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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헤라디야 Nov 02. 2023

왜 글을 쓰게 되었을까?

브런치를 통한 치유... 혹은 그 비슷한 것에 관하여

브런치 작가 승인이 난 후로 약 3주 이상이 흘렀다. 그동안 스무 개에 가까운 글을 썼고, 과연 내가 올린 게시물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나 한지 모르겠지만 꾸준히 글을 올리려고 애썼다. 지금도 감기, 아니, 기관지염에 걸려 흐리멍덩해진 정신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눈앞이 흐릿흐릿하다. 그래도 타자는 칠 수 있다. 두뇌에서 손가락 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평소보다 조금 둔하고 안개 낀 것처럼 느껴질지언정.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싶었다. 평소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내 얘기를 잘 하지도 않는 나였다. 그런데 왜 굳이 속마음을 글로 써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게시하고 싶어진 걸까?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게 못내 답답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흔히 말하는 '회피형'에 가까운 인간이다. (덤으로 자폐 기질도 상당하다.) 가까운 친구들은 있지만 내 속 이야기는 잘 털어놓지 않는다. 나 자신이 회피형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기에 중요한 순간에는 벽을 무너뜨리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친구가 소중한 사람을 잃었거나 하는 상황에서는 최대한 감정을 이입해서 대화하려 애쓴다. 그러나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꼭꼭 숨겨놓는 경향이 강하다.


저녁에 두 시간씩 연애 문제로 고민을 털어놓곤 하던 예전의 룸메이트가 한 번은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답답할 때는 네게 얘기하는데 너는 답답할 때 누구한테 얘기하는지 모르겠다고. 그 말은 내 뇌리에 새겨졌다. 나는 힘들 때 누구에게 말하는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한 친구가 위로하고 싶다며 자신이 운영하던 바로 찾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친구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내가 얘기를 들어주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친구가 권하는 테킬라를 매번 들이키면서. (몹시 후회스러운 부분이다.) 잔뜩 취한 채로 바를 나와서 자정도 넘은 시각에 근처에 사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해서 울면서 뭐라고 떠들었나 보다. 친구는 당장 달려와 줬고 엉엉 울고 있던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 후에 홀연히 사라졌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힘든 것'을 공개적으로 대놓고 드러냈던 것은. 정신과 초진 때도 나는 다소 담담하게 우울증에 걸린 지 7년 반쯤 됐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구구절절이 늘어놓고 싶지도 않았고, 일단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게 목적이었다. 항우울제는 어느 정도 효능을 발휘했고 덕분에 일상이 조금은 더 편해졌지만, 어릴 때부터 꼭꼭 눌러 담은 내 안의 많은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종종 닥쳤다. 그렇지만 상담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고민 얘기를 털어놓지 않는데 처음 만난 상담사에게 그럴 수 있겠는가?




어릴 때 일기장을 들킨 이후로 나는 지면에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는 걸 꺼리게 됐다. 한때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 나온 '모닝 페이지'를 해 보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 즉시 공책 새 쪽에 아무거나 글을 쓰는 것이다. 어느 정도 도움은 됐지만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향이 보였다. 어쩌면 그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습관은 몇 달 이상 가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카페에서 태블릿을 꺼내 놓고 글을 쓰는 습관이 생겼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냥 그 순간에 내 마음을 잠식한 것들에 대한 끄적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몇 주에 한 번쯤 그렇게 적고 나면 마음속이 시원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작년에 겪은 경험을 에세이 형식으로 적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한국에 온 친구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야기였다. 그런데 글은 내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친구 부모님과의 이야기 대신에 내가 슬퍼할 때 케이크를 구워준 친구 이야기가 글 속에 담겼다. 그렇게 해서 쓰게 된 것이 브런치 작가 신청할 때 써먹은(?) '먹는 게 남는 거 (https://brunch.co.kr/@ejeradilla/1)'라는 글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글을 쓰는 건 글을 읽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왜 글을 그냥 쓰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이 공간에 올려야겠다고 결심했는지 묻는다면 솔직히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다. 그냥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물론 두려움도 있었다. '신청했다가 떨어지면 어쩌지?'보다는 '글로서의 가치가 없는 공개 일기가 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솔직히 나라고 해서 온라인에서 뭔가를 읽다가 '일기는 일기장에 쓸 것이지... ㅉㅉㅉ'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메인 화면의 글들을 살펴보자 일상 얘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얘기들을 재미있게 읽으며 '라이킷'을 날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일상의 이야기가 글감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서는 풀 한 포기도 훌륭한 글감이 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단순히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글을 쓴 사람의 관점을 읽는다는 사실도 실감하게 됐다.


