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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Nov 08. 2020

울어 울어 소리 내어 울어

엄마 이야기 9

책을 읽다가 '농사짓는 일은 욕심을 버리는 일’이라는 문구를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욕심도 부리지 않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신념이 확실한 분이었다. 교사로서 임무에 충실했으며 젊은 세대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배웠으며 아이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존경받는 교사였다. 남에게 베풀기만 했던 엄마. 가족에게 헌신하기만 했던 엄마. 묵묵히 일하는 소처럼 순하고 성실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당하고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소리 지르며 울지도 못하고 그렇게 참고만 살더니 병이 나고야 말았다. 싫으면 싫다고 하고, 아프면 소리도 지르고 말을 하면 될 것을 왜 참아서 지 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딸로서 정말 속상하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쌓아두고 속을 끓이며 사는 사람이 있다. 엄마는 후자였고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귀가 쫑긋했다. 사연은 첫째 아들을 자주 혼내게 된다는 엄마의 고민이었다. 동생도 잘 챙겨주고 힘든 엄마를 많이 돕겠다고 말하는 다정한 아들이 걱정이라는 것이다. 혼나면 말을 안 하고 눈물만 흘린다고 답답하다는 고민이었다. 나는 사연을 들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엄마도 엄마지만 애도 얼마나 답답할꼬?’ 


그런데 뒤이어 흘러나오는 엄마의 말이 더 충격이었다. 그게 울 일이냐고 말하며 혼을 낸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본인의 잘못된 방식으로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지 않았는지 생각하며 아들을 안고 사과하며 울었다고 한다. 사연을 다 읽은 후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울고 있을 때 아이가 엄마에게 그게 울 일이냐고 말한다면
엄마는 기분이 어떨까요?


 우리가 울고 있는 사람에게 그게 울 일이냐고 묻는 것처럼
폭력적인 것이 없습니다. 울 이유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우는 것이고,
눈물이라는 것은 저절로 터지는 것이지 내가 작정하고 애써
울어야겠다고 하는 경우는 연기를 할 때나 있을 법한 일이죠. 


우는 사람에게는 우는 이유가 있는 것인데 ‘울지 마라’ ‘그게 울 일이야?’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의 감정이 그 속에게 썩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 우리 부모님 세대는 참고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특히 여자들은 가난하면 가르치지 않고 오빠나 동생들 뒷바라지하도록 강요를 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여자로 태어난 죄로 그냥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서럽지만 참고 살았을 것이다. 맞고 자랐다는 어른들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어렸을 때는 이해가 안 갔다. 이제는 그냥 그분들이 가엽고 안아주고 싶다.


자라면서 받았던 억압 때문에 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참고 울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힘들면 힘들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울고 싶을 때 눈치 보지 말고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었으면 좋겠다. 가슴속에 있는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게 말이다. 실컷 울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실 컷 울고 난 후에 얼마나 후련한지를. 엄마가 소리 내어 실컷 울어봤으면 좋겠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소리 내어 울기를 바란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오롯이 엄마의 시간으로 존중해주며 잠시 자리를 비켜 줄 것이다. 그렇게나마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해소가 된다면 얼마든지 엄마가 소리 내어 실컷 울기를 바란다. 


‘엄마, 빨리 나아서 맛있는 것도 먹으러 나가고 예쁜 사진도 많이 찍자.’ 

결혼하고 엄마랑 함께 찍은 사진은 왜 이렇게 없는지. 떼써서라도 사진도 많이 찍고 놀러 좀 다닐 걸 후회된다. 


책에서 본 복사꽃 축제 현장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엄마 손잡고 그곳에 가고 싶다. 축제 삼행시 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아이의 삼행시가 내 마음과도 같다. 


복: 복숭아 먹고 

숭: 숭숭 춤추다 하늘 보니 

아: 아름다워라 


엄마가 이 아이를 칭찬해주며 함께 춤을 추는 상상을 해본다. 아이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존경받는 선생님, 교단에 서 있는 건강하고 눈부시게 빛나던 엄마가 그립고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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