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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Aug 11. 2021

평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2021년 제19회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 통역 스태프 참가 후기

 평화를 위해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평화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이 많지는 않다. 전공이 일본 관련이다 보니 일본 친구들과의 교류가 잦기는 했어도 그 주제는 K-pop과 같은 가벼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교환학생 시절에 1년간 영토 분쟁에 관한 세미나에 참가해 토론을 하기는 했지만, 우리 땅이라고 배웠으니 그렇다고 말하는 수준이었을 뿐이다. 일본의 입장 따윈 전혀 궁금하지 않았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변화가 생긴 것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역사인식과 동아시아 평화포럼],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 [한중일 공동 역사교재 제작], [일본 역사왜곡 교과서 수정 활동] 등 한중일의 평화를 위한 시민단체 활동의 실무를 맡게 되니 자연스럽게 주워듣는 것도 생기고 관심도 늘어났다. 2017년 난징 포럼을 기점으로는 평화학이라는 학문에도 관심이 생겨서 대학원도 알아보았다. (선생님들의 강렬한 반대로 아직 보류 중이기는 하지만.)


 그 이후 이것저것 공부를 하고 있음에도 아직 정확히 ‘평화란 이런 것’이라고 정의 내리지는 못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천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약자를 위한 활동과 평화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싶지만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여의치가 않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로 인해 올해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상당히 반가웠다. 우여곡절 끝에 휴가를 쓰고 3일간의 캠프에 통역으로 참가했다.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는 올해로 벌써 19회를 맞이한 역사 깊은 행사이다. 시작은 한일 교류였지만 2년 차부터는 중국도 참여해 한중일 캠프가 되었다. 한중일 청소년 역사체험캠프에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의 참여를 기원하며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로 이름을 바꿨다. 2017년 홋카이도에서 진행될 때는 대만 아이들이 참가를 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는 한중일의 중고생이 120명가량 참가하여 한중일 삼개국을 매년 돌아가며 방문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한국 측이 주최하는 순서였던 2020년에 코로나로 인해 1년 미뤄졌고, 올해도 코로나로 인해 상황이 영 마땅치 않아 결국 온라인으로 진행되기로 결정 했다고 한다.


이번 캠프는 ‘코로나 시대, 신냉전과 한반도 분단을 넘어 평화를 상상하다’라는 주제로 8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에 걸쳐서 4개의 강의와 5번의 조별 토론 등의 활동으로 구성되었다. 1945년부터 1955년 사이의 역사적 사건들을 어떻게 삼국이 다르게 가르치고 있는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과 평화를 실천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평화를 위한 ‘만남’

 

 우리 조 학생들은 평화를 위한 실천에 대한 토론 시간에 지금 참여하고 있는 캠프와 같은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정도는 선생님들을 의식한 입 발린 말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그 이야기에 동의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기 위한 조건이 마련된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조건이 갖춰지려면 서로 대화를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서로 다른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 그 대화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행위가 바로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만남이 있어야 비로소 서로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캠프 때, 우리 조 아이들은 조장인 일본 아이의 주도로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일본 아이다 보니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라인을 사용하자고 하는 바람에 한국 아이들도 한바탕 라인을 까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그나마 중국 아이들은 vpn을 쓰지 않으면 라인 다운로드와 접속이 어려워 여전히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사용하는 위챗이나 웨이신, 웨이보의 사용은 나머지 아이들이 어려워해서 불발되었다. 기술력이 어마어마하게 진보한 세상에 살고 있어도, 문화의 차이로 인해 서로의 연결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자신이 쓰고 있는 어플을 모두가 당연히 쓸 줄 알았겠지만, 난생처음 겪어보는 이런 상황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7조 아이들이 작성한 "코로나로 지친 삼국의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평화의 메시지"


‘얼마나 닮았는가’

 물론 다른 점만 안다고 해서 평화를 위한 토대가 전부 놓이는 것은 아니다. 차이점에만 집중을 하다 보면 서로 공격하게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일본에 있을 때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업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평화를 이루려면 서로가 얼마나 다른 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닮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고,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전쟁범죄와 원폭에 대한 피해의식, 집단적 자위권의 문제를 비유로 설명한 직후에 나온 이야기였고, 그 강의의 모든 아이들이 한국 학생들이 같이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뜻깊은 말씀이었다.


 그 말처럼 아이들은 서로 코로나 시국에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걸 주고받으면서 아주 재미있어했다. 삼국에서 코로나로 인해 새로 생긴 신조어도 교류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과제가 늘어났다는 것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서 점점 가까워졌다. 토론이 끝나고 전체 회의실에서 폐막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못내 아쉬워하며 저를 사이에 두고 인스타그램 아이디와 라인 아이디 등을 공유해달라고 졸랐다. 캠프가 끝난 지금도 통역 선생님들을 끼워 만든 라인과 위챗을 오가며 다시 한번 줌으로 모일 날을 결정하고 있다.


 서로 친구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이 아이들이 앞으로 넷우익이나 서로 국가들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는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역사교육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배웠으니 상대가 자신이 아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낼 수도 있다는 관용의 자세를 갖게 되겠지. 이 얼마나 벅차오르는 일인가.


내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면

 아이들이 직접 교류하고 부딪히며 성장하며 평화를 키워나간다면, 나는 그런 장을 만들고 소통을 돕는 역할로 평화에 조금씩이나마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더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널리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져주는 날을 바라며.

(2024.5.15. 일부 수정)



다양한 한중일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궁금하시다면 : https://www.aph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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