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갓난아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악착같은 홀어머니 밑에서 오빠와 여동생 사이의 둘째로 씩씩하고 자존심 강한 아가씨로 자랐다. 외할머니가 행상을 해서 가난한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기에 엄마 또한 어린 나이에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등 고생스럽게 살았다고 했다.
엄마는 ‘딸은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며 힘든 상황에서도 공부를 곧잘 했음에도 결국 대학 등록금을 안 해 준 외할머니를 두고두고 내 앞에서 원망했다. 매일 집에서 빈둥거리는 오빠에게는 아들이란 이유로 정성을 다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자신에겐 딸이란 이유로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않은 엄마가 너무 싫었다며...
어린 나는 설마 그렇게 인자한 외할머니가 그런 짓을 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옛날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엄마가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엄마는 늘 외할머니 원망을 끝내고 나면 나 보고는 좋겠다고 했다. 본인은 공부만 잘하면 남녀 구분 없이 얼마든지 뒷바라지를 해줄 생각이니 너는 얼마나 행복하냐고.
남동생이 둘이었던 나는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남아선호가 있었는데 남녀차별을 몸소 겪고 그것에 대해 부당함을 알고 있는 엄마의 딸인 나는 결코 차별받을 일은 없을 것 아닌가.
역시나 엄마는 맛있는 간식이 있으면 정확히 삼등분해주었고 처음으로 방이 세 개인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는 당연한 듯 나에게 독방을 선사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된 딸에게 남동생과 방을 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도 그때는 엄마가 꽤 스마트하고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인 것 같아 다시 한번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안심했다는 건 이미 그전에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하다.
나는 늘 불안했던 것 같다. 진짜 우리 엄마는 남동생과 나를 차별하지 않을까? 혹시 언젠가는 엄마도 남들처럼 남녀차별을 하진 않을까 하고 은연중에 살피고 확인한 후에 안심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역시 불안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창 수능 준비로 신경이 예민한 고3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엄마는 부지런히 저녁상을 차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제 마지막으로 밥만 푸면 되는 타이밍이었다. 엄마는 밥을 하나씩 퍼서 나에게 주며 식탁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아빠 밥을 가져다 놓고 돌아오니 엄마가 밥 한 공기를 주며 첫째 남동생 꺼 라고 했다. 나는 이거 ‘엄마 꺼 아냐?’라고 물었고 엄마는 재차 남동생 꺼 라며 갖다 놓으란다. 평소 눈치 없고 둔한 편인 나는 별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했고 그다음은 둘째 남동생 차례, 그 다음 에서야 내 밥을 푸셨다.
그 순간에는 ‘뭐지?’ 였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당한 사고랄까. 망치로 맞은 듯 멍했다.
사고가 맞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뼛속 깊이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으니까. 엄마의 차별을 목격한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짓을 해왔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남녀차별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엄마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내가 안 볼 때는 그렇게 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보는 데서는 이러면 안 되지 않나 하며 백 번 양보해도 이건 아니지 싶었다.
혼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얼마 뒤 밥 푸는 순서가 왜 그런지 물어봤다. 엄마는 원래 장남 밥을 먼저 푸는 것이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통(?) 같은 거라며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고 아들은 나중에 부모를 모셔야 하니까 지금 더 잘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댔다. 그러면서 엄마 밥 보다 네 밥을 먼저 푸니까 된 거 아니냐고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싶어 했다.
이후로 밥 푸는 순서는 따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따져봤자 바뀔 것 같지도 않고 바꿔봤자 엄마의 마음을 이미 확인해 버린 나로서는 더 이상 그런 사소하다고 치부해야 하는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고3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자연스럽게 나는 부모 봉양의 의무에서 제외되는 건가 보다 하며 마음 한구석이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자랑스러운 젊은 엄마는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