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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Feb 03. 2024

삶의 단계에 대해 생각한다.

대부분이 똑같이 밟는 단계다.

어릴 때는 공부를 잘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학생 때는 좋은 대학에 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고는 취직을 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취직한 뒤에는 연애를 하면 될까.

연애하다 보면 결혼을 할 테고, 그럼 다 해결되려나.

그리고는 아이를 낳으려나? 그다음에는?



‘다 해결될 줄 알았다’라는 말의 의미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하나의 관문, 사회가 정해놓고 국가가 권장하는 한 구획을 넘어서기만 하면 다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나는 삶이 저절로 흘러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가 달리 노력하지 않아도 관성처럼 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길 바랐나 보다. 혹은 파격적인 사건, 가히 ‘터닝포인트’라 부를만한 계기가 생겨 내 삶이 완전히 변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계기로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혹은 이 사회가 선망하는 방향으로 나를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관성은, 거기서 비롯된 편함은 무감각함과 연결되기 쉽다. 관성으로 굴러가는 삶에 주체성이 있는가.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 어떤 삶이 옳은 것인지, 그렇다면 내게 옳고 그름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근원으로 파고드는 질문과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지금의 삶인 걸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면 이건 정말 내가 원한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회가, 다수가 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다수가 가는 데는 이유가 있겠으나 그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은 있는가. 아니라면 나는 컨베이어벨트 위의 공산품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삶은 한 번에 변하지 않는다. 삶의 파격적이거나 비극적인 사건으로 한순간에 사람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들을 듣는다. 나도 그런 것을 꿈꾼 적이 있다. 어떤 외부의 힘이, 나의 바깥에서 일어난 일이 내게 충격이나 감동을 주어서 나의 게으름과 자기합리화와 자기기만을 한 번에 깨부수어 주기를 바란 적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정말 변할 거야, 이 사람, 이 말, 이 수업, 이 책이 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줄 거야. 얼마나 어리석은 바람이자 가련한 소망인가.


나는 대체 무엇을 ‘해결’하고 싶은가. 어째서 삶의 관문 하나를 뛰어넘으면, 그때도 여전히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웃고 울고 어금니를 짓씹어야 할 텐데도, 그때도 여전히 나는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선택하고 움직여야 할 텐데도, 모든 것이 다 해결되기를 바라는가. 마치 더 이상의 고뇌와 사색은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처럼.



공부를 잘해도,

좋은 대학에 가도,

직장을 구해도,

결혼을 해도,

가정을 만들어도,


또다시 새로운 고민과 문제와 고난과 괴로움과 날밤을 새워도 답이 안 나오는 일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게 삶이다.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순간이 모여 만든 하루가 하나의 삶을 이룰 뿐이고, 저런 관문은 인위적인 구분일 뿐이다. 저것을 절대적인 ‘관문’이라고 생각했기에 뛰어넘은 다음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은 이 글로써 끝마쳤다. 그러니 무언가가 나타나 내 삶을 바꿔주는 요행을 바라지도,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며 1차원적 쾌락에 몸을 맡긴 채 이성을 마비시키지도 않겠다. 내게는 인식의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죽음과 다름없으므로.


숨을 쉰다고 살아있는 게 아니다. 숨을 쉰다고 죽지 않은 게 아니다. 나의 실존을 증명하는 것은 호흡이 아닌, 인식과 사유이다.


그러니 나는 그 무엇도 멈추지 않겠다. 평생 나 자신을 고민하며 살겠다. 정답을 찾는 대신 질문하고 고민하는 나날을 보내겠다. 그렇게 내가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있게 될 때, 그때서야 비로소 내 호흡은 삶의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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