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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민서 Jul 20. 2021

[Ep] 시한부 독립

어쩌다 나는 강남 한복판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나 독립할 거야. 혼자 살아야겠어."



 혈육들에게 내 원대한 계획을 털어놓았을 때, 그들의 반응은 예상한 그대로 미지근함 그 자체였다. 언니는 그럴 줄 알았다, 뭐 어차피 너 맘대로 할 거 아니냐며 알아서 하라고 했다. 동생은 언니 집이 그렇게 쉽게 구해지는 줄 아냐, 나가 사는 게 쉬운 줄 아냐. 찬찬히 알아보고 나가라고 하더라.

(물론 놀랍게도 집 보러 간 날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가계약까지 완료했다. 물론 집은 이렇게 구하면 99.8% 망한다.)


 혈육을 넘어 부모님에게 털어놓았을 때, 부모님의 반응 역시 미지근함 그 자체였다. 해결하기 싫은 일을 마주하면 피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거나,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속상해하셨다. 물론 (너무 성급하다며) 강경하게 반대하시길래 그냥 짐 싸들고 냅다 튀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긴 했지만. 뭐 어찌 되었든 독립은 하게 된 셈이다.







24시간 내내 불이 커져있는 건물이 존재하는 곳
배달앱에 처음 보는 음식점 이름이 수두룩한 곳
점심시간만 되면 거리로 사람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곳
빛과 어둠, 소음과 적막이 공존하는 기묘한 곳
사람으로 가득하지만 그만큼 외로움도 가득한 곳



 이렇게 나는 어떠한 연고도 없이 강남 한복판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주택가로 들어서면 한없이 어둡고 적막하다가도, 대로변으로 나서면 한없이 밝고 시끄러운. 그저 땅값만 드럽게 비싼 강남에 말이다. 남의 집에 세를 얻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혼자 떨어졌기에 겪을  있었던 여러 감정과 인사이트, 경험들로 뒤섞인 일상은 낯설면서도 친숙했다. 원래  삶이 이랬던 것처럼 익숙해져버렸다.


 시한부 3개월로 대충 합의 보고 시작한 독립이지만, 단언컨대 이 가냘픈 시간은 어떻게든 이어질 것이다. 통장은 불안해도 마음의 평온은 지켜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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