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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Oct 16. 2023

가해하지 않을 권리

무기박람회 저항행동기 ①

"무기박람회요? 한국에서요? 그런 게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오늘 내가 속해있는 소모임에서 듣게 된 이야기이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나도 몰랐다.


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시민사회를 접할 일이 없었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겠다는 부모님의 종교적인 신념 - 바꿔 말하면 정치적으로 아무런 입장도 갖지 않겠다는 신념 - 으로 인해서 집에서 뉴스를 보는 일조차 드물었다. 사회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기 때문에 특별한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대학교를 다닐 때, 같은 과 교수님이 종종 어울려주시던 인사연(인문사회과학연구회)이라는 소모임을 통해 그나마 세상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긴 했지만...... 인사연을 '인'사불성 '사'요나라 '연'맹의 준말이라고 할 정도로 주로 술을 먹고 놀기에 바쁜 편이었다. 그렇게 놀기 바쁘던 내가 졸업 후 대학원을 가볼까 하여 추천서를 요청드리러 교수님께 찾아갔더니, 교수님께서는 "너 공부 안 하잖아"라며 폐부를 찌르는 말씀을 한마디 하시고는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라는 단체를 소개해 주셨다. 6년간 여기서 많은 것을 배우긴 했지만, 주로 일본/중국과 연대했던 터라 한국의 시민사회를 접할 일은 박근혜정권퇴진 촛불집회 외에는 거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피스모모에 정착하게 된 6월 이후로 722평화대행진, 8888 항쟁 35주년 기념 기자회견, 923기후정의행진, 국군의 날 시가행진 항의행동등 정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에 참여해 왔다. 그리고 오늘은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23의 첫 번째 날, 환영만찬에 대한 항의 행동을 하고 왔다.

23.10.16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23 환영만찬에 대한 항의 행동 - 참가자들의 발언 모습

2년에 한 번 국내 최대규모로 열리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는 23년에는 10월 17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된다. 방위산업이라는 말로 안전하고 멋있게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 민주화를 원하는 시민들을 학살하는 현장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듯이 살인 무기를 수출하는 자리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난 5월 외교부와 국방부는 국산무기 수출행사에 미얀마 군부의 대표를 초대했다.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를 자처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팔고 싶은 것에는 아무래도 무기도 포함되는 것 같다.


정치적 성향이 이제껏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내 주변에는 밀덕(밀리터리 오타쿠)이 제법 있다.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벌어진 이후, 한국에서 수출하는 전차에 대해서 얼마나 즐겁게 이야기를 해주었는지 모른다. 해외에서는 이미 생산을 멈춘 지 오래인데, 한국은 휴전국가이기 때문에 여전히 무기를 생산하고 있어서 바로 조립해서 팔 수 있었다,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오늘 환영만찬에 대한 항의 행동 시, 전쟁없는세상이용석 활동가가 해준 말씀이 또렷하게 가슴에 박히며 그것이 얼마나 틀린 말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살인 무기를 파는 주체는 국가가 아니다. 이른바 '방산업체', 즉 무기 상인들이 돈을 벌게 된다. 반면 수입을 할 때는 어떤가? 우리들이 낸 세금을 가지고 국가가 구입을 한다. 무기수출입이 늘어날수록 국가는 가난해지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이 작은 땅덩어리에도 불구하고 세계 9위의 무기수출 국가 이자 세계 6위의 무기 수입 국가라고 한다. 과연 이렇게 큰 규모의 예산을 무기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팔고 있는 무기들 때문에, 우리의 친구들, 이웃들, 민주화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 2022년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에서 탱크에 올라가고, 악기를 연주하는 항의 액션을 펼쳐 지난 13일 재판을 받은 뭉치와 오리는 각각 이렇게 말했다.


<피스모모 활동가 뭉치의 재판 최후진술문>

저는 무기 거래가 촉진되고 있는 무기 박람회에 가서 탱크 위에 올라갔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무기 수출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결과는 사람들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저의 친구이기도 하고 이웃이기도 합니다. 그런 끔찍한 폭력이 바로 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서 저는 탱크 위에 올라갔습니다. 왜냐하면 무기 수출이 국가의 성장 동력이 되는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가 그 폭력의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탱크 위에 올라감으로써 그 가해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제 이웃과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폭력을 방관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은 한국의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기박람회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막고 가해를 멈추기 위한 행동들 역시 이곳에서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오리의 아덱스 저항행동 기고문>
현대의 모든 전쟁은 무기 판매나 이전이 없이는 거의 모든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 부자 나라에서 만들어 가난한 나라로 판다. 따라서 전쟁은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전쟁에 공급되는 무기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을 막는 것이 반전운동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전쟁이 시작되는 다양한 장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역시 그 가해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꼭 선언하고 싶다.

글로 옮겨내고 싶은 너무 많은 행동들을 뒤로한 채, 아직 끝나지도 않은 아덱스에 대한 저항행동을 먼저 글로 쓰게 된 이유다.


<전쟁없는세상 소개글>
전쟁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이 일상적인 차별과 착취의 결과물이듯, 평화 역시 일상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우리 일상에서, 그리고 사회 구조에서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문득 10년 전 일이 떠올랐다.

독일의 친구와 애국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한껏 곤란한 얼굴로 "우리는 애국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 전범국가이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어서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이루는 과정에서, 사소해 보이는 반성과 교육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처음 생각해 본 말이었다. 아마 그런 교육을 받은 독일 시민들은 전쟁이나 대학살을 원하는 국가의 리더십을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자를 리더십의 자리에도 쉬이 앉히지 않겠지. 너무 커다란 문제-국가-를 맞닥뜨리는 느낌에 무력감이 들 수도 있지만, 우리, 정권도 한번 뒤집어보았잖나. 다 같이 모여서 평화를 만들어낸 우주도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살인무기 전시회 ADEX 중단을 위해 탄원에 참여하면 바로 그 순간 서울 ADEX 공동운영본부장, 국방부장관, 방위사업청장에게 FAX가 가도록 하는 액션을 진행 중이다. 중복해서 여러 번 참여도 가능하니, 시민의 힘을 함께 보여주세요.


23.10.16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23 환영만찬에 대한 항의 행동 - 구호

(2024.5.15.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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