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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 Jan 02. 2021

식인과 광인 그 사이

루쉰  <광인 일기>

 광인 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은

 “ 이거 너무 재밌다.”였다.
품고 있는 심오한 주제를 떠나서 위험에 빠진 (듯해 보이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 서사를 읽어 내려가는 일이 흥미진진했다.

루쉰은 짧은 문장 안에 예리하고 날카로운 냉소를 심어 둔 채 독자들에게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완벽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광인 일기라는 제목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투>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고골리의 작품 중에도 광인 일기라는 소설이 있어서였다. 고골리의 광인 일기 역시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부조리에 못 이겨 스스로 만든 환상에 갇힌 채 세상을 조롱하고 야유하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깨닫고 벗어나려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뒤늦게 루쉰이 고골리의 광인 일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썼다고 알려진 것을 알게 되었다.  

도스도옙프스키 역시 고골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문호로 알려져  는데 이쯤 되면 중국의 현대 문학과  러시아 문학사에 고골리라는 한 사람이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걸 깨닫는다.  아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도스도옙프스키에 대한 예찬을 생각하면 한국 문학사에도 고골리의 지분은 상당할 듯하다.

.저우수런[周樹人]필명 <루쉰>. 고골리야노프스키


소설은 광인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일기를 담고 있다. 일기를 쓴 주인공은 어느 날부터인가  밖에 나갈 때마다 아이들이나 영감들이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고, 자신을 노려본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들의 눈빛을 보고 그는 자신 주위의 사람들이 식인을 할 거라 확신한다. 급기야 본인의 친형이 자신을 잡아먹는 식인 행위를 주동했다 믿는다. 날짜도 적혀있지 않고 내용도 뒤죽박죽인 그의 일기에는 그가 겪는 피해망상이 고스란히 보여진다.

봉건 제도니 유교니 하는 시대적 배경은 모르지만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괴로워하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에 쌓여 결국은 주변의 식인에게 먹잇감이 되고 말 것이라는  착란증에 시달리게 되는 주인공은 짠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대단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세상과 맞설 힘은 없고 따르기는 더더욱 싫으니 모두를 식인종으로 들어 버리는 의식의 진행은 일종의 정신승리 같이 보이기도 했다. 남들 눈에 미쳐 보이는 내가 현실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다들 정신 차려라. 하고 말이다. 모두에게 멸시받는 광인에게서 대찬 대륙의 기백이 느껴진 것은 희한한 일이다.


<식인이 될 것인가, 광인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비단 중국이라는 나라 , 시대적 특성을 배제하고서라도 이 문제는 현대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시대도 어쩌면 이 책 속에 나오 듯 옛날부터 그래 왔으니 그게 옳은 일이든 아니든 당연하다는 식인, 아닌 줄 알면서도 먹고 싶어 하는 식인 이 두 종류의 식인 대부분과  식인 대신 광인을 택하는 소수로 세상이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선택지를 앞에 두고 나는 식인으로 편하게 사는 쪽을 택하게 될까 광인으로 가치를 지키는 소수가 될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그래도 나는 둘 다 아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광인은 아이들을 지켜 낼 수 없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도 나하나 잘 살아낼까 말까인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는 아무리 자기 혼자 가치를 지켜나간다 해도 광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꺼림칙한 점은 광인이 미쳐버린 것은 세상의 부조리 탓도 있지만 자신도 그 세상 속에 속해 있다는 자기혐오도 한몫했을 것이다. 언젠가 자신이 찢어버린 꾸지오의 장부 같은 과거의 과오에 매여 있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다.
결국은 불신과 냉소가 거듭되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먹잇감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냉소는 영혼의 성에라고 했던가... 냉동실의 성에를 자주자주 제거해줘야 냉장고를 고장 없이 오래 사용하듯 하듯 우리의 영혼을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광인, 그가 조금만 더 낙관적인 사람이었다면...

그가 외치는 아이들을 구하라는 구호 아래 좀 더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개인이 외치는 현실에 대한 고발과 정의에 대한 책이 중국에서 나왔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중드에 빠진 이후로 중국 문화를 자주 접하게 되는 데 중국을 사람들이 소위 유사 국가라고 하던가... 그만큼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공산주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알리바바 창업자이자 부호인 마윈에게 내려진 처우만 해도 그 생각을 더 확고하게 만들고 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우한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우한 일기라는 책도 정작 중국에선 출간이 금지가 되었다고 한다. 루쉰의 책도 지금 정권에서는 금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다가... 역시 나는 그들의 기준을 가늠할 수 없다.

“중국은 나에게 희한한 나라” 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루쉰의 대표작 아Q정전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광인 일기와 함께 루쉰의 <이혼>이란 작품도 슬며시 추천해 본다.

이혼은 광인 일기와 비슷한 분량으로 부당한 이혼을 당하게 된 조강지처의 입장에서 쓰인 단편 소설이다.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사회가 약자인 피해자를 어떻게 다루는 지도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부당함에 맞서려는 피해자에게 마치 “니가 억울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영리하게 굴어라 ”라고 타이르는 제2의 가해자들에 대한 보고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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