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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채 Feb 06. 2024

테이프 자국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이 없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다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던 그녀와 나눈 면담들이 또 떠올라, 오래전 메모를 뒤적거렸다. 그녀와 면담을 마치고 든 생각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둔 기록,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이 없다고 나는 썼다.  


그녀가 면담을 하자고 나를 불렀을 때 심장이 두근거렸다. 세 번째 면담이었다. 지난 면담 때까지 그녀는 사직의사를 밝히라며 나를 종용하고 있었다. 교묘한 방식으로.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들과 대할 때 늘 정공법을 택했다. (그것이 내가 이 사회에서 도태되는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뭐 나가라는 건가요?라고 내가 묻고 난 뒤에 다시 하는 첫 면담이었다. 가타부타 나가라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나랏법이나 노동법 때문에 책임을 올곧이 내게 전가시키기 위해 그녀는 그 말만은 하지 않고 있었다. 

"생각은 해보셨나요." 

그녀는 나를 떠보고 있었다. 그 의중을 알아차린 나는 무슨 생각?이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대신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끝이 어떻게 되던,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그녀는 몹시 실망했다. 

"대리님 J 아닌 거 같아요."

MBTI를 말하고 있었다. 

입사 면접 때 INFJ라고 말했는데 지금 내 MBTI까지 거론하고 있었다. 때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게 MBTI라고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J라니. 자아가 약한 사람은 그것을 대변할만한 무엇이든 맹신하는 법이었다.  

"네? 무슨" 

"근무한 지 석 달이 되어가는데 정확한 업무 루틴이 없어요."

나는 보통 출근해서 그녀가 책상에 가득 붙여놓은 업무지시 포스트잇을 읽는 것이 일과였고 그날은 20분 정도 일찍 출근했기 때문에 내 자리에만 불을 켜고 포스트잇을 읽고 있었다. 그녀가 CCTV를 회사의 설치 용도와는 다르게 하급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자신이 감시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출근했으면 전체 불부터 켜야죠."

그녀는 완벽주의였다.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는데, 그 완벽주의란 것이 자신의 눈에 완벽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녀의 완벽주의는 일그러진 것이었는데, 회사 응대 전화는 받는 내게 거래처 사람들이 나와 그녀를 헷갈려한다고 하며 자신은 원래 남자 사원을 원했는데 인사권이 없는 그녀는 면접에 개입하지 못했고 여자인 나를 채용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초래된 거라고 까지 말했었다. 거래처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를 헷갈려 한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자신의 무엇을 흔들만한 대 사건처럼 여기는 듯 했다. 그러니까 그 완벽주의란 것이 건강한 지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자격지심에서 기인된 것이라는 걸 나는 또 간파하게 되었다.  


  입사 두 달 차부터 시작된 갈굼이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이런 말까지 튀어나왔다.  사내 공고문을 게시판에 붙이는데 테이프 자국이 남지 않게 하라는 거였다.  

테이프를 붙이는 데 어떻게 테이프 자국이 남지 않게 하라는 걸까. 

내 요지는 테이프 자국이 남으면 그것을 닦아 내라고 지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테이프나 게시판에 붙이는 기간이나, 또 테이프 재질에 따라서 자국이 남을 수도 있고 남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마치 불결한 어떤 것을 이야기하듯 자국 남지 않게 하세요. 그 말이 그녀의 모든 것(그녀 자신이 확립해 온 정신 상태)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때 하필 또 내 눈에 그녀의 목이 눈에 들어왔다. 갑상선 수술자국이었다. 그녀가 20대 때 했다는 수술은 아직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남의 상처는 모르는 척해주는 게 예의라고 여겼고 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수술 자국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녀가 말하는 내내. 아주 실례되는 행동이었지만 그녀가 테이프자국 운운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어떤 검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시선을 의식한 그녀는 급하게 말을 끝마쳤고 나는 통쾌함을 느꼈다.  어떤 식으로 건 나는 악해진다. 


  사실 입사 한 달 차 까지는 그녀도 나도 서로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녀는 직급은 나보다 높았지만 서너 살 어렸기 때문에 대부분 대화는 그녀가 말하고 내가 듣는 식으로 흘러갔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과 내밀한 부분까지도 나에게 털어놨는데, 나는 오랜 사회 경험을 토대로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게 익숙했다. 물론 나도 그에 상응하는 고백, 내 암수술자국에 대해 고백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은 것을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녀는 자식의 상처가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상처를 내 약점이라고 생각해 후벼 팠으리라는 것이 너무도 자명하다. 내가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와의 여러 일화들 면담이나 업무 지시를 함에 있어서 선을 넘은 언사들에 대해 지금도 떠올리면 손톱으로 긁힌 상처가 부풀어 올라 찌릿하다가 후끈거리며 우우 살갗이 울며 아프듯이 그런 아픔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진다. 그러니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며 내 상처에 대해 듣고 싶었던 그녀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내게 상처를 남긴 샘이니 그녀의 목적은 결국 달성된 샘이다. 


  개인의 인격을 살해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 쉽사리 단죄한다. 기본 태도가 안되어있다거나 사회생활을 안 해봤다거나 MBTI까지 들먹이면서 이제까지 어쩌면 평생 내가 확립해 온 고유의 개성들을 하나씩 하나씩 죽여나간다. 나는 그것이 직접적인 신체에 위해를 가하지 않더라도 영혼의 일부를 하나하나 도려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이제까지 받아온 상처들을 생각하며 남을 상처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는 그렇게 행동했으리라. 세상에 자신과 똑같은 마음들을 바이러스처럼 퍼트리고 싶은 그 행동은 결국 성공했다. 내가 때때로 슬퍼지는 것은 평생 없어지지 않을 그녀와의 일화가 남긴 자국 때문이다.  모든 것은 자국을 남긴다는 그녀가 깨닫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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