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겨운 밥벌이의 시작

by 발전소

IMF 시절에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엄마는 본격적으로 나에게 ‘괜찮은 길’을 터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나도 취업이 절실했지만 친구들이 흔하게 다녀오는 어학연수나 휴학은 생각도 안 하고 저축까지도 할 만큼 성실하게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모아놓은 돈으로 진로를 차분하게 모색해 봐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이제 내가 돈을 벌어야 할 나이가 됐고 뒤로 동생이 둘이나 있으므로 더 이상 나를 지원해줄 수 없다고 선언을 했다. 엄마는 매정한 사장님이 된 양 더 이상 나를 기다려주기는 어렵다, 하고 싶은걸 시도하려거든 경제적인 부분은 네 돈으로 해결하라고 했다.


나는 취직도 하기 전에 사회의 쓴맛부터 보게 된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로 모아놓은 돈으로 뭔가를 찾아 나서 볼 수 도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 말대로 실업자는 곧 패배자이므로 나는 아무 직장이라도 빨리 잡아야만 한다고 조바심을 냈다. 엄마는 그게 정답이라며 사람은 무조건 직장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합격하리라 기대도 하지 않았던 첫 임용고사에 탈락하고 나니 진짜 겁이 났다. 이제 졸업만 하면 나는 공식적으로 실패자가 되는 것이다.


결국 ‘아무’ 사립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임용고시를 다시 준비하겠지만 놀면서 하느니 경력을 쌓으면서 하는 것 도 나쁘지 않겠다고 엄마와 나는 사이좋게 합리화를 했다. 나는 세상의 패배자들이 모여 있는 노량진의 고시 학원이 너무 싫었고 엄마는 실업자 딸이 부담스러워서였지만 서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무’ 사립학교는 집에서 왕복 4시간가량이 걸리는 말만 서울 근교인 시골 학교였다. 힘든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출퇴근을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처음, 사회생활도 처음이라 모든 게 어지러웠지만 신이 나기도 했다. 이제 나는 어엿한 직장인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학기를 마치고 운이 좋았던 건지 정규직이 되었고 나는 드디어 성공이란 걸 해냈다고 생각했다. 기간제 교사라는 불안한 위치가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정말 행운이 온 것이었다. 특히 노량진에 다시는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만 생각하면 하늘로 날아갈 지경이었다.


그렇게 얻은 나의 소중한 첫 직장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잃게 되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비교적 쉬운 편이었다. 과외로 다져진 경력이 도움이 많이 되어 수업시간을 보내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교무실에서는 바짝 긴장이 됐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내 성격 탓에 무례하다고 소문이 났고 처음부터 못마땅해하던 교감은 자꾸만 결재서류를 다시 만들라며 길들이기를 했다. 조직 내에서 파벌 싸움과 줄타기는 아슬아슬했고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는 함께 일하는 선배교사 중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혼란스럽게 했다.


사람들이 왜 사립학교를 구리다고 하는지 여러모로 차츰 알게 되면서 나는 2년 차가 되었을 때 심각하게 고민이 됐다. 내가 이곳에 정식교사가 된 것이 나한테 정말 좋은 일이 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엄마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배가 불러서 그렇다며. 어느 직장이든 쉬운 곳은 없다고 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양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는 사립학교의 특성상 보기 싫은 사람들과 한 곳에서 함께 늙어가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끔찍했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엄마는 이제 얼른 돈을 모아 시집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각한 시대에 그래도 너를 받아준 학교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내 월급을 착실하게 모아 주었다.


월급이 차곡차곡 모이는 만큼 직장에 대한 로망은 포기하게 되었고 나는 적당히 포장하며 사는 그저 그런 교사가 되어갔다. 첫 단추를 잘못 낀 옷을 입은 것처럼 나는 여전히 불편했지만 다들 그러고 사는가 보다 하고 지겨운 밥벌이를 계속 해댔다.


어느 날, 지겹다 못해 밥벌레가 되어 버린 듯한 나를 느끼며 나는 이제 엄마를 벗어나고 싶어 졌다.


엄마와는 더 이상 내 인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내가 혹시나 직장을 그만둔다고 할까 봐 지레 겁먹은 엄마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딸을 남의 집 식모로 보낸 소설 속의 어떤 엄마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독립이란 걸 해봐야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여자는 혼자 살면 위험하다며. 인신매매다 뭐다 세상이 흉흉한데 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진짜 겁이 없었다.



그냥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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