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대학에 못 간 것이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우리 삼남매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 지상과제인 사람이었다. 공부를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대학을 못 가면 사람 구실을 못하게 돼서 어떤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지 수시로 말해줬다. 그리고 문과는 가봤자 실업자만 되므로 무조건 이과를 가야 한다는 입장이라 결국 우리 셋은 모두 이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추후 막내 동생은 본인이 문과에 갔어야 한다는 사실을 늦게 깨닫고는 힘든 고비를 겪게 되었고 나 또한 왜 이과를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성적이 그런대로 괜찮고 문과생은 실업자가 된다고 하는 엄마의 정보를 근거로 이과로 진학을 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들었던 말.
네가 대학을 잘 가야 동생들도 잘 가는 거야.
그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다분히 기분 나쁜 말이다. 당연히 내가 첫째니까 대학을 잘 가는 것도 첫 번째 이련만 엄마는 나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아주 중요한 듯했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부모에겐 당연히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엄마는 말끝에 꼭 저 말을 붙였다. 그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빠서 그냥 넘겨 버렸지만 솔직히 은근히 짜증이 났다.
당장 내 코가 석자인데 동생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건가. 나를 동생들의 길잡이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
결국 서울의 나름 괜찮은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엄마는 이제 한시름 놨다며 너무 좋아했다. 신입생 등록을 하러 학교에 가는 날 굳이 이모까지 불러 함께 간 것만 봐도 엄마가 나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그렇게 나와 이모를 끌고 가서 비싼 등록금을 내고 들뜬 마음을 안고 그대로 집으로 가는 건 영 아쉬웠는지 대학교 앞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자했다. 거기서 엄마는 이모에게 자신이 얼마나 딸을 열심히 교육시켰는지, 그래도 이렇게 괜찮은 대학을 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며 한껏 공치사를 했다.
나는 내가 대학생이 됐는데 엄마가 더 좋아하니 기분이 좀 묘하기도 했지만 그게 부모 마음인가 보다 하며 역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마음은 내가 알 수 없을 만큼 깊은가 보다 하며 잠시 뭉클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커피숍에서의 엄마 얼굴은 자신감을 얻은 얼굴이었다. 자신의 임무를 너무나 완벽히 완수했고 이제 앞으로 남은 두 남동생 또한 이런 식으로 대학을 보내면 된다는 비법을 거머쥔 듯했다.
두 살 터울이던 장남이 드디어 고3이 되자 엄마는 머리가 세도록 대학 배치표와 아들의 성적표를 비교하며 어디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셋 중에 학교 성적이 젤 시원치 않았던 장남이 대학을 못 가기라도 할까 봐 밤잠을 설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재고 고심한 끝에 서울 근교의 국립대에 합격을 ‘시켜’ 놓고 엄마는 정말 큰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고등학교 때 성적을 한껏 올려 인 서울이라도 시켰어야 하는 점이 못내 아쉬웠어도 본인이 원서를 잘 써서 국립대라도 붙여 놨다며 훈장 같은 흰 앞머리를 들추며 감회에 젖었다. 아무튼 엄마 덕분에 장남은 집을 벗어나서 살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부러웠다.
엄마는 졸업할 때까지 매주 반찬을 해 나르며 혼자 사는 동생을 안쓰러워하면서도 혹여 난잡한 생활을 할까 봐 가끔은 몰래 새벽기차를 타고 가서 확인하기도 했다. 나는 혼자 사는 동생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쏙 들어갔다. 엄마의 집착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막내아들이 고3이 됐을 때는 집안에 풍파가 몰아쳤다.
역시 막내라 그런지 제 멋대로인 면이 있긴 했지만 공부를 곧잘 했음에도 갑자기 직업전문학교를 가겠다고 선언을 해버렸다. 엄마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제 막내아들만 대학에 보내면 자신의 임무가 완수되는데 결승선 앞에서 생각지도 않던 복병이 튀어나온 것이다.
평소 반골기질이 있고 따지기 좋아하는 막내는 역시 말로 엄마를 환장하게 만들어 버렸다. 엄마는 싸우다 지쳤는지 나보고 설득을 해보라 했다.
그즈음 나는 엄마가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이 본인 만족을 위한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할 때라 속으로는 막내를 응원하고 있었다. 나 대신 엄마를 꺾어놓길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내의 인생도 생각해야 할 것 아닌가. 아무리 엄마가 미워도 나의 복수를 막내의 인생과 맞바꿀 순 없었다.
막내는 쓸데없이 냉철해서 대학을 졸업해봤자 어차피 취직하느라 고생할 바엔 지금이라도 항공직업전문학교에 가서 빨리 일자리를 잡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틀린 말이 없었다. 하지만 너는 아직 어리니 일단 대학은 가보고 그때도 아니면 뒤집자고 했다. 지금까지 버틴 게 아까우니 조금만 참아보자 설득했고 그 뒤로 고민을 더 하더니 일단 대학은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구원을 받았다.
자식 셋을 무사히 대학 보내고 졸업까지 시킨 엄마는 세상 홀가분해했다. 친척들 중에 자식을 모두 온전한 대학을 보낸 건 자신뿐이라며 비밀인 듯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우리가 대학을 ‘간’ 것이 아니고 자신이 ‘보냈다’고 표현하는 엄마가 좀 안됐다가도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자식들이 엄마의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 듯했고 심지어 나는 남동생들을 위한 시험판인 β-버전으로 이용된 것 만 같아서 갈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때가 되니 엄마는 다른 듯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첫째가 길을 잘 터줘야 그 뒤에 동생들도 줄줄이 잘 풀리는 거야.
이번엔 자식들의 취업이 엄마의 새로운 목표로 떠올랐고 나는 기꺼이 그 길에 앞장서야 함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