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시작하며

프롤로그

by 발전소


기분이 이상했다.


왜 엄마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코끝이 찡해졌을까.


이미 정리된 감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사가 가볍게 꺼낸 엄마 이야기에 내가 보인 반응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의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지난 4개월 동안 늘 피곤해 보이고 다소 사무적인 태도였던 터라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의 의사는 내가 잠시 울먹거린 그 짧은 1분을 중요하게 여겼다. 마치 낚시꾼이 하루 종일 지루하게 앉아만 있다가 뭔가를 발견한 듯 한 눈빛이었다.


상담을 권했다.


사실 그날은 이제 슬슬 치료를 마무리해도 될 시점이라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하고 내원한 날이었다. 4개월 간 직장 내 스트레스로 병가를 내고 쉬면서 이제는 많이 안정되었고 요즘은 책도 많이 읽고 운동도 열심히 하므로 행복하다고 까지 얘기하며 더 이상 치료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말할 참이었다.


순간 쓸데없이 기분이 좋아졌는지 요즘은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더니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왔다. 그러다 흘려 말한 엄마에 대한 감정을 의사는 낚아챈 것 같았다. 졸지에 상담 선생님을 소개받고 예약까지 하고 나니 뭔가 큰일이 일어났나 싶어 어리둥절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혼란스럽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단계판매 회사에 낚여 건강식품을 들고 들어온 사람처럼 내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맑은 호수의 바닥을 굳이 휘저어 뿌옇게 만들어버린 의사가 얄밉기도 했다.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닌데 의사는 왜 상담을 권했을까. 나의 어떤 태도가 의사로 하여금 움직이게 만들었는지 마음에 걸렸다.






인생의 바쁜 시절이 얼추 지나가고 내 아이도 거의 다 키웠다고 한숨 돌리던 그즈음 시작됐다.


엄마에 대한 나의 원망은.


아이를 키워 보면 자식에게 엄마는 절대자라는 걸 알게 된다. 어릴 때 무심결에 심어줬던 가치관이나 삶에 대한 태도가 커가는 아이한테서 문득문득 보일 때면 정신 바짝 차리고 키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편협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나라는 절대자로부터 키워진다면 나중엔 이상한(?) 어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실했다.


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그대로 보고 배우는 아이를 지켜보며 자식은 엄마가 결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어느 한 부분이 아픈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고 엄마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도 아픈 어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었다.


의심이 시작되니 증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현재 내가 처해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사실은 모두 엄마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