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창문에 사선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곧게 출발했을 것 같은데, 결국에는 비스듬하게 창문에 부딪치는 것이 꼭 나와 비슷해 보인다.
나는 여전히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재작년 가을에 책을 사기 시작했으니 햇수로만 따지면 1년 반 정도 될까. 순수하게 공부만 한 시간을 따지자면 반년이 될까 싶다. 대부분의 공시생은 전업으로 공부만 하지 않을까 싶은데, 작년의 나는 학원에서 일도 하고, 외국어과외도 하고, 글도 팔았다. 그러면서 시험공부도 하고 6월에는 시험도 쳐보았다. 전 범위를 한 번도 다 보지 않고 치렀으니 예상 가능한 점수가 나왔고 당연히 과락이었다. 이후에는 학원은 그만뒀지만 글쓰기와 과외는 시험공부와 병행했다. 공부만 하고 싶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마땅한데, 어리석었을까.
공부와 시험의 나라답게 ‘공무원 시험’에 대한 조언은 지천에 깔려 있다. 학원도, 인터넷강의도 아주 잘 나와 있고 각종 사이트에 온갖 공부법과 팁이 산재한다. 교재를 구매하기 시작하던 재작년에만 정보를 좀 찾아보고 이후로는 일부러 하나도 보지 않았다. 하루에 8시간 이상은 공부해라, 회독이 중요하다, 기출이 중요하다, 관련 전공이 아니거나 베이스가 없으면 인강은 듣는 게 좋아요, 행정학은 휘발성이 강하니 잘 외워야 합니다. 앞서 경험한 분들의 뼈 있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것을 토대로 성실하게 공부했다면 지금 이런 글은 안 쓰고 있었을까.
연말, 2023년 한 해를 돌아보는 데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했다. 친구에게 말하니 분명 뭔가 한 게 있을 거라고, 같이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그래서 곰곰이 되돌아보니 돈을 벌기 위한 글을 정말 많이 썼고 책도 40권 정도 읽었다. 거기에 과외하고, 학원에서 알바 좀 하고, 공시 공부도 좀 하고. ‘그러면 너는 글쓰기랑 독서를 많이 한 거네.’ 이야기하면서 알았다. 그런데도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 건 이번에도 역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가장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
작년에 가장 열심히 한 게 공무원 시험공부였다면 연말에 그렇게 우울하진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그걸로 소소한 용돈벌이나 하면서 사는 걸로 행복할 수 없게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다. 가장 큰 건 30대가 코앞인데도 당당하게 경력이라 부를 만한 것이 하나도 없고, 친구들 대부분이 4-5년 차 직장인에 결혼도 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사회가 권장하고 다수가 따르는 트랙에서 나는 한참 뒤처져 달리고 있다. 다른 사람은 다 하는데 나는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주는 자괴감과 우울감은 생각보다 컸다.
물론, 다수가 가는 길을 꼭 따를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바로 직전 글을 썼다. 사실 삶에는 단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년을 되돌아보며, 간헐적으로 덮쳐오던 불안이 기어이 우울로 자라나 나를 잠식하는 걸 느끼면서, 그 다수가 권장하는 길을 따라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실감했다. 이제는 한 일터에 정착해 얽매이지 못하고 멍하니 부유하는 이 상태가, 직장, 연애, 결혼, 재테크 등 내 또래가 관심을 가지는 일에 대해 한 마디도 할 말이 없는 나의 현재가 지겹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보고 싶다. 진짜 월급이라는 걸 받아보고 싶다. 이게 가장 솔직한 마음이다.
친구는 내가 왜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기가 나라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꼭 시험공부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가족을 제외하고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당장 부모님집을 나와 월세라도 구해서, 학원이든 어디든 일을 구해서 온전히 나를 먹여 살리는 건 어떠냐고도 했다. 일찍 독립한 친구의 뼈 있는 조언이니 납득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해도 될 거다. 사람은 절박하고 괴로워야 독립적이 되니까.
