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장아찌는 죄가 없다
깻잎 장아찌, 깻잎지, 깻잎김치, 깻잎절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밥상 위의 도둑 깻잎. 그 깻잎을 주제로 하여 얼마 전 갑자기 유행처럼 깻잎 논쟁이 시작되었다. 외간깻잎논쟁이라고도 한다. 탕수육 부먹 찍먹 이래로 최대 난제였는데, 밥 먹다가 할 얘기 없으면 깻잎 논쟁을 던져 놓으면 모두가 나서서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람마다 견해가 크게 달랐다. 이혼 전문 변호사로서 깻잎 논쟁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였다. 지금은 이미 한물가서 시들해졌는데, 법조계는 언제나 한물간 것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보고 견해를 밝히며 시대를 뒤늦게 따라가는 풍토를 가지고 있다.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깻잎 논쟁은 노사연이 남편인 이무송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방송에서 이야기하며 번진 논쟁이다. 노사연이 이무송이랑 여자 후배랑 같이 밥을 먹는데 이무송이 여자 후배가 깻잎장아찌를 잘 떼어내지 못하는 걸 보고 깻잎을 떼어줬다는 것이다. 그걸 보고 노사연은 크게 화를 냈는데, 이무송은 그런 노사연을 이해하지 못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jn2aRT4K9A&t=1s
위 에피소드를 발단으로 예송논쟁의 나라답게 깻잎장아찌를 둔 식사예절(?)을 가지고도 논쟁을 시작했다.
나, 내 애인(혹은 배우자), 내 친구(애인과는 성별이 다름)가 같이 식사를 하는데 내 친구가 깻잎을 떼지 못할 때 내 애인이 그 깻잎을 떼어내 주는 것이 싫다 VS 상관없다
깻잎 장아찌는 평소에는 그렇게 위력적이지 않다가 고기(특히 삼겹살)를 구워 먹을 때 갑자기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밥도둑으로 돌변한다. 평소에 밥상에 깻잎 장아찌만 있으면 반찬이 왜 이것뿐이냐며 투정을 하다가도 삼겹살만 구우면 그렇게들 깻잎 장아찌를 찾아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주로 회식자리에서 삼겹살을 많이 먹을 텐데 부장님 앞에 놓인 쌈채소와 명이나물에 손을 뻗을 수가 없어 결국 느끼함을 달래기 위해 앞에 놓인 깻잎장아찌만 열심히 먹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깻잎 장아찌는 꼭 여러 장이 함께 붙어 있는 특성이 있다. 이건 깻잎 장아찌를 만드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것인데, 보통 3~5장의 깻잎을 담은 뒤 그 위에 양념을 올리고, 또 그 위에 깻잎을 담은 뒤 그 위에 양념을 올리는 식으로 차곡차곡 깻잎을 락앤락에 쌓아가며 만들기 때문에 같은 층에 탑승한 깻잎끼리는 유독 더 달라붙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요리 방법은 천차만별이기에 아예 모든 깻잎을 다 쌓아놓고 간장 양념을 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식사 도중 깻잎이 유독 잘 떼어지지 않으면 주변의 누군가가 아래쪽 깻잎을 잡아주는 도움을 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반찬을 같이 먹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라면, 특히 요즘 같은 시국이라면 식겁할 것이다. 아무튼 바로 그 친절한 행동에서 깻잎 논쟁이 시작되었다. 왜 그 친절을 애인인 나를 두고 다른 이성에게 베푸냐는 것이다.
내 애인이 내 친구의 깻잎을 떼어줘도 상관없다는 사람들도 꽤 많고 나도 이 견해를 지지한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제3설을 지지하는데, 나는 깻잎을 떼어줘도 상관없지만 애초에 깻잎을 두 장 잡았으면 그냥 두 장을 먹고 고기를 한 점 더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때 강경깻잎반대파의 반론을 들어보면 또 설득력이 있다. 아빠가 엄마 앞에서 외간 여자(?)의 깻잎을 떼어줘도 괜찮냐는 것이다. 그 광경을 생각해보면 또 묘하게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하다.
