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꼬아 탈출!
몇 일간의 짧은 여행은 간단하게 끝이 났다. 서로를 안고 눈물을 뿌리는 이별이 아니었다. 모두가 기쁨으로 가득하고 이후의 여행을 축복하고,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오후쯤, 바라꼬아에 도착한 우리를 집(숙소)으로 태워준 자전거는 단순한 자전거가 아니었다. 사실 도착 한 날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단지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다는 즐거움과 산티아고 데 쿠바의 풍경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의 바라꼬아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어 다시금 자전거에 올라 정류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젠 길도 익숙하고 특별히 먼 거리도 아님을 알기에 우리는 걸어가겠다 했다. 그러나 그 말은 먹히지도 않았다. 가방을 현관에 두고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전거 짐칸에 실려 있었다. 두꺼운 문이 달려있는 현관에서 한참을 인사하고 돌아서 나온 우리는 피할 겨를도 없이 자전거에 올랐다.
지나는 풍경이 익숙해서였을까? 우연히 머무른 시선에서 그동안 못 보았던 검게 그을린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뒷모습에서 고단함이 느껴지는 등이었다. 그렇게 땀에 젖은 그의 뒷모습에서 무엇인가 모를 감정이 몽글거렸다. 처음 숙소를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숙소들 중에서 우리가 머무를 숙소를 정했고, 우리가 이 집을 선택하게 된 것에는 우연적인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드는 편안함은 낯선 곳에서의 안락함이었고, 어쩌면 여행 중에 느낄 수 없는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온 힘을 다해 가족들이 우리의 편안함을 위한 노력을 해 준 것도 아니었다. 숙소에 있으면 가끔 옥상에 빨래를 널려고 오기도 했고, 저녁을 먹을 땐 같이 앉아서 우리 저녁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이야길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싫지 않았다. 빨래는 같이 널었고, 식사시간에 이야기는 마치 집에 들어온 아들에게 부모님들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일상의 대화였다. 내용도 없는 일상의 대화에서 따뜻함이 묻어났고,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적당한 무심함이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도 집에서 다정한 아들이 아니고, 나의 남동생도 수다스러운 아이는 아니었으니 이 분위기가 진짜 집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가끔 정이 묻어나는 대화라던지, 한국이 궁금하다며 올라와서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내려가는 아들은 마치 서울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사촌 형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한참을 붙들고 이야기를 듣는 사촌 동생 같은 느낌이다.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다시 그 자전거에 올랐다. 처음 도착했을 때 지나온 길을 다시 지나갔다. 이 길은 산책 삼아 몇 번이고 지나온 길이고, 시내 식당이나 슈퍼를 가게 되면 당연히 지나가는 큰길이었다.
처음 도착 한 날의 기억은 신기함과 낯섦이었다면, 이곳을 떠나게 되던 날에는 아쉬움과 미련이 묻어났다. 영원히 이곳에 머무를 수도 없었지만. 다시 이곳으로 오는 날이 언제 일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미래를 더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었다.
뒤에서 바라보는 아저씨의 등은 똑같았다. 배웅을 하기 위해 노란색 깨끗한 셔츠를 입고 있을 뿐, 빨간색 모자와 그의 힘겨운 발구름엔 힘이 들어간다.
처음 볼 때에도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눈에 띄는 듯 안 띄는 빨간 모자의 아저씨는 마지막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었다. 사실 전날 가방을 싸면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신발 중에 하나를 아저씨께 드렸다. 그리고 한글이 쓰인 셔츠 하나를 아들에게 주었다. 귀여운 막내딸에게는 내가 가지고 다니던 팔지를 선물로 줬다.
내가 제일 자주 만나고 오랜 시간 함께한 아주머니껜 편지와 작은 선물은 남기고 돌아왔다. 그렇게 소중한 한 가족을 쿠바에 작은 도시 바라꼬아에서 만났다.
