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앨리스쥬디 Oct 08. 2024

엄마의 혼밥

떡볶이는 못 참지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점심은 늘 혼밥이다.

집에 있는 것을 대충 먹기도 하고 혼자 맛있는 것을 사 먹기도 한다. 이제 어느 곳이든 혼밥은 자신 있다.

오늘은 오전에 도서관에서 영어그림책 수업을 듣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점심을 뭘 먹을까  생각 중이었다.

집에 미역국이 있고 구워 먹을 소고기도 있는데 내키지 않았다. 기침하니깐 콩나물을 사서 콩나물국을 해 먹을까 하다가 귀찮아서 뼈해장국을 사 먹기로 마음먹었다.


발길을 돌려 해장국집으로 걸어가는데 엽기떡볶이에서 배달하시는 분이 나오시는 걸 보았다. 갑자기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엽기떡볶이는 너무 양이 많아 혼밥은 불가능하다. 다시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걸어 신전떡볶이로 들어갔다. 아 얼마만의 떡볶이인가. 매장은 한산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여학생 둘이 시험지 답을 채점하고 있었다. 메뉴를 보며 무엇을 먹을까 생각했다. 가장 싼 세트메뉴가 12800원이다. 원래는 다 먹을 수 있으나 요즘 소식을 해서 다 못 먹을 듯하다.


“주문할게요.”

“포장이세요?”

“아니요. 먹고 갈게요. 밀떡볶이랑 김말이, 오징어통살튀김 주세요. “

“떡볶이 순한 맛 드릴까요?”

“중간맛 주세요.”

“영수증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신전떡볶이는 원래 매운 떡볶이지만 나는 매운 것을 잘 먹어서 중간맛으로 선택했다. 예전 같으면 매운맛을 먹었겠지만 나이가 들어 위에 자극을 줄이려 한다.

선불로 계산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8천원이 넘었다. 떡볶이 한끼도 가격이 장난아니다. 사람이 없어 조용하니 좋다. 여기는 주로 배달이나 포장이 많은 곳이다. 아직 기침이 안 나아서 한번 기침이 터지면 문 열고 나가야 할 정도니 사람 없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조용히 밥 먹는 게 좋다.


여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귀엽게 느껴졌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웃음이 터지는 걸 보며 '아 나도 저랬었지.' 하는 생각에 잠시 학창 시절이 그리워졌다. 교복입고 다닐때가 좋았는데. 중학생 때 학교 끝나면 매일 떡볶이를 사 먹었다. 고등학교 때도 학교 앞 분식집에서 거의 매일 떡볶이로 살았다. 그 허름한 분식집에서 친구들이랑 먹던 떡볶이가 생각났다. 생각하는 동안 음식이 나와 테이블로 가져다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김말이와 오징어. 그리고 국물떡볶이.

막 튀긴 뜨거운 튀김을 한입 깨물었다.

와 너무 뜨겁다.

뜨겁고 바삭해 입천장이 다 까졌다. 나는 입천장이 잘 까져서 과자도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만에 먹는 튀김이 맛있어서 계속 먹었다. 떡볶이도 생각보다 맵지 않았다.

꽃이 하나 달린 베이지색 벙거지 모자를 쓰고 손가방을 든 할머니가 들어오셔서 떡볶이를 주문했다. 카운터에 가서 선불로 계산을 해야 하는 것도 잘 모르셨다. 사장님이 여기는 순한 맛도 매운데 괜찮겠냐고 물으셨다. 할머니는 그냥 달라고 하시고 떡볶이 한 그릇을 드시고 물을 왕창 드시고 가셨다. 눈이 안좋아 할머니의 표정은 제대로 못봤지만 속이 안아프셨으면 했다.


오랜만에 먹는 떡볶이는 학창 시절도 생각나게 해 주고 반가운 얼굴도 만나게 해 주었다.

누가 내 뒤에서 고개를 쏘옥 내밀었다. 나는 반응속도가 느리다. 어머나 반가운 얼굴이다. 도서관에서 독서모임과 글쓰기 수업을 들었고 공저프로젝트도 같이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수학선생님이신데 글을 얼마나 잘 쓰시는지 볼 때마다 감탄이다. 지나가는 길에 나의 뒷모습을 보시고 감사하게도 인사를 해주셨다. 어찌나 반갑던지 가시려는 샘을 붙잡아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다. 마저 먹으라고 배려해 주시며 샘이 가셨다. 남은 떡볶이를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다가 남기면 이따 생각날 것 같아 끝까지 다 먹었다. 오늘 맛있는 떡볶이로 많은 것을 얻었다. 추억도 현재의 사람도 모두 소중하다. 오늘 하루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