논쟁을 종결하기 위해 TV에서는 전문가까지 초빙되었다. 유퀴즈에 뇌과학자 김대수 교수가 출연해서 "젓가락을 활용해 깻잎을 뗀다는 건 뇌가 가진 최고의 기술입니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깻잎을 떼어내주는 것은 테라헤르츠급의 몰입이 필요한 행동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자기 배우자나 애인에게 몰입하고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운명적으로 붙어있던 깻잎을 떼어서 서로 나눠먹기까지 한다고!
너무나 완벽한 뇌과학적 설명에 강경깻잎반대파가 압승을 하는 듯했다. 깻잎찬성파는 그래서 새로운 난제를 제시하며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새우를 까주는 것은 괜찮냐, 롱패딩 지퍼를 올려주는 것은 괜찮냐 등 살면서 애인과 친구를 같이 만날 일도 거의 없을 텐데 많은 사람들이 이 탁상공론에 가담하여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맡았던 형사 사건 중 친구의 아내가 새우껍질을 까줬다며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착각한 남자가 친구의 아내를 강간하려고 했던 사례가 있을(물론 홈파티 자리였고, 그냥 테이블에 있던 모든 새우의 껍질을 까둔 것인데 그 남자가 착각한 것이다. 정말 어이없는 변명 중 하나였다.) 정도로 유독 이성의 사소한 행동에 착각을 하는 사람이 많긴 한 것 같다.
결국 깻잎 논쟁의 핵심은 이성이 그 행동을 보고 착각할까 봐 연인으로서 미리 화가 난다는 것이다. 누가 어떻게 착각할지 모르는 이 사랑 넘치는 세상에서 사소한 배려를 애초에 차단함으로써 모든 착각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혼 전문 변호사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관점을 하나 제시한다면, 불륜이나 부정행위는 절대 식탁 위에선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륜이나 양다리를 들키면 안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불륜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온갖 기상천외한 기술을 다 쓴다. 통화내역 지우기, 카톡내역 지우기, 투폰 쓰기, 사내 메신저로 대화하기, 블랙박스 삭제하기 등등. 무엇보다 배우자나 애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지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불륜의 당사자들은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필연적인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 오히려 애인에게 더 잘해주고, 다른 이성에게는 전혀 관심 없는 척을 한다.
그러니 만약 당신의 애인이 당신의 친구에게 관심이 있다면, 당신 앞에서는 그 친구에 대한 조금의 호감도 내비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친절을 베풀었다가 그 행동에 화가 난 당신이 다시는 친구를 같이 만나는 자리에 데리고 오지 않으면 더 이상 그 친구를 볼 수 없게 될 텐데! 심지어 그 묘한 기류를 감지당하여 썸이 생기기 전부터 미리 의심을 살 수도 있다. 괜한 의심을 살 수 있는 친절을 베풀기보다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척하며 뒤에서 조용히 친구에게 번호를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친구 앞에서는 당신에게 더 잘해주면서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냥 식탁 아래에서 발을 꼼지락대며 은밀하게 터치하고 있을 수도 있다.
결국 당신의 애인이 당신의 눈앞에서 친구의 깻잎을 떼어준다면, 반대로 그 친구에게 일말의 이성적 호감도 없다는 뜻이다. 그냥 깻잎을 못 떼고 있길래 떼어내 준 것이다. 아니면 그냥 애인의 친구이니 잘해줘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만약 그 행동에 기분이 상했다면, 애인에게 아까 그 행동이 기분 나빴으니 다음부턴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면 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깻잎장아찌는 정말로 무죄입니다. 피고인이 과거 삼겹살과 공모하여 밥을 절취한 경우가 수차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사건 애인 절도 혐의에는 결코 가담한 사실이 없습니다. 피고인은 정말로 억울합니다. 피고인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냥 한 장씩 잘 떨어지지 않은 것뿐입니다. 부디 피고인의 억울한 사정을 생각하시어 무죄를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