새로운 여행의 시간을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다시 시작이 되었다. 쿠바의 동쪽 끝에 있는 도시로 들어와 열차를 타고 다시 쿠바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1주 전,
처음 산티아고 데 쿠바에 내렸을 때, 도착한 곳이 버스터미널 겸 기차역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워진 기차를 보며 이곳을 나갈 때 기차를 타고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지난번에 묵었던 숙소가 역이랑 가까웠기 때문에 우리는 바라꼬아에서 도착한 후 바로 역으로 향했다.
역으로 가는 길에 다시금 찾은 식당이 있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메뉴 고민 없이 갈 수 있는 식당이었다. 가게는 시장 안에 있는 곳인데, 우리나라 음식이랑 비슷해서 그런지 입에 맞았다. 한 그릇만 먹어도 든든할 만큼 양도 많았다.
배가 부르게 밥을 먹고 나오니 이제야 어디든 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목적지를 역으로 잡고 시장을 빠져나오는데, 눈에 띄는 차가 바로 앞에 서는 것이었다. 놓칠 수 없는 광경에 카메라를 꺼내 들고 셔터를 눌렀다. 꽤나 다양한 차를 봤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대중교통으로 쓰는 버스는 가히 놀라웠다. 버스가 아니라 마치 놀이공원에 퍼레이드를 하는 차량처럼 생긴 이 차는 앉는 좌석도 그렇고 진짜 놀이 공원에 있는 것처럼 생겼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출입구도 내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자동차의 안전이 의심스럽긴 했다. 버스의 타이어 바람은 빠질대로 빠져 버려서 도로에 바퀴 휠이 닿을 것 같았는데도 버스는 검은 연기를 뿜으로 앞으로 나가았다.
어마나 달려갈지 모르는 버스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 한 모습이었는데, 어떻게 타고 다녔을지 궁금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역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잘 몰라 걸어서 갔는데, 버스를 안 타길 잘했던 거 같기도 하다.
표를 살 수 있는 창구는 역에서 떨어진 다른 건물이었는데. 그곳에서는 표만 예매할 수 있었다. 나름 에어컨도 있고, 모니터도 평면으로 된 제품이었다. 워낙 뒤가 뚱뚱한 브라운관 모니터만 봐서 그런지 오히려 당연한 것들이 낯설어 보이는 경험을 했다.
"울티모" 하고 맨 뒷사람 뒤에 앉았다. 신형 모니터가 있다지만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한참을 앉아서 기다리는 겨우 우리 차례가 왔다. 핸드폰을 들고 있으나 인터넷이 안되니 괜히 같이 간 형이랑 이야기만 늘었다. 점점 수다시간이 늘어가는 기분이다.
다행히 예매는 어렵지 않았다. 표는 우리나라 역에서 표를 사는 것처럼 쉬웠다. 다만 외국인이라 여권을 보여줘야 했고, 요금이 쿠바 사람들과는 달랐다는 점이 특별했다.
특히 쿠바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쿠바만큼 자국민에게 혜택이 많은 나라가 없었다. 중국도 대중교통비가 저렴했는데, 외국인에게도 같은 요금을 받았다. 하지만 쿠바는 확실하게 자국민과 외국인에 대한 차이가 선명했다. 아무래도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복지에 외국인이 포함된다면 국가적 재정이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외국인들에게까지 복지정책을 할 수 없다는 쿠바의 국가 정책은 자국민에게는 아주 좋은 정책이다. 우리도 금액이 다르다 하여 불만은 없다. 그 정도의 가격으로 이동하는 거리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바가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표를 사고 나오는 길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천천히 역에 도착했다고는 하지만 거의 반나절을 역에서 보내고 나니 진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는 길엔 숙소에서 먹을 저녁과 간단히 마실 맥주를 샀다. 내일 있을 기차 여행도 기대가 되었지만, 어제도 같이 있었던 바라꼬아의 식구들이 벌써 그리워지는 밤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