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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Nov 19. 2023

커피와 케이크

왜 글을 쓰는가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었다. 화장을 하고, 반지를 끼고, 구두까지 신고 왔다. 혼자 쉬러 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남이 주문한 연애소설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쓰려면 예의를 차려야 할 것 같았다. 각질이 일어난 뺨을 긁적이며 자판을 조금 두드리다, 스마트폰을 한 번 들여다보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그런 기분이었다.


4분의 1 정도 남은 케이크는 초코시트에 생크림과 체리조각이 들어있다. 맨 위에는 얇은 초콜릿 조각들이 얹혀 있었는데, 한 번만 포크질을 해도 우수수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그걸 또 어떻게든 주워서 먹겠지. 그러고 싶지 않아서 초콜릿 조각부터 다 떠서 먹었다. 라떼를 마실 때 늘 음료 위에 얹힌 휘핑크림부터 빨대로 다 떠먹었던 것처럼.


여기까지 쓰고서 글이 참 웃기다고 생각한다. 카페, 커피, 케이크, 반지, 구두, 책, 그리고 초콜릿. 일련의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나를 어떻게 포장할지가 궁금하다. 나는 나를 포장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소비하는 외부의 것들로 나를 정의하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계속 쓴다. 나는 나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본 적은 없고, 오늘은 꼭 써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거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구나.


오늘은 카페 창가에 앉아 누가 읽어주기를 바라는-한편으로는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습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내일은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무원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나는 공시생이니까.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취직을 해야 하니까.


엄마가 2년 안에 독립을 하라고 했다. 2년 안에 어디에서든 혼자 사는 내 모습을 상상해 봤는데, 좋았다. 예전에는 거창한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그게 꿈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 집을 얻어 독립을 하는 것'조차도 요원한 꿈이라는 걸 이해할 만큼 자랐다. 집 근처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여가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다시 바이올린을 배우고, 가족이나 친구와 맛있는 거나 먹으러 다니고. 그렇게 살고 싶다. 어릴 때, 특히 고등학생 때는 이런 평범한 것이 어떻게 꿈이 될 수 있냐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꿈이란 '내가 바라는 것'이다. 그 이외의 정의는 필요하지 않다. 


뭘 더 써야 할지 모르겠다. 케이크가 바닥이 났고 해가 졌다. 접시에 초콜릿 부스러기만 남아있다. 어떻게든 다 주워 먹었는데도. 최근의 내 삶은 이렇게 무엇을 해도 개운하지가 못하다. 그래도 글이라도 쓰니까 기분은 좀 낫다. 공시 공부에 올인해도 모자랄 판에 글을 쓰는 건 사치가 아닌가 가 첫 번째, 돈벌이를 위한 글을 쓰는 것도 힘든데 나를 위한 글을 쓰기는 귀찮다가 두 번째 이유로 '내 글'은 잘 쓰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최진영 작가의 글 때문에 뭐라도 쓰고 싶어졌다.

고등학생 때는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매일 밤 일기를 썼다. 새벽 두 시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무언가를 쓰다가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든 적도 많다. 졸면서 쓴 일기는 글자를 거의 알아볼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다시 읽지 않았으니까. 그때는 기록이나 성찰을 위해 일기를 쓰지 않았다. 오직 배설하고 토로하기 위해, 들끓어 오르고 폭발할 것만 같은 감정을 덜어 내거나 잠재우려고 썼다. 그렇게라도 쏟아 내지 않으면 자해하거나 가출하거나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배설하고 토로하기 위해, 들끓어 오르고 폭발할 것만 같은 감정을 덜어 내거나 잠재우려고. 나도 그러려고 이 글을 쓴다. 말은 상대방이 필요하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내가 말하고, 묻고, 대답하고, 다시 묻는다. 나는 나와 대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내 자신과도 잘 지내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자해하거나 가출하거나 미쳐 버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래서 앞으로 종종 써보려고 한다. 제목은 커피와 케이크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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