많은 분들께 낯익을 브런치 작가 승인 메일. 나 역시 스크린샷을 떠 두었다.


그렇다면 작가 신청을 시도해서 나쁠 것도 없지 않을까? 솔직히 나라는 개인이 일상에 관한 글을 올린다고 해서 세상에 큰 피해를 입힐 일도 없지 않겠는가? 며칠을 고민하다가 작가 신청을 넣었다. 미리 검색해서 찾은 지침에 맞춰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담아 자기소개를 적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지도 항목별로 간략히 적었다. 참고용 글로는 위에서 말한 '먹는 게 남는 거'와 신청을 마친 후에 문득 생각나서 후루룩 써 내려간 후에 추가한 '아침에 한 알, 자기 전에 네 알 (https://brunch.co.kr/@ejeradilla/2)'을 올렸다. 그다음 날, 합격 통보 메일이 도착했다. 뛰어오를 듯 기쁘지는 않았다. 그냥 우울증에 걸린 사람으로서 기쁘다고 체감할 수 있는 만큼 기뻤다. (그 정도면 상당히 기쁜 겁니다.)




막상 브런치에 글을 게시하면서 느낀 가장 놀라운 점이라면,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쓸 때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을 쓸 때보다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가을에 세상을 떠난 고양이 2번이 이야기를 짧은 시리즈로 쓰려고 결심한 후, 타자를 치면서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던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시리즈는 1편 '다시 네 보드라운 앞발을 만질 수 있다면(https://brunch.co.kr/@ejeradilla/4)'만 올려놓고 아직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 글을 쓰면서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글로 써서 누군가와 공유했다는 사실부터가 내게는 몹시 치유로운 경험이었다.


브런치 메인 화면을 보면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글이 가득하다. 키워드에 맞춰 자신이 원하는 글을 찾아 읽을 수도 있게 설계되어 있다. 그만큼 다양한 작가님들이 브런치를 꾸며 주고 계신다. 정보가 가득 담긴 글을 올리는 작가님도 계시고, 흔히 하기 힘든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작가님도 계시며, 일상의 이야기를 재잘재잘 수다 떨듯이 들려주는 작가님도 계시다. 내 경우는 다소 어정쩡한 글을 올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어정쩡한 글을 쓰면서 즐거움을 느끼며, 만약 한 분이라도 그 글을 읽으며 잠시 '피식' 웃으셨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분일 때도 있다. 주제를 정해야 글을 쓰지...


가끔은 글을 쓰고 싶은데 막상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러면 최근에 겪은 일들을 떠올려 본다. 그렇게 해서 떠올린 일을 주제로 삼아 글을 적기도 하고, 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다가 자연스럽게 주제를 찾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쓴 글들의 주제를 보면 다소 중구난방이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는 친구들과의 이야기, 반려병(우울증) 이야기, 그리고 그 밖의 일상 이야기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엄마와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도 적어서 올리기 시작했다. 그 여행의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다시 읽으면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비단 그 이야기만이 그럴까. 지금 글로 적는 모든 것은 글로 적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잊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브런치를 일기장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아니, 나는 일기 자체를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상을, 또한 그 일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토해내는 것은 치유로 이어진다. 그 이야기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괜찮다. 쓰는 사람의 진정성이 담긴 글이라면 읽는 사람도 그걸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글과 동시에 작가를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말한 소소한 이유로 나는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글을 올리고 싶다. 그 행위를 통해 치유받고, 만약 가능하다면 누군가에게 치유감을 전해 주고 싶다.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작은 웃음만이라도 전하고 싶다.


우리의 일상은 글이 되고, 그 글을 읽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된다. 참 아름다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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