하지만 내가 나를 그렇게 내몰고 싶지 않은 건 두려움일까, 회피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결론적으로는 지금 이대로 가족과 함께 살며 공시공부를 할 거라고 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내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합리화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지금으로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하지만 고민할 시간에 행정학 책을 한 페이지 더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이런 글이나 쓰고 있지만.
올해도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당최 삶의 윤곽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아니, 더는 합리화할 힘이 없겠지. 물론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힘들고 싫지만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하며 나 자신을 이겨보고 싶었다. 나는 ‘싫어하는 일’을 견디는 힘이 아주, 아주 약하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 정말 자기답게 살 수 있다고 수많은 책과 멘토들이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 말의 전제는 ‘싫어하는 일을 긴 시간 견뎌내 본 경험이 있다면’이다. 얼마나 견뎌야 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런 기간이 아주 짧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기 전 대학입시는 예외다. 그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으니까. 나는 학생 때 인정욕구에 목이 말라 있었고, 좋은 성적은 내 자존감을 채워주는 유일한 도구여서 거기에 매달리는 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게는 ‘싫어하는 일을 견디는 힘’이 필요하다. 그게 나한테는 공무원 시험공부이고, 합격은 내가 그 힘을 조금은 길렀다는 증거가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한편으로는 죽도록 싫지는 않기도 하다. 나는 잘하는 게 공부밖에 없으니까. 대입, 자격시험, 각종 한국식 시험은 늘 혼자 힘으로 했으니까. 그 ‘독학’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생소한 개념을 혼자서 이해하는 순간, 아리송한 개념들이 내 머릿속에서 기어이 연결되어 하나의 소주제와 대주제를 이루고 이론의 틀이 잡히는 순간이 정말 짜릿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싫어하는 일’이라는 게 비극이지만.
그리고 공무원 시험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전단계 이기도 하다. 남들은 다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교의식과 함께 나를 우울 속으로 밀어 넣은 또 다른 것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라는 자각이었다. 작년에 분명 10만 자가 넘는 글을 썼지만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로지 약간의 돈과 글쓰기 자체에서 오는 소소한 재미를 얻기 위한 글. 그런 글쓰기를 끝내고서 내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는데, 더는 쓸 게 없었다. 책상에 앉아 빈 화면에 몇 줄 쓰다가 끄기를 반복했다. 남이 좋아하는 글만 쓰느라 지쳤거나, 내 글 쓰는 법을 까먹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정말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쓸 수 없는 나를 견딜 수 없다. 그런 나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경험이겠구나. 친구는 자기라면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물론 그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새로운 경험은 내 또래 모두 밟고 있는 단계, 어딘가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고 사회적인 타이틀과 자아를 만드는 경험이다.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쉬고, 직장인 모임에 참석해 보고, 가족에게 내가 번 돈으로 맛있는 것도 사줄 수 있는, 나 역시도 다른 사람이 다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떳떳하게 증명해 보이는 것. 그러면 나는 지금까지처럼 내면에만 집중하는 깊고 좁은 관점이 아니라. 외부에도 시선을 돌리는 좀 더 넓고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지 않을까. 그러면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지금 이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독서실에 틀어박혀 쓰지도 않을 한자를 익히고, 연도를 외우는 이유는 첫째, ‘싫어하는 것을 견디는 힘’을 기르기 위함이고, 둘째,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함이고, 셋째, 그럼으로써 나 자신과 세상에 떳떳해지고, 넷째, 결국 글을 쓰기 위해서다. 또한 글을 쓰지 못하는 지금의 나를 견디지 못하는 경험 역시 ‘싫어하는 것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 된다.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냈을 때 분명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어있을 거라 믿는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해달라고,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역시 잊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내가 어디에 도달해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비가 그쳤다. 사선으로 남아있던 빗자국이 사라졌다. 지금 이 모든 시간이 지나고 난 뒤의 나도 그러한 비와 같기를 바란다. 곧게 내리던 모양과는 다르지만 비스듬하게나마 흔적을 남기고, 또다시 증발해 구름이 되었다가 비가 되어 내리고,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순환하며 오래도록 세상에 존재하고, 시기마다 형태가 다를 뿐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 그러한 형태로 존재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삶이 이러한 형태인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비처럼 살아가도 괜찮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