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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Dec 18. 2020

상처를 만지다

주말에 쇼핑을 했다. 어느새 훌쩍 자라 직장인이 된 두 딸은 자신들이 입을 옷을 서로 골라주며 입어보느라 무척 신나 보였다. 무엇을 입어도 예쁜 나이이므로 곁에서 딸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딸들은 자신들의 옷을 고르다가도 눈썰미 없이 따라다니기만 하는 내게 어울릴만한 옷이나 가방을 보면 내 몸에 슬그머니 대어본다. 아무리 예쁜 옷을 걸쳐봐야 합격점을 받지 못하는 몸에 대해 탄식을 하지만 그런 모습도 사랑스러워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 젊은 엄마 

어렸을 적, 읍내 오일장에 다녀오신 엄마는 오직 아들을 위해서만 새 옷 한 벌을 사 오셨다. 딸들을 위한 옷은 전혀 없었다. 옷은 사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고 얻는 것이었다. 옷도 변변한 걸 골라 받는 게 아니라 주는 대로 받았기에 모양이나 치수를 따질 처지가 아니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뜨개질로 직접 떠주셨다. 뜨개실도 귀해 남이 안 입는 옷을 얻어다 푼 후, 화로 위에 올린 노란 주전자 주둥이에 헌 실을 끼워 수증기를 쏘여가며 부드럽게 만들었다. 나중에 보면 그럴싸한 실타래가 되었다. 


집안일과 농사일로 바빴던 엄마가 뜨개질하는 시간은 제법 여유로웠고, 빠른 손놀림은 신기하고 재밌어 보였다. 겨울 외투용으로 떠준 옷은 엄마의 사랑이 느껴져서 좋기도 했지만, 바람이 숭숭 들어와 강원도 두메산골의 칼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이켜보면 예전 강원도의 겨울은 왜 이리도 추웠을까. 빨랫줄에 걸려있던 빨랫감은 널린 모양 그대로 얼음이 되고, 방 안에 놓아두었던 걸레나 그릇에 담긴 물마저 꽁꽁 얼어붙던 유년 시절. 여러 자매가 한 이불을 덮고 서로 끌어당기며 자다 추위에 잠이 깨기도 했고 이불 밖으로 머리만 내밀고 자다 보면 입김이 하얗게 올라갔다.

 

그 무렵이었을까. 이불 보따리만 한 큰 짐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집 집마다 돌아다니며 옷을 팔던 아주머니는 외부인이 드물던 동네에서 반가움의 대상이었다. 두 살 터울이던 여동생과 나도 보따리 안에 가득 있던 새 옷의 냄새를 맡고 실컷 만져본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신이 났다. 엄마 역시 아주머니가 집에 오는 걸 반겼는데 옷을 사려는 게 아니라 수다를 떨고 싶어서인 듯 보였고, 열심히 돌아다니던 그녀도 무거운 옷 보따리를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날도 두 분은 기나긴 수다를 나누었다. 옆에 있던 딸들은 보따리 안에서 맘에 드는 옷을 하나씩 골라 안고 오늘만큼은 절대 안 뺏기리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방심하고 있던 저녁 무렵, 새 옷은 기어이 강제로 빼앗겨 되돌려지고 말았다. 그날 우리는 딸들에게만 모질게 대하는 엄마가 밉고 원망스러워 얼마나 울었던가. 온몸으로 방바닥을 뒹굴며 꺼이꺼이 울부짖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이후로 바뀐 건 엄마가 아니라 우리 자매였다. 울어봐야 배만 고프고 서러움만 커진다는 것을 깨닫고 두 번 다시 헛된 꿈을 꾸지 않게 되었으니.


성인이 된 후 우리 세 자매가 엄마와 모이는 날이면 어렸을 적 아들과의 차별로 인해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투정은 쓸데없는 기억력만 좋고 엄살이 심한 나 혼자 부린다. 


“엄마가 아버지하고 아들 밥에만 달걀부침 해줬잖아.”

“읍내 오일장에 다녀오면 우린 오백원짜리 티 한 장 못 받았는데 아들은 상 하복 한 벌로 사 왔잖아.”

“원기소(예전의 영양제)를 딸들은 못 먹게 장롱 꼭대기에 숨겨두고 아들만 줬잖아.”


# 늙은 엄마 

일에 파묻혀 자식들을 살뜰히 챙길 여력이 없었던 늙은 엄마는 지천명도 넘긴 딸의 하소연에 미안해하고 속상해하시는데 한때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즐겼다. 하지만 웃고 넘기는 우리와 달리 엄마에게는 날카로운 송곳으로 찔리는 통증과도 같은 아픔이었나보다. 팔순인 엄마의 꿈속에는 늘 어린 내가 등장한다. 꿈속의 엄마는 내 옷을 사러 밤새 시장을 돌아다니고, 피부염을 앓는 나를 위해 약쑥을 뜯으러 종일 들판을 헤매신다. 뒤늦게 꿈에서라도 상처받으며 자란 딸을 보듬고 싶은데 꿈은 언제나 미완인 상태로 끝난다니 듣는 나도 마음이 아프다. 


어린 나이엔 철이 없어 엄마가 야속하기만 했는데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되어보니 그때 엄마 마음을 이해한다. 젊었던 엄마도 입고 싶었던 옷이 얼마나 많았을까, 쪼들리는 가정 경제와 딸들의 간절한 욕망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 행복, 감사 

이제 내겐 옷이 아닌 엄마 냄새와 손길이 필요한 나이라 아쉬움도 부족함도 없다. 엄마의 몸을 만지듯 엄마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며 더는 자식 걱정하지 말고 편안한 잠자리가 되기를, 아프지 말고 건강하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엄마한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엄마 딸로 태어난 건 크나큰 축복이고 행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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