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에 가끔은 번 아웃 증상으로 새로운 나라를 여행할 때에도 침대에 누워서 보내는 적이 있었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 이층 침대의 바닥을 보고 있자면 왜 외국에 나와서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따뜻한 바닥에 등을 지지고 싶어지기도 하고, 누워 있으면 엄마표 찌개 냄새가 방 문을 뚫고 들어와서 코에 들어오는 것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었다. 딱히 몸이 지치거나 아파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었고, 그냥 그렇게 외국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계속 무엇을 해야만 하는 생활에 지친 것 일 수도 있었다.
한국에 들어온 지 삼 년이 넘어가고 있다. 이제는 눈앞에 이층 침대의 바닥이 보이는 그때가 그립다. 그립고 그립다. 다시 뒤로는 돌아갈 수 없음에서 나오는 후회일까? 아니면 앞으로는 그렇게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여행을 하지 않을 것이라 그런 걸까?
여행을 할 때에는 여행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다음 날도 눈을 뜨면 여행지였고, 오늘 하루 종일 누워 있어도 내일이면 내일의 여행이 시작되는 여행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대문을 나서면 만나는 풍경이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일상이 같은 일상으로 되어버린 지금은 그날로 돌리고 싶어도 그때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여행을 한다면 어딜 가볼까 했을 때 생각이 나는 곳이 쿠바였다. 나의 긴 여행에 마지막 나라 이기도했고, 장기간의 여행의 끝이기도 했다. 쿠바는 한 달이라는 한정적인 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한국을 돌아가야만 한다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서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못 해보고 못 가본 곳이 있어 아쉬운 마음이 가득 남아 있다.
제일 오래 머물렀던 쿠바의 아바나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궁금하다. 도로 위에 차들은 많아졌는지, 관광객은 늘었는지 말이다. 코로나 시기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친했던 까사 주인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 내 기억의 아바나는 늘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바나의 변신은 무죄다. 기술이 되고, 자금이 되면 얼마든지 바뀌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마음 저 구석에는 제발 아바나의 모습이 안 바뀌었으면 욕심이 있다. 그렇지만 변화의 바람은 어떻게든 막을 수 없었다.
쿠바 바라 꼬아에서 만난 까사 주인이 한 달에 한번 정도 '페이스 북'을 사용하여 소식을 전해주시긴 하는데. 쿠바도 벌써 몇 가지의 변화가 있긴 했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이 핸드폰 인터넷 사용 방식이 달라졌다. 여행자의 거리에든 도시의 큰 공원 앞의 통신 가게에서는 인터넷 카드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선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공원에서는 암거래도 쉽사리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인터넷 사용 카드를 사는 사람도 있지만 통신사를 가입해서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집으로 들어오는 인터넷이 생기고, 숙소에서도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인터넷 카드를 사서 써야 하지만 공원에서 앉아 인터넷을 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편하고 안정된 자리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다.
그러면서 숙소의 예약도 생겨 버렸다. 일부 큰 호텔형 숙소나,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주인은 페이스 북과 같은 비교적 쉽고 편한 방식으로 예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면 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특별히 예약을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좋은 숙소를 구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어려워졌다.
아마 가까운 어느 날 쿠바를 다시 가게 된다면 숙소를 인터넷을 찾아보고 예약을 하고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도착해서 찾는 좋은 숙소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니까 말이다.
아바나의 올드카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했다. 시그니쳐는 그대로 남아 있다. 말레꼰의 풍경은 늘 그대로 있을 것이다. 매년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만 바뀔 것이다. 수 없이 아바나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아바나는 변함이 없이 그대로 일 것이다.
인터넷이 숙소 안까지 들어오고, 예약을 하는 곳이 점점 들어가긴 하겠지만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그곳을 다시 가기 전까지 쿠바는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