


물고기들이 있는 곳은 마트 동물 코너에 있는 한쪽 벽면이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같은 크기 어항에 종류별로 들어 있다. 규모는 가로 50cm 세로 50cm 정도 보통 크기 어항이 한 줄 당 6개씩 3층 규모다. 가운데 아래칸엔 햄스터도 두 칸을 차지하고 있으며 2층 중간에 거북이도 한 칸을 점령했다. 오른쪽 끝 꼭대기층엔 노란 잉꼬 두 마리도 짹짹 거리며 '저 여기 있어요'라고 한다. 내가 아쿠아리움이라 부르는 곳. 점점 다가간다. 아무도 없이 휑한 이곳. 물고기 삼촌과 첫 만남이 생각난다.


그날도 하은이를 카트에 태우고 마트를 돌던 중 어린아이들과 엄마들이 붐비는 곳이 눈에 띄었다. 자연스레 그곳에 도착하니 앞치마를 입고 물고기를 관리하는 20대 후반 남자분이 서 있었다. 그는 하은이를 보며

"친구 안녕? 물고기삼촌이야. 너도 물고기 구경하러 왔어?"라고 말했다. 그는 물고기를 구경하는 여러 아이들을 보며 "어린이집 끝날 시간만 되면 여기가 이렇게 붐벼요."라고 엄마들을 보며 말했다. 이 날을 시작으로 하은이와 난 마트에 가면 매일 물고기를 만나러 갔다.


구피, 금붕어, 엔젤 피쉬 등 다양한 물고기가 있지만 아이들이 유독 좋아하는 건 햄스터다. 쥐라고 하기엔 인형처럼 너무 귀엽게 생겼으며 크기 또한 주먹 만한 게 솜털뭉치 같다. 하은이 역시 투명창 너머 햄스터를 바라보며

"엄마 이거 뭐야?"

햄스터가 밥이라도 먹고 있으면

"엄마 뭐 먹는 거야?"

쳇바퀴를 돌리고 있으면

"엄마 햄스터 뭐 하는 거야?"라며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햄스터 자리가 천에 가려져 있었다. 천에는 '햄스터들이 자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글씨를 모르는 하은이는

"엄마. 햄스터 어디 있어?"

"응. 여기 안에 있어. 근데 지금 자고 있어서 볼 수 없어. 방해하면 안 돼."라고 말했다. 그때 물고기삼촌이 나타났다.

"오늘은 햄스터가 가려져 있네요."

"네. 햄스터가 새끼를 낳았어요."

"정말요?"

"네. 그래서 당분간은 가려놔야 합니다."


그로부터 한참 지난 그날도 햄스터 코너는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아이들은 햄스터를 보고 싶어 했지만 볼 수 없었다. 엄마들은

"햄스터 자서 방해하면 안 돼"라고 하며 아이들을 달랬다. 그런데 물고기삼촌이 오더니 천을 거두고 투명한 장난감 통 같은 것을 들고 아이들 앞에 두었다. 그러더니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햄스터 새끼들 6마리가 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커서 볼 수 있어요. 많이 컸죠."

그는 새끼 햄스터들에게 해바라기씨, 말린 옥수수 등이 섞인 먹이를 주었다. 햄스터들은 작은 두 손에 먹이를 잡고 열심히 먹었다. 아이들은 연신

"우와"라며 새끼 햄스터들을 쳐다봤다. 한참을 본 후 물고기삼촌은 다시 뚜껑을 닫고

"다음에 또 보여줄게"라고 했다. 그리고 어항 뚜껑을 열고 물고기, 거북이, 햄스터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다. 어떤 물고기는 조그만 호떡처럼 생긴 둥그렇고 두꺼운 밥, 어떤 물고기에겐 작고 동그란 밥, 어떤 물고기에겐 흙 알갱이처럼 작은 밥, 거북이에겐 가늘고 긴 원기둥처럼 생긴 밥, 햄스터에겐 호박씨, 말린 옥수수, 말린 바나나 등이 섞여 있는 밥을 주었다. 아이들은 동물들이 먹이 먹는 모습을 눈이 동그래져 바라봤다.


어느 날은 마트 한 면에 설치된 수돗가에서 물을 담고 있는 물고기삼촌과 마주쳤다. 그는 하은이를 보더니

"물고기삼촌 곧 갈 테니 기다려"라며 인사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말했다.

"저 이번달만 하고 그만둬요."

"정말요?"

"네."

사실 젊은 사람이라 '더 좋은 직업을 찾아가나 보다, 더 잘 됐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를 볼 수 없었다. 하은이에게 물고기삼촌 이제 여기서 일 안 한다고 말해 주었지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처음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트에 가면 그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하은이도 이젠 물고기를 보러 매일 가지 않는다. 그런 하은이가 오늘은 물고기가 보고 싶다고 한 것이다. 아무도 없는 아쿠아리움에 들어서니 카트에 앉아 있는 하은이 말이 들렸다. 아깐 시끄러워서 듣지 못했던 말.

"물고기삼촌 없어서 속상해"

"하은이 물고기삼촌 보고 싶어?"

"응"

"엄마도."

휑한 아쿠아리움이 그의 빈자리를 대변하는 듯했다.






이전 08화 산타할아버지가 준 치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