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조차 힘들때가 있다.
"금일 사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지난주부터 출근했던 사원들은 모두 가까운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전 10시쯤 사내 메신저를 통해 내려온 팀 전체공지 내용이다. 지난달 초에 새로 들어온 인턴사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주변에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가 없어 어찌보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터라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다.
팀장님께 말씀드려 오전 근무를 잠시 땡땡이 칠 수 있는 허가를 받고, 집 근처 검사소로 이동했다. 목과 코를 면봉으로 몇 차례 공격당하니 생각보다 검사가 금방 끝났다. 결과는 다음날 오전에 문자로 보내준다고 했다. 사실 큰 걱정은 없었다. 같은 층이라 해도 섹션이 달라 자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나는 사내에서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 2~3일은 재택근무로 일하고 있었고 확진자와 내가 출근일이 겹치는 마지막 날짜는 이미 6일이 경과한 상태였다. 다만,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셀프-자가격리를 시행하기로 마음먹고 귀가 후 외출을 일절 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어제 검사를 받았던 사내 동료중에 추가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를 비롯한 사내 대부분의 직원들은 '밀접접촉자'로 분리되어 2주간 자가격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 백신 접종을 2차까지 맞고 2주가 경과한 사람들(얀센은 1회 접종 후 2주)은 수동감시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백신 접종을 미리 할 걸 하고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고갔다. 웃기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나 그럼 2주동안 헬스장을 못가네?"
예전이었으면 운동 가라고 해도 가기 싫었던 나였지만, 목표가 생기며 최근에 운동과 식단관리에 집중하던 터라 운동계획이 망가지는 게 싫었다. 물론 대체로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수행하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실제로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게 효율이 더 잘 나오는 건 사실이다.
한편으로 나와 주말동안 접촉했던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어찌됐건 일단 해당 사실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전화를 돌려 해당 사실을 알렸다.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추석 연휴에 방문할 예정이었던 강원도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댁을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여름에 휴가를 써서 찾아뵙고 싶었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추석을 기다리며 방문을 미뤄왔었고 그래서 이번 추석 연휴에는 꼭 뵙고 싶었다.
이런 저런 계획이 틀어지니 짜증이 밀려왔다. 남들 입장에서는 "그깟 2주 헬스장 안 간다고 죽냐? 할아버지댁은 다음에 가면 되잖아?" 라고 말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나도 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근데 하필 연휴와 겹치는 이 시기에 걸린 게 그냥 짜증이 났다. 최근 프로젝트 등으로 인해 업무량이 늘어나서 이번 연휴때는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근데 그게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 갑자기 우울한 감정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평소에 집 안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도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자 집안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까지 재택근무, 끼니는 배달시킨 샐러드 및 서브웨이로 해결. 컴퓨터로 유튜브 시청 및 독서. 근데 원래 저녁에 헬스장 가던 시간에 원래 홈 트레이닝을 해야하는데, 그냥 너무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심리적으로 너무 답답했고,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젖어들었다. 이러한 감정들로 인해 생긴 두통은 나도 혹시 코로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가만히 갇혀 있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봤던 '머니게임' 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참가자들이 2주동안 밀폐된 공간에 갇혀있다. 상금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상금을 최대한 적게 쓰고 남은 상금을 분배받는 게임이다. 이 때 게임 내 물가는 실제 물가의 100배를 적용받아 3000원짜리 물건을 구매하면, 실제로는 그 100배인 30만원이 상금에서 차감된다.
"하, 저런 와중에 술판을 벌이다니, 진짜 돈 아깝다."
프로그램 중, 참가자들이 낮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술을 여러 병 구매해 술판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 내가 정말 '자가격리 - 머니게임'을 진행하다 보니 그들이 이해가 됐다. 어떤 공간에 갇혀서 지내야 하는 건 생각보다 더 심리적으로 힘든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휴대폰과 컴퓨터가 있지만, 하물며 그러한 전자기기도 없던 참가자들에게는 정말 술이라도 필요했을 것이다.
5일간을 우울감 속에서 보냈었다. 2주라는 시간은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시간, 나는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의 늪에 허우적댔다. 우울감에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런 내 감정을 혼자 견디기 벅차 자가격리라 나가지 못해 답답하다고 은근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다. 그 중 한 친구가 해 준 이야기가 되게 힘이 되었다. 하루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 간단하게 계획을 짜고 그걸 실천해보자고. 자기 자신도 예전에 힘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이 기록법은 간단하다. 하루를 MLD(Morning, Lunch, Dinner)로 나누어 그 시간동안에 할 일을 적어두고 각각 아침, 점심, 저녁마다 수행 결과를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수행했으면 체크표시를 하고, 못했으면 X표시를 한다. 이런 일정 쓰기를 길게 지속하지 못했던 '귀찮음' 이란 거대한 장벽이 없어 편하다.
처음엔 정말 이게 효과가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다만 수행하기 편해서 꼭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나는 위 사진처럼 정말 간단한 계획을 세웠을 뿐인데, 더 이상 '계획을 실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계획을 세우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계획이라 해봤자 '샐러드 먹기', '설거지 하기' 등과 같이 정말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그 성취감이 주는 만족감이 컸다.
나는 자가격리를 통해 오늘 나와 좀 더 친해지게 되었다. 어찌보면, 나라는 사람은 굉장히 다루기 쉬운 사람일 수도 있다. 그동안 나를 관찰해왔으나 오늘로서 마침내 확실해졌다. 만약 내가 어떤 일을 하게끔 만드려면, 나에게 계속 작은 성공을 주면 된다. 난 사는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생각하는 대로 살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최근 나를 힘들게 했던 내적인 갈등과 관련된 고민도 포함해서.
"넌 그것밖에 못해, 남들이 이미 앞서 가는데 왜 뒤쳐져 있는데 더 하려 하지 않아?"
"넌 이게 문제야, 이 부분이 부족해"
오, 전혀 놀랍지 않게도 남들이 하는 지적의 99%는 이미 나도 알고 있는 문제이다. 나는 어떤 대화가 끝나면 그 대화 속 한마디 한마디를 다시 되새김질해 그 대화 속 부정적인 부분을 몇번이고 소화하는 습관이 있다. 그를 통해 나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은 참 좋다. 하지만 난 최근 이게 너무 과해져 지나칠 정도로 나를 학대하기도 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나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말까지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는데, '나는 사람들의 충고를 귀 담아 듣고, 발전해 나가야 해' 라는 일종에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사실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기도 했다. 당분간은 나의 '남들에게 향한 열린 귀'를 좀 닫아 둘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남들의 목소리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이느라 정작 그걸 듣는 내가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걸 방치하고 있었다. 내가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할수록, 그건 나와 상대방 둘 다에게 부담이 될 뿐이었다. 가끔은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독이 된달까.
다시 예전의 긍정적이고 순수했던 나로 살아보려 한다. 내가 하는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타인의 말에 크게 휘둘리지도, 상처받지도 않았던 그 때의 모습으로. 상황은 언제든 안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이겨내면 된다. 결국 2주라는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나는 다시 헬스장에 갈 수 있을 것이며, 가족들도 곧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2주라는 기간동안은 확실하게 재택근무를 편하게 할 수 있으며, 코로나 격리지원금도 받을 수 있다.
이 글은 먼 미래에 다시 힘들고 우울해져 다시 이 글을 찾아올 나에게 남기는 글이기도 하다. 다시 힘들어져도 또 긍정적으로 이겨내보자고, 사실 힘든 일도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닌 일이고 결국 그로 인해 더 좋은 일도 생기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