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ivhon Apr 16. 2023

항해가 바다와의 싸움이라면

 나에게 ‘세월’에 대해 쓸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동안 이 일에 대해 잊고 살았다. 4월 16일이 돌아올 때면 그들을 떠올렸지만 깊게 들여다보지는 않다. 몇몇 뉴스들에 대해 분노하거나 슬퍼하기도 했으나 정작 유가족들의 고통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아직 이 글을 쓸 자격이 나에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올해 초, 문득 세월호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유가족들의 인터뷰가 실린 책을 읽었다. 나는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그곳에서 만났다. 다음은 그  이야기들 속 몇 가지 단상들이다.     


#1. 딜레마

 대부분의 유가족들은 시신 안치소에서 자신의 자녀를 앞에 둔 채 한 가지 딜레마를 맞닥뜨렸다. 희생자의 시신 훼손 정도가 심각하여 확인하지 않기를 권장한다는 말 앞에서 그들은 고뇌했을 것이다. 볼 것인가, 보지 않을 것인가. 그 앞에서 어떤 이들은 천을 들추었고 어떤 이들은 들추지 않았지만 두 선택의 결과는 모두 후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보았다면 본 것 때문에 후회하였고 보지 않았다면 보지 않은 것 때문에 후회하였다. 그것은 내가 살면서 본 양자택일의 문제 중 가장 잔인한 것이었다.     


#2. 봄날

 유가족들은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도로를 달려 진도로 향했다. 아무 일도 없기를, 다치지 않기를, 그리고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길을 달려갔을 그들은, 그곳에서 수많은 죽음들을 겪은 뒤 5월의 푸른 춘경을 보며 안산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의 시간 동안 그들에게 돌아오는 봄들은 어떠한 모습이었을지를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하겠다.      


 세월은 흐른다. 올해로 9년이 지나갔고 지난 눈물들은 많은 이들로부터 잊혔다. 늘 그렇듯이, 변화시키려 하는 것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잠깐 눈을 돌린 사이 몰라보게 되어버린다. 내가 눈을 돌린 사이 세월호 침몰 사고는 9주기를 맞았다.

 작가 김애란은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의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 나가는 과정인지 몰랐다 “고 말했다. 이해의 첫걸음은 나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헌데 역설적으로 나의 '모름'을 깨닫기 위해서는 ‘앎’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무언가를 아는 사람은 그에 대해 더 선명하게 모를 수 있다.    

 

 내가 조막만 한 ‘앎’을 통해서 얻어낸 나의 무지를 허탈하게 바라보며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생각은, 아무래도 ‘잊지 말자’는 것이었다.

 항해(航海)는 항해(抗海)일 수도 있겠다. 항해가 거친 바다와의 싸움이라면 검게 꿈틀거리는 망각 위에서의 애도 또한 일종의 싸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으로서 이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바다와의 싸움에서 승리나 패배 따위는 존재하지 않다.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이 곧 삶을 나아가게 할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진실되고, 현실적이고, 정확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