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왜 가을에 집을 나갈까?
가을이다. 얼마 전 저녁 상담이 길어져서 야근을 하다가 동기 변호사님이 회를 먹자고 해서 전어회를 시켜 먹었다. 2만 원어치라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양이 올 줄 알았는데 고작 한 줌이 조금 넘는 전어회가 들어있었다. 별 수 없이 사무실에 있던 튀김우동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한 젓가락 먹었는데 뭔가 쩐내가 나서 컵라면 밑바닥을 들어 보니 날짜가 한 달이 넘게 지난 컵라면이었다. 역시나. 나의 미각(?)에 감탄하며 그냥 후루룩 먹었다. 물론 비록 한 줌이었지만 전어는 맛있었다.
가을에 전어를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도 집에 돌아온다고 했다. 사실 전어 굽는 냄새가 그렇게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생선 굽는 냄새인데. 전어 굽는 냄새가 그렇게 멀리까지 퍼지는 냄새는 아닌데 집 나간 며느리가 냄새를 맡고 돌아올 정도의 거리면 며느리는 집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 며느리들은 가을에 집을 나가는 것이다. 이는 곧 이혼 전문 변호사들에게 가을은 아주 바쁜 시기라는 뜻이다. 가을 전어 썰을 만들어낸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이 이혼의 대목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모양이다.
며느리가 집을 나가는 가을은 유독 이혼 사건이 많다. 명절 전후가 모두 이혼 변호사들의 대목이라지만(?) 체감상 설보다는 추석이 더 이혼이 많다. 설에는 그래도 서로 덕담도 해주고, 새해가 시작하는 만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참고 잘 견뎌보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곧바로 이혼까지 이르는 경우가 좀 적은데, 추석에는 얄짤 없다. 설부터 참아온 울분이 폭발하는 것이다. 추석도 서로 덕담을 주고받긴 하지만, 새해의 그 잘해보자는 마음가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가을에 이혼의 발단이 되는 건 역시 추석 연휴다. 양가 부모나 친척들을 만나면서 갈등이 생긴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서로 할 말이 없다 보니 서로의 근황을 캐물으며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데, 명절을 겪어 본 우리 모두는 잘 알 것이다. 그 한 마디씩 던지는 말이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사실 아무 말 대잔치라는 걸 알면서도 평소 쌓여왔던 울분이 터지거나 스스로도 느끼던 아픈 구석을 찔려 더 화가 난다. 명절 노동 때문에 생기는 갈등도 정말 많다. 전, 나물, 잡채, 산적, 식혜, 송편 등 명절에 먹는 음식은 죄다 손은 많이 가는 음식뿐이다. 추석 명절 보너스 같은 걸 숨기려다가 여름 휴가비나 상반기 상여금을 숨겼던 것까지 들통나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양가 부모님의 명절 용돈을 다른 금액을 드린 것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덜 모여서 좀 갈등이 덜 할까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또 코로나 때문에 생긴 갈등이 많았던 것 같다. 재난지원금 받은 건 왜 안 주냐, 명절에 모이지 말라는데 왜 어머님 아버님은 또 오라고 하냐, 백신을 맞네 안 맞네, 백신 부작용이 어쩌네 저쩌네, 이런저런 코로나 얘기로 가족들끼리 싸우다 보면 희한하게 꼭 정치나 경제 얘기로 번진다. 암튼 코로나가 다 문제다.
가을에 또 이혼이 많아지는 이유는 남자들이 가을을 타기 때문이다. 해가 짧아지면서 점점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지고, 슬슬 찬바람이 불면서 첫사랑 그녀가 떠오른다. 그녀를 닮았든 아니든 아무튼 법률상 배우자는 아닌 다른 누군가와의 만남을 시도한다. 모두가 핸드폰으로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부정행위를 들키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서 보통 한 두 달 내에 잡힌다. 상간 소송만 하든, 이혼소송까지 하든 변호사들은 일이 많아진다. 봄 탈 때는 왜 아무 일이 없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뭔가 봄 타는 외로움은 가족들끼리 뭉쳐 나들이도 가고 꽃놀이도 가면서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은데 가을 타는 외로움은 봄과는 다른 근본적인 쓸쓸함이 있어서 그런 듯하다. 낙엽이 잘못했다.
협의이혼은 오히려 더위 때문에 짜증이 많아져 가을보다는 여름에 많이 신청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숙려기간을 거치다 보면 협의가 잘 되지 않아 가을이 온다. 결국은 가을에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게 되는 것이다. 여름에 협의이혼 신청을 해놓고 숙려기간을 보내며 여름휴가에서 남들 다 행복해 보이는 인스타 사진 같은 걸 보다 보면 8월이 지나가고, 가을이다. 여름 동안 재산분할은 못해주겠다, 양육권은 내가 갖겠다 등 온갖 싸움을 겪으며 서너 장 남은 달력을 보면, 이대로 가다간 내년도 불행할 것 같다는 생각에 변호사를 찾게 된다. 특히 가을은 뭔가를 정리해야겠다는(?) 기분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래서 더욱 이혼소송을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며느리들이 집을 나가 갑자기 늘어난 이혼 소송 상담을 하면서 미친 듯이 바쁜 9월을 보내고 나니 순식간에 10월이다. 10월에는 얼마나 이혼을 하려나. 그래도 숨통을 트이게 해 줄 대체공휴일이 있어서 다행이다. 혹시 이혼 고민을 하고 있는 분이 있거들랑 가을에는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니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다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가 바로 가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