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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Sep 29. 2022

그대는 영원히 기억되겠지.

체 게바라의 묘

장갑 열차 기념비가 있는 공원을 다녀왔다. 이곳에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라 정신도 없고 조금 지친 상태이긴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기차의 멈춤으로 기찻길 위에 서 버렸던 우리는 숙소에 가방을 놓고 바로 밖으로 나온 우리는 아침도 잘 챙기지 못했다.


그래도 상가의 문이 다 열리기 시작한 터라 숙소에서 가까웠던 장갑 열차 기념비를 먼저 보고 나서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여행이 오래되면서 식당 고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먹는 거 좋아하고 맛있는 거 좋아하는 내가 그 나라의 도시를 방문하기 전에 제일 먼저 검색하던 것이 바로 맛집 검색이었다. 


그렇다고 그 집에서 매일 같은 메뉴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도 없이 찾아봤지만 그 맛이 내 입 맛에 맞는 경우도 많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잦아지면서 찾는 거보다 현지에서 소개를 받거나 지나가면서 들어간 집이 마음에 드는 날이 많아졌다. 


오늘도 미리 준비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고, 찾아보기도 귀찮아지면서 공원을 다녀오는 길에 보였던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이럴 땐 아무거나 잘 먹는 우리 입맛이 고맙기도 했다. 

식당이 있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에 많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이 많은 공원 근처이거나 시장 근처에는 맛있는 식당이 많이 있었다. 장갑 열차 기념비를 보고 나서 산타클라라 중심에 있는 '비달 공원' 쪽으로 나왔다. 


비몽사몽 했던 아침시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도시의 풍경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발이 되는 시내버스와 그 안에서 오늘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발걸음도 눈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밖으로 나와 노는 친구들도 있고, 학교에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작은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이 없는 건지 미취학 학년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였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와 여유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자기네들끼리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재잘거리며 거리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노새의 등에 마차를 걸어 아이들이 타고 다닐 수 있게 준비한 마차도 있었다. 아바나에서도 아직 마차가 다니는데. 당연히 여기도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가여운 마음이 든다. 


손에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의 표정은 맑음이다. 그런 아이를 보는 어른들의 표정도 맑음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모든 어른들이 그렇듯 아이들이 즐겁고 맑게 자라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표정이 좋아지니까 말이다. 


쿠바 시내에는 오락거리가 많이 있지 않다. 그래서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러한 광장 문화는 조금 부럽기도 했다. 여유로움도 한몫을 하지만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러움이 크다. 한국에서는 공원을 다니는 시간이 없기도 했기만 집 근처에 공원도 마땅히 없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 앉아 있기도 민망해서...)

신나는 소리와 에너지가 넘치는 공원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가짓길 초입에서 만난 식당으로 성큼 들어간다. 식당에 메뉴가 뭔지 모른 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나라에 가든 중간 이상을 하는 맛을 보장하는 치킨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 나오길 기다렸다. 


아무도 없는 골목의 초입 부분이라 식당이 없어 보였는데. 막상 골목 안으로 들어와 보니 식당 말고도 여러 가게들이 있었다. 나온 음식은 다행히 독특한 맛이 아닌 평범한 닭구이 맛이 나는 요리였다. 음식을 보자 식욕이 돌아한 접시를 금방 비워내고 나서는 입이 심심한지 아이스크림까지 입에 넣었다.

든든하게 배가 차니, 역설적이게도 발이 가벼워졌다. 배고파서 힘이 빠지는 경우엔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운데. 배가 부르면 가벼운 발걸음을 딛게 된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음 목적지인 '체 게바라의 묘'로 향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밥을 먹었던 터라 걸어서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크고 기념비적인 장소였다. 우선 그가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의 동상으로 사람들을 맞이 했다. 우선 첫인상으로는 '크다'라는 느낌이 제일 먼저였다.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한 묘터라고 하기엔 규모도 크고 공원 전체의 크기도 작은 면적이 아니었다. 


그를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하지만 붐빌 만큼은 아니었다. 쿠바의 어딜 가든 사람이 많이서 붐빈다는 느낌을 받는 곳은 없었다. 다만 관광지가 되어 버린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수 있었지만, 그 이외에서 어딜 가든지 붐빈다는 느낌을 받은 곳은 없었다.


