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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개군날돌들막 Jul 11. 2019

7. 사모님, 여기는 집이 아니라 회사인데요?

P양- 1

나는 이러한 괴롭힘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그 일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서 너무나 후회했다.

이렇게까지 그의 괴롭힘이 심해질 줄 몰랐기 때문에 괴로웠다.

거기다가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 내 사수마저도 '표면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L대리를 동조하고 날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L대리에게 길들여지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때 한창 허니버터 칩이 유행이었다.

구하기 힘들어서 허니버터칩 과자를 못 먹어봤다는 그를 위해서, 나는 힘들게 과자 예약을 하고 그에게 갖다 바쳤다.

그렇게라도 잘 보여서 이제 그만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전에 근무태만으로 수없이 회사를 잘린 그에게 발톱을 먼저 드러낸 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마치 나를 처리하지 않으면 자신이 회사를 잘린 수 있을 것만 같다는 태도였다.




전 회사에는 비서인 P양이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매우 친절했으며, 짧다면 짧은 전 직장생활 동안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마 못 견뎠을 것이다.

가끔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카페에 들려 나를 달래주기도 했고 서로가 의지하면서 회사생활을 견뎌냈다.


가족회사는 수입이나 지출이 모두 자신들의 주머니에 드나드는 것이라서 그런지 전 회사에서는 청소하는 사람을 따로 구인하지 않고 월요일을 '청소하는 날'로 정했었다. 월요일 오전에는 사원들 모두가 청소도구를 들고 회사를 청소하는 날이었다. 내가 입사하고 초창기만 해도 직급을 가리지 않고 모든 직원이 청소를 했다.

하지만 L대리의 나에 대한 본격적인 괴롭힘이 시작되면서, L대리 위의 상사가 모두 출장을 간 월요일 오전이면 L대리는 자기와 친한 직원들을 데리고 카페에 간 뒤 청소가 끝나면 복귀하는 일이 잦았다.


처음에는 몇 명 남은 직원들끼리 청소를 했지만 이런 일이 한 달이 넘게 지속되다 보니 남은 직원들 조차 반감을 갖고 청소를 안 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의 전 직장은 가족회사였기 때문에 사장님의 부인(지금부터 아줌마라고 후술 하겠다.)이 종종 불쑥 들렸다. 이 아줌마는 P양을 마치 자기 집 개인비서로 보는 듯했다.

전화로 개인적인 업무를 지시하는 일을 지시하는 일이 잦았다. 가장 기억나는 건 아줌마가 다니는 학원이 있는데 P양에게 급하게 학원비 계좌 송금을 하라고 했다.

'이사'라는 이름으로 가족 모두가 등재되어있어서 일을 안 하고 월급은 가져가면서 회사 입장에서는 인건비로 세금이 감면되는 그런 존재였다.


이 아줌마가 내 사수에게 요즘 사무실 청소가 안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사수는 L대리가 항상 데리고 카페에 가서 청소를 안 하는 멤버였다.) 갑자기 불쑥 찾아오더니 탕비실 하수구부터 사무실 구석구석 먼지를 지적하면서 P양에게 요즘 청소하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P양이 혼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왜냐하면 L대리가 청소를 안 하고 카페에 가버리는 일이 나를 본격적으로 괴롭히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꼭 그때 그 일이 나비효과가 되어 이렇게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다음 주 청소하는 날 P양은 청소를 했다. L대리는 여느 때와 같이 자기와 친한 직원들을 데리고 나가버렸고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개인적인 업무를 하거나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특히 월요일 오전에는 과장 이상의 직급들의 출장이 많았다.) 나는 모든 일들이 나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에 말없이 P양의 청소를 도왔다.


또, L대리는 일부러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일을 나에게 자주 지시했는데 이 때 말없이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P양밖에 없었다. 모두가 L대리의 눈 밖에 나기 싫어서 몸을 사리는 눈치였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회사생활을 견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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