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아바나 무대 위의 조명이 이제는 핀 조명 하나 남기고 다 꺼져버렸다. 새벽에 형은 멕시코로 넘어갔다. 물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환승 국으로 멕시코를 가는 것이지만 이 이별이 앞으로 꽤나 오랜 시간 형을 만날 수 없을 것임을 알기에 더 보내는 시간을 맞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보내고 다시 침대에 누워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며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비가 오는 건지, 이미 도로는 젖에 있었고, 그만큼 공기는 무거워 온 몸을 눌렀다.
9시
요반나에서의 아침을 먹었다. 늦게 일어나 이미 이곳 사람들이 다 빠지고 난 후에야 아침을 먹었다. 새벽까지 마신 럼의 효능이 그런 건지 목은 마른데 배는 고프지 않았다. 음료를 마셨지만 여전히 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대충 몸에 물을 뿌리고 혼자 나갈 채비를 마쳤다. 카메라 대신 배터리 가득 찬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발이 닿는 곳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숙소에 머물던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을 가지고 이곳에 왔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의 방향대로 움직였다.
나는 정해진 목적지 없는 길 위를 걸어 번화가로 나왔다. 이야기를 하며 걸었던 길에서 들리는 낯선 소리들이 귀에 담기기 시작했다. 쿠바의 전통 악기는 따로 없다. 아니 없어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나라를 개방하기 전에 침략이 이루어져 지켜야 할 전통들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오랜 시간 노예로 살면서 겪어야 했던 설움들은 다른 나라 악기들로 표현했다. 워낙 흥이 있고, 긍정적인 인품의 사람들이라 다른 나라의 악기를 가지고도 흥이 넘치는 음악을 만들어 냈고,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다. 음악사이 쉼표마다 빗소리가 채워주는 듯 쉼 없이 비가 내렸다.
10시
아직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식당을 정리하기 시작해서 분주했다. 기념품 가게에는 사람들이 아직 나오지 않아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우체국은 문이 아직 열리지 않았을 것 같아서, 비도 피할 겸 오비스포 거리의 작은 정원으로 꾸며진 건물로 들어갔다.
비가 오고 있는 중이라 그런지 아직 많은 관광객들은 보이지 않았고, 나처럼 비를 피하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들 몇몇이 보였다. 그나마 지붕이 이곳이 비를 피하기 최적의 장소였다. 평소에 이곳을 지날 땐 사람들이 많아 들어오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비가 오고 이른 아침시간엔 사람이 적어 충분히 시간을 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던 곳으로 기억하는데. 국립미술관 앞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에서의 자유로움은 내가 이해하는 것보다 깊었다.
국립미술관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있던 나는 허기를 느끼고, 뒷부분을 서둘러 보고 밖으로 나왔다.
12시
오비스포 거리의 수많은 레스토랑을 뒤로하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창고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곳은 평소 지나면서 본 곳인데, 쿠바 스타일의 식품관 같은 느낌의 장소였다. 많은 종류의 음식이 각각의 주방에서 만들어 나왔는데, 먹고 싶은 곳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받아 들고 음식을 먹는 곳에서 밥을 먹으면 되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틈에 들어가 소시지가 들어간 빵을 주문하고 주스 한 잔을 시켰다. 더 먹고 싶은 게 있을까 해서 둘러보다가 우리나라의 꽈배기 같은 밀가루 튀김이 있으니 맛 볼 겸 하나 주문했다. 사람들이 없는 자리를 찾아 앉아 든든히 먹고 밖으로 나왔다.
1시
하늘이 점점 맑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골목과 말레꼰 도로 위에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역시나 어제 만났던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이젠 혼자여서 아는 척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말레꼰 도로 위를 걸어지나 갔다.
구 시가지의 끝까지 걸어간 나는 다시 시내로 돌아들어 왔다. 걷는 동안엔 이제껏 여행과 쿠바 여행의 정리의 시간이었다. 여행은 내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일이었다. 때로는 포기도 하고 싶었고, 집으로 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쿠바까지 여행을 와서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들고 있다.
한적하고 혼자 있으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진다. 걷는 행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생각은 어느새 가지를 뻗어 한국에 귀국해서 해야 할 일들이 스치고 간다. 거기에 몇 년 후의 일까지 생각이 떠오른다.
이렇게 하려던 게 아닌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여행을 하려던 이유도 세상을 보고 싶어서였는데. 그런 세상을 눈앞에서 보고 있어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절로 한숨이 나온다. 결국 나만의 여행 끝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터에 돌아가야만 하는 운명이다.
물론 그런 운명을 거스를 만큼 부모로부터 거저 받아온 것은 없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들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고, 현실을 살아야 할 방법은 그 일을 통해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정해진 길이다. 그 끝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한번 그 일을 시작하면 다기 여행을 출발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일을 그만두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해질 것이다. 어쩌면 용기만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번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용기를 쉽게 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시간이 흐름으로써 지켜야 하는 것이 많이 늘어나게 된다면 또한 포기하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겠지만 그 일을 감당하기엔 힘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 때마 마다 결국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용기는 이전에 했던 여행의 기억 일지도 모르겠다.
7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이젠 머리가 어지럽다. 이곳을 즐길 수 있는 날이 하루가 남았지만 이렇게 지나가는 시간이라면 아깝기만 했다.
구 시가지로 돌아 들어온 나는 성당에서 내가 믿고 있는 신께 기도를 드렸다. 여행이 마치는 날, 집까지 돌아가는 날에 대해 빌었다. 짧지 않은 거리의 한국 여행을 준비하고 있으니 다음 여행 목적지는 그다음으로 한국이 되었다. 그나마 오랜 기간 머물렀던 이유로 한국 여행이 어색하거나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성당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성당의 외벽을 한번 쓸어 담아 봤다.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떠오르는 과정에서 생겨난 구름 중에 하나가 성당의 종탑에 걸리는 그 탑에 석양이 만들어졌다. 특히나 도심에는 단순한 배경에 조금만 달라져도 눈에 띈다.
8시
이제는 더 이상 밖에만 머무를 수가 없었다, 삼일 뒤면 이면 내가 이곳으로 머물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날이다, 다음날부터는 한국에 있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산책을 조금 더 하기로 했다. 반짝이는 야경을 눈에 담는다. 한번 더 저녁으로 비가 오는 바람에 야경을 두배가 풍성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풍성해지는 조명에 쿠바의 밝아진 구 시가자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기는 했다. 다만 오늘은 볼 수 없었던 장면이지만 맑은 날의 저녁에는 거리의 모습이 한 껏 조화로워 보인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전조등을 밝히고, 도로의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가로등이 켜진다. 도로의 전조등과 가로등이 다 켜지면 비 오고 나 뒤의 도로만큼이나 밝고 아름다움 야경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여경을 보고 나니 숙소에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쿠바에서의 하루는 길지도 않게 매력적인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