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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 May 14. 2020

어린 환자 (2)


    “이건 학교야. 네가 원하는 친구는 그 안에 있어.”

그러나 나의 어린 심판관의 얼굴이 환히 밝아지는 걸 보고 나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친구랑 운동장에서 놀아야 해?”

  “왜 그런 걸 묻지?”

  “내가 밖에 나가면 안되거든….”

  “거기 있는 교실로도 아마 놀기 충분할 거다. 네게 준 건 아주 조용한 친구니까.”

그는 고개를 숙여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다지 조용하지도 않은걸. 어머! 수업 시작했네….”


이렇게 해서 나는 어린 환자를 알게 되었다.

 

-

 

  그가 어디가 아픈지 아는 데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어린 환자는 내게 많은 걸을 물어 보면서도 내 질문에는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았다. 그가 우연히 한 말들이 차츰차츰 모든 것을 알게 해주었다. 가령, 나의 회진 시간을 처음 보았을 때(그 시간은 그리지 않으련다. 그것은 나에게는 너무도 복잡한 그림이니까) 그는 이렇게 물었다.

  “이 물이 도대체 뭐야?”

  “이건 물이 아니야. 이건 피가 굳지 않게 하는 거야. 수술 잘 되라고 하는 거야. 내일 수술이야”

내 혈관이 깨끗해진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 주면서 나는 자랑스러워졌다. 그랬더니 그가 소리쳤다.

  “뭐! 그럼 아저씨 피가 투명해지는 거야?”

  “그래….” 나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야! 그거 참 재미있다…….”

그리고 어린 환자가 유쾌하게 까르르 웃어대었으므로 나는 기분이 몹시 언짢아졌다. 내 아픔을 진지하게 나눌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아저씨 수술 하면 낫잖아! 학교에 가봤어?”

나는 문득 그의 존재의 신비로움을 이해하는 데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걸 깨닫고 갑자기 물었다.

  “그럼 넌 학교 안 다니니?”

그러나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내 링거를 바라보며 신중한 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깊이 생각에 잠기더니 주머니에서 내가 그려준 친구 그림을 꺼내서는 그 보물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그가 슬쩍 내비친 비밀에 내가 얼마나 호기심으로 몸이 달았겠는가를 여러분은 짐작하리라.

  “얘, 너는 어디가 아파서 왔지? ‘네가 아픈 곳’이란 어디를 두고 하는 말이니? 친구는 왜 필요한거니?”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대답했다.

  “아저씨가 준 학교에서 친구가 밤에는 집에 갔을 테니까 잘 됐어.”

  “그렇고 말고. 네가 착하게만 하면, 밤에 친구네에 놀러갈 수 있도록 부모님께 말해줄게. 잠옷도 주고.”

내 제안이 어린 환자를 몹시 놀라게 한 듯했다.

  “잠옷이라니! 참 이상한 생각이네……”

  “하지만 잠옷을 입지 않으면 불편할지도 모르는데….”

그러자 내 친구는 다시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잠옷이 따로 있어?”

  “부드럽고 편안하게…..”

그랬더니 어린 환자는 진지한 빛으로 말했다.

  “괜찮아. 나 병원복은 아주 많으니까!”

그러고서는 조금 서글픈 기분이 들었는지 다시 덧붙였다.

  “내 잠옷은 이 옷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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