공원의 초입부터 우리를 맞이 했던 그의 동상은 생각보다 크고 높았다. 그가 처음으로 도시에 들어올 때처럼 붕대를 감고 있고 다른 손에는 총이 들려 있다. 이곳은 쿠바에서 체 게바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거대한 규모가 말해주고 있다. 

이곳을 단순히 체 게바라의 묘라고 하지 않는다. 지도나 여행 책자에서는 이곳을 체 게바라 기념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 그런가 보니 이 기념관에는 그의 젊은 시절부터 군대에서 사용한 모든 물품과 그의 동료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함께 전시해 두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한 이들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와 생사를 함께 했던 사람들의 기억들도 함께 둠으로써 그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준다. 


내부로는 어떤 것도 들고 들어갈 수 없다. 카메라는 물론 불가능했다. 평일이라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방금 전차 공원에서 출발했던 우리는 들어갈 호기심을 잃어버렸다. 우두커니 다친 팔을 붙들고 있는 그를 올려다보니 역설적으로 그를 더 보고 싶지 않았다.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고, 산타클라라를 방문한다. 어디서나 그를 만날 수 있고, 특별히 찾지 않아도 곳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굳이 어딜 찾아들어 거면서까지 보는 것이 과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화한 색을 띠고 있는 벽에 부조로 새겨진 그들의 기록을 유심히 보던 우리는 멀리서 이 전경을 보기 위해 공원으로 내려와 의자 위에 앉았다. 

날씨가 별로라서 그렇지 날은 좋았다. 적당한 날씨에 사람도 많이 없는 공원에 한편에서 멀리 떨어진 동상과 부조상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생각이 나서 가방에 들어있는 시가 담배를 꺼냈는데, 시내 카페에서 엄청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제품이랑 같은 것이다. 


하나를 다 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원래 담배를 핀 적이 없기 때문에 굳이 하나씩 불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형과 나는 하나의 시가에 불을 붙이고, 공원 한쪽에서 연기를 마셨다. 금세 볼에는 시가향과 담뱃잎 연소로 생긴 이산화탄소가 가득 찼다. 처음이라 그런지 그 연기에 숨어 있는 향을 맡을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몇 번의 들숨을 하고 나서야 입안에 가득한 연기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좋아하는 맛과 향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기 늦은 시간이긴 했다. 이후 시가를 받아 든 스탠리도 똑같이 했는데. 나와 똑같이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다. 

전쟁 중에도 늘 시가를 들고 있던 채 게바라를 보고 나도 그의 앞에서 시가를 한 번 물고 싶었다. 공원에서 금연인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흡연자를 많이 만났던 공원이라 그를 따라 해 보기 성공을 했다. 그가 다녔던 길을 온전히 따라갈 수 없겠지만, 희생이 따르더라도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그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숙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돈을 지불하는 마차에 올라 말이 끄는 짐칸에 무거운 몸을 올렸다.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운전자에게 전달하기 위에 옮기다가 이곳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금액의 지폐를 보자마자 방금까지 공원에서 느끼던 감정은 아지랑이처럼 사라지고 그 대신 처음 보는 지폐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우리가 처음 보는 화폐에 눈을 떼지 못하자 보여주면서 사진을 찍으라고 하기도 했다. 그 돈을 우리가 가지고 우리가 가진 똑같은 가치의 돈을 드렸다. 그렇게 작은 소품 하나로 말이 끄는 마차 위에는 잠시의 '수다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멀지는 않지만 즐거운 마음에 시내로 들어가는 길이 멀지 않았다. 


시내에 위치한 가장 큰 공원에 마차는 멈추었고, 우리가 내리려고 할 때엔 비가 오기 시작했다. 두 개의 공원을 다닌 땐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를 맞는 게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우선 큰 비를 피하기로 하고 작은 커피 점으로 들어갔다. 


특유의 단맛을 한 껏 담고 있는 커피 한 잔으로 거리 위에서 쌓인 피로를 풀 수 있었다. 다소 시끌한 커피 가게에 앉아 내리는 비를 보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비달 공원으로 돌아온 우리는 비가 그치면서 공원의 반대편으로 걸어 돌아봤다. 저녁이 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원으로 나왔다. 


하루가 길어졌다. 기차에서 머물렀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모양으로 밖으로 나온 김에 산타클라라의 거의 모든 곳을 둘러보고 왔더니 꽤나 힘든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아무것도 없이 체 게바라 밖에 없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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